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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재현의세상속물리이야기] 진동과 전기의 이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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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7 20:58:29 수정 : 2017-12-07 20:5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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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의 진동에너지 활용할 수 없을까 / 납이 없는 친환경 압전물질 개발에 전력
이른 아침 출근길을 재촉하는 직장인들의 발걸음이 지하철역을 가득 채운다. 음식을 섭취해 얻은 화학에너지가 근육의 운동에너지로, 그리고 역 바닥을 때리는 걸음 속에서 진동에너지와 소리에너지로 변환된다.

물리학자들이 ‘믿는’ 법칙 중 에너지 보존법칙이 있다. 에너지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면서 형태를 바꿀 수는 있지만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버려지는 에너지를 유용한 에너지로 바꾸는 것은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그렇다면 지하철역 바닥을 때리며 열에너지로 흩어지는 발걸음의 진동에너지를 거두어 활용할 수 없을까.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마리 퀴리의 남편 피에르 퀴리는 1880년 형인 자크 퀴리와 함께 다양한 결정을 연구하던 중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한다. 수정을 포함한 일부 결정에 압력을 가하니 전기가 발생한 것이다. 곧이어 역으로 전압을 인가해 결정을 변형시키는 실험에도 성공했다.

결정이란 원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돼 있는 고체다. 결정 자체는 전기적으로 중성이지만 미시적으로는 양전하와 음전하가 나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압력에 의해 결정이 변형될 때 전기가 발생하는 현상은 결정 내 대칭성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결정 속의 한 점에 대해 동일한 원자가 같은 거리만큼 떨어져 대칭적으로 존재한다면 압력을 가하더라도 음전하와 양전하의 균형은 깨지지 않는다. 반면 이런 대칭점이 없는 결정들은 압력이 인가되면 전하의 균형이 쉽게 무너지며 음전하와 양전하의 중심이 어긋난다. 전하의 비대칭성은 결정의 양면에 각각 음과 양의 전하를 형성한다. 즉, 전류를 흐르게 할 전압이 발생하는 것이다.

압력으로 전기를 발생시키는 현상을 ‘압전(壓電)’ 효과라 부른다. 오늘날 압전 효과는 진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혹은 역으로 변환시키는 수많은 장치에 응용되고 있다. 초음파 영상법, 잉크젯 프린터, 마이크 등이 몇 가지 사례이다. 압전 물질을 활용하면 지하철역에서 수많은 사람의 발걸음으로 형성되는 진동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오늘날 사용되는 인공 심박동기는 배터리의 수명 때문에 주기적으로 교체해야 하는데, 근육의 진동에너지로 전기를 발생시켜 반영구적 작동을 가능케 하는 압전소자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문제는 많은 압전 물질이 인체에 유해한 납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납이 없는 친환경 압전 물질의 개발에 매달리고 있다.

최근 양파껍질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양파껍질 속에 정렬된 셀룰로스 섬유질이 결정의 성질을 나타내며 압전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혹은 생체친화적 물질을 이용하면 몸의 움직임이나 신체 내 진동으로부터 전기에너지를 획득할 수 있다. 이런 연구가 진전되면 머지않아 웨어러블 디바이스나 생체 내 이식장치에 별도의 전력공급장치를 달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압전 효과를 처음 발견한 피에르 퀴리는 후일 마리 퀴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우리는 과학에서 무엇인가 성취하기를 열망합니다. 모든 발견은, 아무리 보잘것없어도 우리에게 영원한 보상입니다”라고 썼다. 퀴리 형제의 작은 발견으로 촉발된 혁혁한 과학적 성취와 기술적 진보야말로 그들에 대한 진정한 보상일 것이다.

고재현 한림대 교수·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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