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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 아내 없이 여성과 동석 금지 ‘펜스 법칙’ 재조명 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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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12-03 11:32:00 수정 : 2017-12-03 21: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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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권 등 각계에서 거물급 남성이 성 추문으로 줄지어 몰락하면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제기했던 ‘펜스 법칙”(Pence Rule)을 둘러싼 논란이 재개되고 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펜스 부통령은 지난 200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아내 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 아내를 동반하지 않고는 술자리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것은 결혼 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구역을 설정하는 것과 같다”면서 “특정 상황에 부닥치면 무심코 잘못된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펜스 법칙’으로 불리며 거센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공화당 진영은 펜스가 ‘진정한 기사도’라고 옹호했다. 그러나 민주당 등 진보 진영은 ‘성차별주의자’라고 맹공을 퍼부었다. 미국판 ‘남녀칠세부동석’인 펜스 법칙을 둘러싼 논란은 미국 사회의 성, 평등권, 종교, 정치 문제 등으로 갈라진 미국 사회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모데스토 선언

펜스 법칙의 원조는 미국의 저명한 목회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모데스토 선언’(Modesto Manifesto)이다. 그레이엄 목사는 1948년 모데스토 지역 전도 집회에서 목회자로서 지켜야 할 규칙을 밝혔다. 그레이엄 목사는 “유명 목회자들이 가족과 떨어져 집회를 다니다가 성적 유혹에 넘어가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 지적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어떤 타협도 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는 스스로 조심하기 위해 앞으로 아내 외의 여성과 단둘이 식사를 하거나 만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USA 투데이는 최근 “그레이엄 목사의 부인 루스는 2007년에 사망했고, 그레이엄 부부는 단 한 번의 스캔들 없이 64년간의 결혼 생활을 마쳤다”고 지적했다. 

◆재조명받는 펜스 법칙


미국의 주요 언론은 미국 사회 각 분야의 거물급 남성이 성 추문으로 몰락하자 ‘모데스토 선언’에 따른 펜스 법칙을 집중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USA 투데이는 최근 “진보 진영이 펜스 법칙을 조롱거리로 여겼지만, 하비 와인스타인 (할리우드 거물 영화 제작업자) 성 추문 사건 이후 미국의 보수 진영이 이 법칙을 다시 띄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폭스 뉴스의 앵커 브리트 흄은 “매일같이 펜스 법칙이 새롭게 여겨진다”고 옹호했다. 보수 성향의 워싱턴 타임스(WT)는 “펜스 법칙이 이제 지나치게 얌전을 빼는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보다 현명하게 들린다”고 지적했다. 가톨릭대학의 연구 교수인 제이 리처드스는 “지난 50년 사이에 남녀간 성 구분이 무너지고 있는 극적인 사회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펜스 법칙은 이성적으로 들린다”고 주장했다. 리처드스 교수는 WT에 “펜스 법칙을 엄격하게 지키기는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남녀를 동등하게 대우하면 된다”면서 “상사가 점심 식사 때 남자 직원을 데려가려면 그때 여자 직원도 동석하게 하면 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게리 바벨 인디애나폴리스 스타 논설위원은 USA 투데이 기고문을 통해 “펜스 법칙을 지키면 당신의 아내, 명성, 양심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진보 진영, 여성계의 반발


미국의 진보 진영과 여성계는 거물급 남성의 연쇄 성 추문 사건의 대응책으로 펜스 법칙을 장려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일축했다. 크리스천 투데이의 케트린 비티 편집장은 최근 뉴욕 타임스(NYT) 기고문을 통해 “펜스 법칙이 예수의 가르침에도 어긋난다”면서 “예수는 정의, 자비, 신앙 등 보다 숭고한 법이 아니라 괴팍스러운 종교 전통을 지키려 한다고 율법 학자들을 꾸짖었다”고 강조했다. 비티는 “펜스 법칙은 남성이 욕망의 동물로 통제의 대상이고, 여성은 그 욕망의 제물이어서 감춰둬야 한다는 남녀 성에 관한 그릇된 시각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워싱턴 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 알렉산드라 페트리는 2일(현지시간) “차라리 모든 여성을 일터에서 쫓아내라”고 일갈했다. 페트리는 “남녀가 한 공간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해야 하고, 더는 파티를 열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펜스 법칙을 들먹이는 보수 진영의 태도를 조롱했다. 페트리는 “여성이 태어나면 탑에 가두고, 공룡을 배치해 어떤 남성도 그곳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페트리는 이어 “여자아이들은 잠을 재워 보트에 태워 떠나 보냄으로써 남성의 손이 아예 닿지 못하도록 하고, 남성끼리만 즐겁게 대화하면서 경력 관리를 하는 꿈을 꾸게 하지 그러느냐”고 펜스 법칙에 야유를 퍼부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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