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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스페셜 - 우주 이야기] (38) 우주 로켓에도 베어링이?

입력 : 2017-12-02 10:00:00 수정 : 2017-12-01 20:4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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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모든 기계에 들어가는 베어링. 출처=픽사베이

회전체가 있는 모든 기계에는 베어링이 들어간다.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자전거에도 바퀴와  페달, 페달 축에 베어링이 있다. 자동차에는 무려 100~150개가 쓰인다. 프로펠러(로터·Roter)가 쉬지 않고 회전하는 헬리콥터에서도 베어링의 성능이 중요하다. 이들 기기는 물론이고 세탁기, 냉장고, 진공청소기, 심지어 볼펜에도 베어링이 들어 있다.

특히 베어링은 볼펜의 품질과 성능을 좌우한다. 볼펜 끝에 들어있는 작은 베어링은 종이와 마찰에 의해 회전한다. 이때 볼이 회전하며 파이프에 들어있는 끈적끈적한 유성 잉크를 끌어내고, 잉크가 종이 위에 묻어 글씨를 적을 수 있다. 이른바 ‘볼펜 똥’이라는 잉크가 뭉치는 현상은 베어링이 마모되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베어링을 만드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중국은 한해 약 400억개의 볼펜을 생산한다. 핵심 요소인 베어링을 만들어내지 못해 90%를 독일과 일본 등에서 수입해왔다고 한다. 오죽했으면 리커창 총리가 2015년 공개회의에서 “세계 최대 철강 생산국이고 우주선도 발사하는 중국이 볼펜에 들어가는 베어링조차 아직 만들지 못하느냐”고 한탄했을까. 베어링 제작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우리나라도 볼펜의 볼(베어링) 국산화는 1970년대에서야 이루어졌다. 당시 국산 볼펜의 가격은 15원. 자장면 한그릇이 30원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절대 싸지 않은 가격이었다.

베어링은 우주 로켓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볼펜이나 자동차, 자전거 등에 들어가는 것과 극한 환경에서 작동해야 하는 우주 로켓의 베어링은 어떻게 다를까?
자전거 페달 축의 베어링. 출처=픽사베이

◆로켓에서 유일하게 회전체가 작동하는 터보펌프

베어링이 중요한 이유는 회전축의 마찰 때문이다. 회전체가 있는 모든 기계는 축이 회전할 때 생기는 운동 에너지로 움직인다. 이때 회전축에는 엄청난 마찰이 발생한다. 마찰은 열과 마모로 이어져 이 탓에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파손으로 이어진다. 만약 자전거 페달에 베어링이 없다면 회전축의 마찰로 제대로 회전시키기 어렵다.

베어링 없는 기계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래서 베어링을 ‘기계의 심장’ 또는 ‘기계 산업의 꽃’으로 부르기도 한다. 기계의 가장 깊숙한 내부에서 자리를 잡고, 고속이나 고온 등 매우 엄중한 조건을 견뎌내며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어서다.

우주 발사체에도 베어링이 사용된다. 우주 발사체에도 회전체가 있기 때문이다. 유일한 회전체는 바로 터보 펌프다. 터보 펌프는 우주 발사체인 로켓의 연료와 산화제를 일정한 압력으로 엔진에 보내는 역할을 한다. 75t급은 회전축의 속도가 1만rpm이 넘고, 7t급 엔진은 2만7000rpm에 달한다.

‘로켓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터보 펌프에는 손바닥 크기의 베어링이 4개 들어간다. 터보 펌프는 산화제 펌프와 연료 펌프로 구분되고, 각각의 펌프 위·아래에 하나씩 장착되어 있다. 회전축을 지지하고 마찰을 방지하는 역할은 여느 기기와 같다. 그렇다면 자동차나 일반 기계에서 쓰이는 베어링과 터보 펌프의 그것은 무엇이 다를까?

일상에서 사용하는 베어링과 터보 펌프의 그것 간 가장 큰 차이는 작동 환경이다. 자전거나 자동차 등의 베어링은 아무리 깊숙한 곳에 있어도 대기 상태에서 작동한다. 하지만 터보 펌프의 베어링은 유체 안에서 작동한다. 산화제 펌프의 베어링은 액체산소에, 연료 펌프의 그것은 케로신(등유)에 늘 잠겨 있다. 연료 펌프의 구동 조건은 그나마 양호하지만, 산화제 펌프의 베어링은 영하 180도 이하의 극저온을 견뎌야 한다.

게다가 별도의 윤활제도 바를 수 없다. 연료 펌프에 들어가는 베어링은 연료인 케로신 자체가 윤활 역할을 하지만 아주 미미한 편이다. 베어링의 기본적인 역할은 회전축과 지지대 사이의 마찰을 줄여서 잘 회전하게 하는 일이다. 베어링에 적당한 윤활유가 없으면 마찰이 일어나고, 이는 사고를 일으킨다. 우주 발사체에서 이런 사고는 곧 폭발을 뜻한다.
베어링의 작동 원리. 출처=위키백과

◆극한환경·기술에서 탄생하는 터보 펌프 베어링

이러한 차이점 때문에 터보 펌프에 들어가는 베어링은 고난도의 공정이 필요하다. 특히 우주 발사체에서는 작은 오작동이나 오차가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최대한 정밀하게 제작되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베어링은 국제적인 규격에 따라 정밀도 등급이 매겨져 있다. 무조건 최상위 등급 베어링만 터보 펌프에 쓰인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외부의 큰 고리에 해당하는 외륜(Outer ring), 안쪽의 작은 고리인 내륜(Inner ling)의 표면은 오차가 거의 없을 정도로 매끄럽게 만들어져야 한다. 또 외륜과 내륜의 고리 사이에서 움직이는 구슬(전동체·Rolling elements)은 완전 구체에 가까워야 한다. 겉으로는 모든 구슬이 동그란 모양으로 비슷해 보여도 100% 완전 구체를 만드는 일은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얼마나 완전 구체에 가깝게 만들 수 있는지가 관건인데, 이것이 바로 베어링의 품질을 좌우하는 기술이다.

극저온의 유체에 잠겨 작동하는 만큼  제작 과정에서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설계 단계부터 작동할 때 온도를 고려해서 제작하게 되는데. 합금으로 만들어지는 터보 펌프 베어링(구슬은 세라믹)은 상온에서 보면 약간의 유격(기계 작동 장치의 헐거운 정도)이 있다. 극저온의 산화제에 잠길 때 발생하는 금속의 미세한 수축 작용까지 정확하게 계산한 유격이다. 철로를 만들 때 여름철 늘어나는 현상에 대비해 약간씩 간격을 두고 만드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또 별도의 윤활제를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베어링은 소재인 금속 자체에 윤활제를 코팅해 제작하게 된다. 스프레이로 코팅을 해서 윤활제 막을 금속에 입히는 것이다. 베어링이 작동해서 구슬이 외륜과 내륜을 치면 막으로 형성된 고체 윤활제가 역할을 하게 되는 원리다. 
세라믹으로 만들어지는 베어링 구슬. 완전 구체를 만드는 것이 기술의 요체이다.
 
◆부르는 게 값…터보 펌프 중 국내 제작 못 한 유일한 부품

아쉽게도 터보 펌프를 구성하는 부품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서 제작하지 못한 부품이 베어링이다.

액체 로켓의 터보 펌프에 들어가는 베어링을 생산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단 5곳에 불과하다. 미국과 일본, 러시아, 독일, 프랑스 회사에서만 생산한다. 터보펌프 베어링은 보통 국가 전략물자로 분류되다 보니 기술 이전은 물론이고 수입까지 여의치 않다. 결국 터보 펌프 베어링 분야는 독점체제에 가깝기 때문에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다.

우리 연구진은 30t급 엔진의 선행 연구를 통해 터보 펌프의 제작 기술을 보유하게 되었다. 실제로 인듀서(입구의 유도 날개) 블레이드(날)의 손상과 극저온에서의 누설(기체나 액체 따위가 밖으로 새어 나감), 조립 불량 등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30t급 터보 펌프의 개발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러한 기술이 현재 진행 중인 한국형 발사체의 터보 펌프로 이어졌다.

다양한 형태의 베어링. 터보 펌프 베어링은 더 가볍고 강하면서도 극한 환경을 견뎌야 한다.
이처럼 국산화에 성공하면서 터보 펌프에 들어가는 모든 부품을 국내에서 수급할 수 있지만, 베어링만 유일하게 국산화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기술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양산할 수 있는 기업이 없는 것이다. 

실제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주도로 터보 펌프 베어링의 연구·개발은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다. 하지만 이 기술을 통해 직접 생산하겠다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터보펌프 베어링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설비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 비용을 회수할 만큼의 수요가 없는 탓이다.

그렇더라도 갈수록 커지고 있는 세계 우주산업과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을 고려하면 터보 펌프 베어링의 국산화는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단기적인 손익계산이 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생각하는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관심과 지원, 업체의 과감한 도전이 절실한 형편이다.

◆‘발사체의 심장’ 터보 펌프, 터보 펌프의 핵심 베어링

발사체는 우주 선진국과 강국으로 가기 위한 필수 요소다. 우리가 한국형 발사체 개발에 구슬땀을 흘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주 발사체에 필요한 수많은 구성 요소 가운데 터보 펌프는 그 심장이라고 불릴 만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 터보 펌프의 핵심 부품이 바로 베어링이다.
한국형 발사체의 터보 펌프. 베어링만 국산화를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터보 펌프의 베어링 개발은 우주 선진국과 강국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우리가 본격적인 우주 개발에 나선 지 20년이 되었지만, 터보 펌프 베어링을 만드는 회사 하나 육성하지 못했다는 점은 어떤 이유로든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 기술을 보유하고도 여전히 수입해서 써야 하는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투자와 우주산업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홍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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