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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청정국' 지위 되찾자] "우리가 갈 곳은 결국 병원 아니면 교도소, 죽음밖에 없었다"

입력 : 2017-11-27 21:26:44 수정 : 2017-11-28 07:5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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⑨ 마약류 중독 경험 5人 인터뷰/“치료·재활보다 처벌 위주 정책… 직업교육 배제 새출발 막막”/잦은 수감 후 2년째 단약 A씨/20~30대엔 해방감 맛보다/40대 돼서야 위기감 느껴/생애주기별 교육 필요해
마약류 사범이 2015년 1만1916명에 이어 지난해 1만4214명을 기록하는 등 해마다 늘어나면서 ‘마약청정국’이란 말이 무색해지고 있다.

마약류 중독은 재범률과 재수감률은 모두 40% 내외로, 여러 다른 범죄나 중독 문제 등에서 악순환의 고리를 가장 끊기 힘들다는 분석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치료 및 재활이 매우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편이 처벌 강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올해 도박중독 관련 예산이 108억원이고 금연지원서비스 관련 예산이 1467억원에 달하지만 유독 마약류 중독의 예방 및 중독자 치료·보호 예산은 1억원을 살짝 넘는 수준에 그치는 상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회와 제도에서 배제당한 마약류 중독자 5명을 만나 실제 이야기를 들어봤다. 단약(마약을 끊음)한 채 삶의 의지를 다잡고 있지만 언제 다시 중독의 늪에 끌려들어갈지 노심초사하는 이들이다. 개인적 상황을 고려해 신분은 밝히지 않는다. 다음은 이들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

―각자 생업과 재활 등 여러 상황에도 멀리까지 와 주셔서 감사드린다. 서로 처음 만나는 분들도 많은데 어떻게 나올 결심을 하게 됐는지.

A(52)씨=“지난해 초부터 단약한 뒤 집안일을 도우며 어머니, 동생과 함께 지내고 있다. 여러 번 수감생활을 하면서 잃었던 가족과의 신뢰를 조금씩 쌓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다.”

E(37·여)씨=“마약 때문에 몸이 망가져 6년 가까이 단약 중인데 자활모임도 나가봤지만 정신적인 문제, 경제적인 문제를 비롯해 살아가는 여러 문제를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마땅치 않다. 나의 이야기도 하고 다른 이야기 듣고 싶기도 해 왔다.”

―마약을 접한 지 30년 넘은 분도 있는데 처음에 어떻게 접하게 됐는지? 마약을 접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그런 것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일단 무섭게 느껴진다.

C(49)씨=“22살 때 아는 형이 ‘천국을 보여주겠다’며 마약을 권했다. 어려서 그랬는지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이후 30년 가까이 마약을 하면서 이제는 그 폐해를 잘 알게 됐다.”

B(57)씨=“난 학창시절까지 모범생이었다. 마약을 하는 친구의 어머니가 아들을 바른 길로 설득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하다가 보니 ‘내가 뭘 알아야 설득을 할 수 있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중독성이 심할 줄 모르고 한 번 했던 게 이렇게 됐다. 이젠 단약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후회가 된다.”

E씨=“사교모임에 나갔다가 투약을 권유받았다. 두렵기도 했지만 어울리다 보니 결국 하게 됐다. 이후 해외로 유학을 다니면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도 했다.”

―생각보다 마약을 접하는 게 어렵지는 않아 보인다. 현재는 다들 단약 중인데 아무리 굳은 의지로 단약에 매달려도 다시 투약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C씨=“사회생활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데 중독자들은 그게 쉽지 않다. 전과자 신분이기 때문에 사회시스템 전반에서 배제되고 가족에게 소외되는 경우도 많아 중독자들끼리 어울리는 게 일반적이다. 이 부분도 단약을 힘들게 하는 이유이다. 여기에 난 과거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거동이 불편하다. 마약을 맞으면 잠시나마 몸에 힘이 돌면서 해방감을 느낀다. 물론 약 기운이 떨어지면 몸과 정신 모두 상태가 훨씬 안 좋아지는데 그 상황에서 더 숨게 된다. ‘현실로부터 도피’가 컸던 것 같다.”

A씨=“주변에 한 번도 처벌받지 않고 수십년간 투약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주로 젊을 때 시작하는데 20대나 30대는 젊어서 그런지 두려움보다는 만족감이나 해방감이 큰 것 같다. 범법행위이기에 드러나지 않게 신경쓰는 건 있지만 굳이 끊을 필요를 못 느낀다. 40대가 되면 점차 위기감 같은 게 찾아온다. 단순히 몸이 안 좋아지는 게 아니라 인생을 낭비했다는 느낌, 이제는 제대로 살아야 하지 않나 하는 의지 같은 게 생기면서 50대가 넘어 끊는 경우가 많다.”

―중독자로서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

D(51)씨=“수감생활 오래 한 중독자들은 출소하면 재산은 물론이고 묵을 거처가 없다. 당장 끼니, 잠자리 걱정에 부닥친다. 가족도 떠난 마당에 뭘 어떻게 해볼 수가 없다. 의지 잃고 마약에 다시 손을 대는 거고 돈은 벌어야겠으니 투약자가 판매자가 되는 거다.”

E씨=“경제적인 게 가장 힘들다. 외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아는 분이 운영하는 학원에 나가서 가끔 일을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못하니 자주 하지 못한다. 단약한 지 6년이 넘었지만 가족과 관계가 좋지 않다 보니 도움을 기대하기 힘들다. 가족과 사는 것도 힘들어서 따로 나가 살고 싶은데 월세를 감당하기도 힘들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길도 현재로선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살기 위해 각자 많은 노력을 했을 텐데….

D씨=“아는 동생이 운영하는 마트에서 일하고 있다. 워낙 여러 번 경찰에 잡혀가니 직원들이 내가 중독자인 걸 다 안다. 못 미더워서 일을 안 줬던 적도 있는데, 지금은 내가 의지 다잡고 사는 것 보고 다들 잘 지내고 있다. 할 일이 전혀 없지는 않다.”

A씨=“단약한 지 2년 가까이 되면서 가족들과 신뢰가 쌓여 관계가 좋아서 잘 지내고 있다. 아이들은 못 보지만. 며칠에 한 번씩 직업소개소에서 일이 들어올 때마다 나간다. 어떤 일이고 벌이가 얼마인지는 중요치 않다. 워낙 여러 일을 시도했다가 안 되고 보니 지금은 날 써줄 곳이 있다는 것,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하는 것 자체가 너무 소중하다.”

―국가 차원의 마약에 대한 정책이 처벌 위주라서 답답한 게 많을 것 같다.

B씨=“내 경우에는 마약 시작한 지 20년 만에 처음 경찰에 잡혔다. 그것도 마약하다 걸린 게 아니라 ‘작전’에 걸렸다. 이제 몸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고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더라. 재판 받으면서 ‘내가 마약하던 20년간 국가는 상황 파악도 못하고 있었다. 치료받고 싶다는데 그것도 못 해주느냐’고 호소했다. 치료감호소 거쳐 교도소 생활하면서 마약을 끊기는 했지만 마약류 중독자를 치료의 대상으로 전혀 인식하지 않는 건 문제다. 경찰이든 검찰이든 조사 과정에서 실토하지 않으면 마약류 중독자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많지 않다.”

A씨=“출소 전 수감자를 대상으로 직업교육 같은 걸 해준다. 다른 범죄자들은 다 해주는데 유독 마약류 중독자는 거기에서도 배제된다. 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D씨=“마약류 중독자는 수감생활 반복하면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한 경우가 많다. 이는 4대보험이 보장되는 직업은 사실상 못 얻는 거다. 월급을 전부 압류당하니까.”

C씨=“회사 생활도 열심히 하고 잘 하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전과가 드러나는 즉시 내쳐진다. 택시 같은 건 범죄 경력을 아예 조회해 발도 못 붙인다.”

D씨=“사실 입장 바꿔놓고 생각을 해봐도 중독상태에서 택시운전 같은 건 무리가 있다고 본다. 환각 시달리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나. 몇 년이든 제한이 있긴 해야 한다.”

B씨=“그래도 새출발의 기회가 영구히 막힌다는 건 너무하지 않나. 단약한 지 10년, 20년이 돼도 그러는 건 너무 가혹하다. 도박이나 알코올, 게임 중독 등은 새출발하는 데 전혀 제약이 없고 국가가 치료해주겠다고 돈도 엄청나게 쓴다. 외국처럼 패자부활의 기회 부여하되 주기적으로 마약검사를 하는 등 관리를 철저히 해 사회에 복귀하도록 유도해야지 교도소에 밀어넣기만 해서 해결되는 건 없다.”

D씨=“마약류 중독자들끼리는 ‘우리가 갈 곳은 결국 병원(감금) 아니면 교도소, 죽음(자살) 셋 중 하나밖에 없다’는 말 자주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해외 모습을 보면 확실히 우리나라와 차이가 큰 것 같다.

B씨=“마약류 중독자들을 교도소에만 밀어넣다 보니 마약 해 본 적 없는 사람도 교도소에서 판매자, 제조자 다 알아서 나오고 출소하면 그들과 어울리게 된다. 교도소가 실제로는 마약 관련 정보, 인맥 교류의 장이다.”

D씨=“마약류 관리 정책을 만들 때 당사자들의 목소리도 반영돼야 한다. 교도소나 병원에서 사회복지사나 의사들이 교육해봐야 별 감흥 없다. 하지만 중독 경험자들이 직접 폐해 설명하면 숙연해질 정도로 공감 얻는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

C씨=“마약류 중독자들이 다시 마약에 손을 대는 건 위기 상황을 잘 넘기기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말 힘들 때 잠시라도 상담하거나 몸 상태에 대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응급상황을 해결해줄 수 있는 시설이 필요하다. 방 하나 공간이라도 너무 절실하다.”

A씨=“요새 담배는 혐오광고 엄청나게 내보내던데 마약도 그런 홍보나 교육이 중요하다. 젊은 애들이 그런 걸 좀 알아야 마약에 손을 안 대고 시작했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빠져나오지 않겠나. 생애주기별로 다른 접근 필요하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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