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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순간의 기억 때론 삶을 사는 힘으로…

입력 : 2017-11-23 23:16:19 수정 : 2017-11-23 23: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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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이재량 첫 장편 ‘노란 잠수함’

“죽으러 간다는 말은 하지 마소. 우리는 죽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살러 가는 것이네. 떠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여. 이제라도 알았응께 용서를 빌러가는 것이여.”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치명적인 순간이 있다. 그 치명적인 기억은 이후의 삶에 내내 동력이 되기도 하고 반대로 큰 상처로 남기도 한다. 신예 이재량(43∙사진)의 첫 장편 ‘노란 잠수함’(나무옆의자)은 그 한순간이 아무리 비루한 처지라도 버티게 만드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소설이다.

봉고차에 성인용품을 싣고 다니며 파는 스물아홉살 청년 이현태, 학교에서 일진으로 살다가 가출한 철물점집 딸 여고생 모모, 월남전에 참전했던 두 노인 김난조와 나해영. 이들이 안산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다시 순천을 거쳐 목포까지 우여곡절 난장을 벌이며 가는 형식이다. 소설의 고갱이는 월남전 참전 두 노인의 사연에 있다. 고아 출신 나해영은 사는 게 무섭지 죽는 게 무섭겠느냐는 배짱으로 월남전에 자원했는데 그곳에서 김난조 병장이 부비트랩이 터지기 직전 그를 밀쳐내고 대신 파편을 맞아 하반신을 잃는다.

귀국해서 나해영은 하는 일마다 불운하게 틀어지고 고독하게 홀로 남아 김난조를 찾아가 서로 의지하며 이 생을 견디어 왔는데, 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한순간이 있다. 베트남 ‘수이진’이라는 항구에 가서 만났던 ‘응욱 타잉’이라는 스물한 살 월남 처녀. 이 처자를 가운데 두고 그들은 그곳에서 순결한 밤을 보냈지만 그들의 낙원은 이후 처참한 살육의 불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그들은 수이진에서 중대장이 보여주었던 비틀스가 주인공인 애니메이션 ‘노란 잠수함’을 잊지 못하는데, 그 영화 속에서 젊은이 네 사람은 그들의 낙원 ‘페퍼랜드’를 구하기 위해 심해로 들어간다. 두 노인은 자신들의 페퍼랜드를 찾아 배를 타고 떠나기 위해 청년과 타잉을 닮은 모모를 동반해 목포까지 간 것이다. 어머니에 얽힌 아픈 사연을 지닌 무화과농장 집 청년 현태에게 노인은 말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천국이나 낙원을 말하네. 믿지는 않더라도 알고는 있제. 누구는 페퍼랜드라고 했지만, 자네 엄니는 강가라고 했제. 그려, 우덜은 그것만 알면 되는 거여. 다른 건 필요가 없당께. ...믿고 안 믿고는 별개여. 각자 자기 몫잉게. 긍게 현태. 의심하지 말게, 궁금해하지도 말고.”

구수한 방언과 능청스러운 유머로 시종 날렵하고 경쾌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면서도 결정적으로 깊은 페이소스를 이끌어내는 작가의 역량이 범상치 않다. 이재량은 “평생을 견디는 데는 한순간, 그것이면 족하다”면서 “우리 인생의 그 한 방, 한순간을 향해 돌아가려는 사람과 한순간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사람, 아직 한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만나 진정한 한순간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작가의말에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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