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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란 20년-한국 경제 현주소] 예전만 못한 경제 기초체력… 제2의 환란 없을까

입력 : 2017-11-22 20:51:00 수정 : 2017-11-22 21: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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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외환위기의 진앙이었던 외환보유액은 이제 큰 걱정거리는 아니다. 1997년 12월 한때 39억달러까지 떨어져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렸지만 지난달엔 3845억달러로 100배 가까이 늘었다. 경상수지도 2012년 이후 67개월 연속 흑자다.

언뜻 보면 나라 곳간은 넉넉해 보이는데, 좀처럼 불안감이 가시지 않는다. 나랏빚이 크게 늘고 있어서다. 지난해 국가채무는 626조9000억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38.3%로 1997년 외환위기(60조3000억·11.4%) 시절보다 크게 늘었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 나랏빚이 느는 것은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데 있다. 장기화된 저성장과 양극화 현상, 가계부채 급증 등으로 대내 경제의 펀더멘털이 그때보다 취약해졌다. ‘끓는 냄비 속 개구리 신세’라는 게 경제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국가채무 비율의 분모가 되는 GDP가 작아져 국가채무 비율이 급증할 위험성이 큰 구조로 변했다는 뜻이다. 안동현 자본시장연구원장은 “20년 전에는 외부 쇼크에 취약했다면 지금은 서서히 침몰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중장기 재정건전성 ‘위태위태’

경제위기에서 재정은 최후의 보루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한국은 건전한 재정을 바탕으로 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났다. 현재 한국의 재정건전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도 상위권 성적표다. 국제통화기금(IMF)이 한국 정부에 경제성장과 사회안전망 강화 등을 위해 재정 지출을 지금보다 늘리라고 권고할 정도다.

정부도 OECD 국가의 평균 국가채무 비율이 112.2%(2015년 기준)인 점을 감안하면 매우 양호하다는 입장이다. 중기적으로 봐도 문재인정부 후반기인 2021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40.4%로 충분히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야권과 보수 경제학계에서는 복지수요가 크게 늘고 있어 재정 악화 우려가 크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문재인정부의 주요 재정사업이 중장기적 국가재정 여건 등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기초연금 인상 △아동수당 신설 △공무원 증원 △최저임금 인상분 지원 등 정부의 주요 4개 재정사업만 시행해도 국가채무는 2040년에 GDP 규모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했다. 국가채무 규모도 2020년 906조원, 2040년 4703조원, 2060년 1경5499조원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추정됐다. 덩달아 국가채무 비율은 2020년 46.6%, 2040년 104.3%로 늘어나는 데 이어 2060년에는 194.4%로 200%에 육박할 것으로 분석됐다.

당장 내년부터 의무지출이 많이 증가해 재량지출 규모를 넘어서는 부분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예정처의 ‘2017~2021년 재정전망’을 보면 지난 추경 때만 해도 의무지출비율은 49.0%였으나 내년 예산안엔 50.8%로 늘어났다. 2017~2021년 의무지출 연평균 증가율은 7.2%로 총지출 증가율 5.8%에 비해 높을 것으로 전망됐다.

송원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외환·금융시장 위기가 아니라 실물시장 위기가 서서히 나타날 것”이라며 “공공부문 역할 확대와 정부 실패 증가로 사회적 비효율성이 높아지고, 국가재정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박태규 연세대 명예교수는 “지나친 복지재정 지출과 과도한 공공부문 확대로 향후 지속적 재정건전성 악화가 불가피한 만큼 이를 방지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동성 잃어버린 한국 경제

외환위기 직후에 벤처 바람을 타고 신생 기업들이 다수 탄생했지만 대기업 반열에 올라선 사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네이버, 카카오, 넥슨 등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비금융기업 시가총액 1위는 애플이다. 애플을 비롯해 현재 시총 열 손가락에 드는 기업 중 ‘뉴 페이스’는 무려 6곳이다. 산업계의 역동성이 그만큼 살아있는 증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역동성 지수를 추산한 결과 2002년 4.48에서 지난해 1.57로 급락했다.

김용성 KDI 부원장은 “새로운 스타트업이 성장동력인데 우리는 경쟁체제가 잘 안 갖춰지고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어 스타트업이 나올 수 없고, 그러다보니 기업이 늙어간다”면서 “늙은 기업은 성장을 견인할 수 없다. 미국이나 중국은 생긴 지 20∼30년밖에 안 된 신생 기업들이 이끌어가는데, 우리는 반세기가 넘은 기업들이 주도하니 불안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기업 쏠림 현상도 여전하다.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수출에서 대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62.2%다. 중견기업은 17.7%, 중소기업은 19.8%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전체 기업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 비중이 99.88%인 점을 고려하면 크게 낮은 수치다. 더욱이 대기업은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국내 30대 그룹이 쌓아 둔 사내유보금은 70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러다보니 올해 반도체 시장 호황에 힘입어 ‘반짝 3%대’를 회복할 것으로 기대되지만 내년에는 다시 2%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은 “향후 성장 모멘텀이 될 수 있는 신산업 발굴이 부족하고, 특히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기업경영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권우석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소장도 “1997년에는 인건비와 제조업 쪽에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고 세계시장에서 비교적 쉽게 포지셔닝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산업이 포지셔닝하기 힘든 위치에 와있다”면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1997년보다 지금이 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영배 나이스평가정보 CB연구소장은 “현재 생산 및 소비 방식과 결을 달리하는 새로운 차원의 혁신과 사회 구성원들 모두에게 합리적으로 분배되는 시스템을 디자인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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