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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하고 현명한 종족은 식물”

입력 : 2017-11-21 03:00:00 수정 : 2017-11-23 17:4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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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사 2개·박사 2개 인문학자 최문형 박사 ‘식물처럼 살기’ 출판 사계절이 있는 곳에 산다는 건 축복이다. 옷과 헤어 스타일, 신발, 집안 분위기까지 계절따라 바꾸어 가며 살 수 있다. 계절은 색깔로 표현된다. 봄이 파스텔 계열의 우아함, 여름이 유화의 강렬한 원색조라면 겨울은 수묵화의 흑백이다. 지금, 가을은 담백한 수채화의 터치가 일품이다. 채도 높은 생생한 단풍들이 도처에서 우리를 유혹한다. 옛 사람들도 단풍이 봄꽃보다 더 붉다고 칭송했다. 잎맥을 숨기지 않는 그 투명함에 하늘과 땅, 강과 바다가 온통 반사되면 가을은 일렁이는 발그레한 파도가 되어 우리 마음을 뒤흔든다. 그러다가 살랑 단풍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슴이 철렁하다. 무언가 잃어가는 것 같다. 상실을 느낀다. 그래서 떨구어지지 않는 ‘마지막 잎새’가 희망의 상징이 되었을까?

낙엽을 보며 끝을 생각하고 나뭇잎의 허망한 과정을 떠올리면 그건 식물을 잘 모르는 거다. 바삭바삭 거리에 뒹구는 낙엽을 밟으며 쓸쓸해하고 낙엽을 패잔병이라고 생각하면 나무에 대한, 식물에 대한 실례이다. 
“우리는 이제까지 알게 모르게 동물처럼 살아오지 않았는가”하고 자성하자는 최문형 박사는 “생명의 지혜나 존속 차원에서 보면 진화의 순서는 오히려 인간에서 동물로, 동물에서 식물로 가는 것 같다”며 식물처럼 살자고 제안한다.

인문학자 최문형(성균관대 동양철학과 초빙교수)의 ‘식물처럼 살기: 우리가 동물처럼 살지 말아야 할 11가지 이유’(사람의무늬, 2017)는 낙엽에 대해, “자기 생을 화려하게 완수하고 지는 이파리는 장엄하다”고 한다. 시각이 다르다. 하지만 단풍이, 낙엽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이걸 이해할 법 하다. 가지 끝에서 겨우내 대기하고 있다가 봄이 되어 싹을 내고 몸통을 키워서 엄마 식물의 일개미가 되어 평생을 고단하게, 그렇지만 보람있게 씩씩하게 살아낸 이파리들에 주목해 보라.

그들의 봄은 분주하고 화려했다. 각종 생물들이 찾아들어 그들이 피워낸 꽃들을 즐기고 혼인시켜 주었으니 말이다. 그들의 여름은 신선하고 열정적이었다. 대지로부터 퍼올린 수분을 공기 중에 퍼뜨려 주고 햇살을 마음껏 머금어 엄마 식물의 양분을 만들었다. 열기가 잦아드는 밤이 되면 한낮의 노동을 흡족해 하며 커가는 열매의 키를 마음 속으로 재어보곤 했다. 가을 햇살 아래에서도 그들은 당당했다. 이제 노력의 댓가로 씨앗이, 열매가 여물어가는 게 확연하게 보이지 않는가! 애벌레의 습격을 받아도 초식동물들이 그들을 해쳐도 사람들이 무참히 베어버려도 그들은 묵묵히 때를 기다리며 버티어 왔다. 아무 말 않고 낙심도 불평도 없이 자기 임무를 수행할 뿐이다. 그렇게 다 키워가던 열매가, 씨앗이, 폭풍에 떨구어져 산산이 흩어져도 이파리들은 그저 아픔을 감내해왔다.

때가 되어 열매 안에서 영근 씨앗들이 엄마 식물을 하나 둘 떠나면 일개미인 이파리들에게도 휴식 시간이 다가온다. 그들은 이제 화려한 드레스로 갈아 입고는 모든 생명들에게 이렇게 외친다. “나를 돌아보아 주길! 나의 봄과 나의 여름 그리고 나의 가을, 멋진 과업을 끝낸 나를 축하해 주길! 이제 곧 내가 누릴 휴식을 진정으로 축복해 주길!” 그 울림은 투명하고 묵직하고 장엄한 팡파레이다. 온 지구를 울린다. 우리 심장도 예외는 아니다. 그렇게 한 바탕 축제를 마련해 준 이파리들은 미련없이 본체에서 떨어져 나온다. 그들은 화장되기도 하고 매장되기도 한다. 

최문형의 ‘식물처럼 살기’는 이처럼 식물의 관점에서 그들의 평생을 들여다 본다. 그들의 습관, 그들의 전략, 그들의 마음씨, 그들의 생각, 그들의 의도를 요리조리 뜯어 본다. 우리 인간은 하기 어려운, ‘죽음을 삶처럼 살고 삶을 죽음처럼 사는’ 식물들의 생태를 낱낱이 분석한다. 식물학 서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한 번도 인간의 삶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는 식물에게서 배우는 삶의 지혜를 흥미진진하게 펼친다. 저자는 다양한 분야와 장르를 통해 독자들을 다채로운 세계로 이끈다. 신화·종교·문학·생물학·음악·바이오 산업·IT(정보통신)산업 이야기가 융합되어 있고, 우리에게 친숙한 영화·소설·동화·애니메이션 이야기도 버무려져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가을의 낙엽과 단풍의 의미를 제대로 짚을 수 있다. 빗물에 젖어 차창 밖에 붙어서 파르르 떨고 있는 작은 단풍잎을 손 안에 옮겨서 그 이파리가 하고픈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된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앙상한 겨울 나무 둥치와 대화할 수도 있고, 조금 기다려서 신록과 꽃과 다시금 물이 오른 가지들과 데이트도 즐길 수 있다. 이 책은 이렇게 사계절을 좇아서 식물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는 우리들의 삶을 경탄과 기쁨의 샘물로 솟구쳐 올려 준다.

이화여대 교육학과를 졸업한 저자 최문형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율곡 향약의 사회윤리적 기능에 관한 연구’(1988)로, 성균관대학교 번역·TESOL대학원에서 ‘A Studay of the effect of small-group discussions on teaching English writing(소그룹 토론을 통한 영어 작문지도 연구, 2007)’으로 석사학위를,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중국 고대의 신 개념에 관한 연구’(1998)와 ‘율곡의 주기론적 문학관과 시세계’(2004)로 각각 철학 박사학위와 한국한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인문학자이다. 석사학위 2개, 박사학위가 2개라 별명이 ‘투박’이다.

박사학위 취득 후에도 유학을 현대적으로 조명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최 박사는 ‘동양에도 신은 있는가’(백산서당, 2002), 통일로 가는 길목과 한국 여성의 자리매김에 있어서 한국 전통사상을 적용해 본 ‘한국전통사상의 탐구와 전망’(경인문화사, 2004), 21세기 세계화와 한국의 가치관을 파헤친 ‘갈등과 공존’(경인문화사, 2007), 유학자들의 자연관과 자연철학 그리고 과학시대의 생명윤리·생태윤리를 다룬 ‘유학과 사회생물학’(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7)을 펴낸데 이어 요즘은 홍익인간 이념을 바탕으로 한 고대사상과 구한말 동학(천도교)사상을 중심으로 한 민족종교(신종교)의 고유사상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식물 예찬론자인 최 박사는 “지구상에서 가장 장수하고 현명한 종족이 식물”이라며 “진화의 최정점에 인간이 있다고 하는데 나는 식물이 그 자리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식물들은 어떠한 지구환경에서도 살아남았으며 이동이 힘든 약점을 보완하느라 가지가지의 생존 전략을 발달시켰다”며 “식물은 지구에서 유일하게 무기물(햇빛과 공기)을 유기물로 바꾸는 재주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생명체를 먹여 살린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식물을 즐기며 식물의 각종 산물로 삶을 영위한다”고 강조한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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