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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 나마스테!] “글을 쓴다는 건 더 고독해지려는 행위 아닌가요”

입력 : 2017-11-13 21:18:59 수정 : 2017-11-13 21: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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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집 ‘뱀과 물’ 펴낸 소설가 배수아 “소수이긴 하지만 제 글이 재미있다는 독자도 있어요. 굉장히 기쁘고 감동스러워요. 하지만 저는 굉장히 경계해요. 이 세상에 오직 나와 내 글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글을 쓰고 사는 게 좋아요. 침해당하고 싶지 않아요. 내 글을 쓰는 데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요. 글을 쓴다는 건 더욱더 고독해지기 위한 행위가 아닌가 싶어요. 저에겐 그래요. 진짜 고독해지려면 글을 써야 해요.”

오랜만에 단편집 ‘뱀과 물’(문학동네)을 펴낸 소설가 배수아(52)를 일산에서 만났다. 가로에 젖은 낙엽들이 수북이 쌓인 비 오는 오후였다. 그동안 번역서는 많이 냈지만 창작집은 ‘올빼미의 없음’ 이후 7년 만인데 해마다 한 편꼴로 더디게 써온 셈이다. 표제작을 포함해 7편이 실린 이번 창작집은 이전에 비해 몽환적인 색채가 깊어지고 자신만의 사유가 보다 과감해졌다. 배수아의 소설은 난해하고 낯설지만 그녀만의 빛깔에 ‘중독’된 마니아층도 있다. 그렇다고 했더니 그녀는 “제 글이 독자들이 읽기 원하는 건 아닌 것 같다”면서도 “더 고독해지고 싶다”고 했다. 무엇이 그녀를 더 깊은 고독으로 내모는 걸까. 이번 창작집의 단편들은 일관되게 어두운 꿈과 ‘무조의 음악’으로 흐른다.

7년 만에 새 창작집을 묶어낸 소설가 배수아. 그는 “가장 중요한 독자는 저 자신”이라면서 “예전에는 겁도 많았는데 이제는 좀 더 용감하게 쓰고 싶다”고 말했다.
첫머리에 배치한 ‘눈 속에서 불타기 전 아이는 어떤 꿈을 꾸었나’는 프란츠 카프카의 ‘꿈’에 관한 글만 모은 책을 번역한 뒤 편집자의 청탁으로 옮긴이의 말 대신 수록했던 단편이다. 서커스단에서 만난 눈표범 조련사 아버지와 마술사 어머니, 존재감 없는 어머니와 스키타이족 무덤으로 떠난 부재하는 아버지, 안개 속에서 차갑고 냄새나는 트럭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가는 ‘눈 아이’, 이들이 그려내는 작은 서사는 아득하고 축축하다. ‘얼이에 대해서’ ‘1979’ ‘노인 울라에서’ ‘도둑 자매’ ‘기차가 내 위를 지나갈 때’ 들이 이어지는 목록이다. 표제작 ‘뱀과 물’에는 격하게 전개되는 가학의 서술도 등장한다.

“조금 더 용감해지고 싶고 더 극단적으로 쓰고 싶어요. 소설은 스토리를 구성해야 되고, 독자에게 전달돼야 한다는 생각이 저를 은연중에 많이 구속하고 있었던 거 같습니다. 그 구속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더 고독해져야 할 것 같아요. 주변에 사람이 있으면 안 돼요. 모순이긴 하지만 심지어 독자가 많다는 것도 그 자체가 하나의 구속이거든요.”

이번 소설집 표지는 미성숙한 여자아이의 나체가 어두운 흑백 톤으로 찍힌 체코 사진작가 프란티셰크 드르티콜의 사진이다. 이 사진을 쓰지 않으면 책을 내지 않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편집부에 요구했는데 의외로 너무 기꺼이 받아줘 놀랐다고 했다. 배수아는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비교적 일관된 성격인데 이 표지가 전체를 말해준다면서 “뭉크의 그림 ‘사춘기’를 연상케 하는 이 사진은 어린 시절의 어두움과 악마성을 떠올리게 하고 그런 것들은 일생을 좌우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꿈’과 ‘음악’이라고 책 뒤에 해설을 붙인 평론가 강지희는 보았다. 이 평론가는 “사물의 감각에 가까이 가기 위해 배경과 사건과 인물을 지우고 급기야는 써내려가는 자까지도 모두 지워버리는 글쓰기”라고도 했다. 실제로 배수아의 이번 단편들에서 익숙한 스타일의 서사를 기대했다가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뚜렷한 서사 대신 콕 집어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득하게 안개처럼 깔리는 몽환적인 분위기다. 정작 작가 자신은 “모든 사건들이 완벽하게 현실적 물리 법칙 지배 아래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결국 꿈일 수 있다”면서도 ‘꿈’이라는 잣대를 썩 탐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듯했다. 그녀는 꿈 대신 ‘직관’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감성보다는 감각을 쓰고 싶고, 치밀하게 계산해서 쓰지 않는 대신 직관에 기댄다고 했다. 소설 속에서도 ‘글을 쓰는 게 직관이라면 꿈도 직관일 수 있는지’ 등장인물은 묻는다.

1980년대 문학의 주류가 민중과 현실과 민주화를 천착하는 내용이었다면 1990년대 들어 이러한 문학의 반작용으로 극히 개인적인 측면을 톺아보는 소설들이 득세했다. 1993년 ‘소설과 사상’에 ‘천구백팔십팔년의 어두운 방’을 발표하며 등단한 배수아도 기존의 문학 전통에서 벗어난 글쓰기로 차별화된 작가였다. 그 무렵 발표한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만 해도 당대 젊은이들의 풍속도가 국도변 좌판에 놓인 먼지 앉은 ‘푸른 사과’ 이미지를 배경으로 흐르는, 수다스러울 정도로 이야기가 많은 소설이었다. 이 지점과 ‘뱀과 물’을 비교해보면 서사와 배경이 약화된 추상화로 나아온 양상이 선명해진다. 무엇이 그녀를 구상보다는 추상으로, 감성보다는 감각과 직관으로, 광장보다는 더 깊숙한 밀실로 몰아온 것일까.

“의도적인 건 아녜요. 그것이 제가 글을 써 가는 배경이 아닌가 싶어요. 제 글이 원한다면 저는 따라가는 거죠, 어쩔 수 없죠. 사람들의 평가에 신경을 안 쓰려고 해요. 그런 말을 들을 기회 자체를 만들지 않아요. 사람들을 잘 안 만나요. 가장 중요한 독자는 나 자신이에요. 근본적으로 보면 모든 작가는 자기가 읽고 싶어 하는 걸 쓰는 게 아닐까요.”

배수아는 이화여대 화학과를 졸업하고 ‘워드 연습을 하다 우연히 완성한 소설’로 등단한 뒤 병무청 공무원 생활을 하며 집필을 병행했다. 2001년 휴직계를 내고 무작정 독일로 떠났다가 1년 후 돌아와 전업작가로 나섰다. 이때부터 독일어 공부를 시작해 근년에는 프란츠 카프카에서 포르투갈 작가 페르난두 페소아, W G 제발트의 책들까지 모두 좋은 반응을 얻는 번역가로 각광받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소설은 싫어해도 번역한 책들을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고 웃었다. 예전과는 달리 요즘에는 밀려드는 번역 요청에 선별하는 처지라고 했다. 독일어로 번역된 저작들을 접하는 보람도 크다고 했다. 1년에 두어 달쯤은 독일에 가서 자신의 글쓰기에 집중하고, 한국에서는 주로 번역을 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번역은 보다 충실한 또 하나의 독서일 뿐 자신의 소설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시간을 빼앗는 측면에서는 그렇다고 했다.

이번 창작집에는 ‘서커스’가 배경인 단편들이 있다. 여자 마술사인 어머니의 특기는 ‘보이지 않게 하는 마술’이다. 그것은 아이의 가족이 살아가는 유일한 생계수단이어서 아버지는 늘 걱정했다. 완전히 모습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어머니는 마술을 할 때마다 알아차리지 못하게 조금씩 소모되어 점점 다시 돌아오기 힘들어졌다. 서커스와 인생, 배수아는 짧게 답했다.

“짧다는 거… 짧을수록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나요?”

글·사진=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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