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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따돌림·협박·불이익…성폭력 피해자는 죄인이 되었다

입력 : 2017-11-12 19:44:11 수정 : 2017-11-12 19: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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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피해 예방대책 시급 / 나쁜 소문·업무상 부당대우 우려… 女 40% “성희롱 문제제기 안할 것” / 문제 제기 뒤 해고·계약 해지 많아… 법적 구체적 정의 없어 제재 곤란 / 재판서 개인정보 유출되기 일쑤… 가해자측 합의 요구·강압도 빈번
A(28·여)씨는 3년 전 그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치가 떨린다. 당시 인턴으로 근무했던 회사의 직속상사 B씨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

회사 생활에 대해 알려주겠다는 제안에 함께 술을 마신 후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 새벽, A씨는 낯선 방에 누워 있다는 사실에 놀라 옷도 제대로 갖춰 입지 못하고 도망쳐 나왔다. 회사에 이 사실을 알렸지만 아무도 A씨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오히려 “둘이 좋아해 놓고 거짓말하는 것 아니냐. 정규직으로 전환해 줄 테니 그냥 묻고 가자”며 회유를 시도했다. B씨는 동료들에게 “쟤(A씨)가 먼저 좋다고 했다”고 헛소문을 퍼뜨리는가 하면 “다시는 이 업계에 발도 못 붙이게 해주겠다”고 협박을 일삼았다. 

직장 내 성희롱·성폭행 등 성폭력 피해자들이 인사상 불이익이나 가해자의 협박·회유 등 2차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신상이 인터넷을 통해 무분별하게 퍼지거나 수사·재판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하지만 이를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아 피해자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12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성희롱 2차 피해 실태 및 구제 강화를 위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 직장인 450명 중 40.2%가 ‘성희롱 문제를 제기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봐(20.8%)’, ‘고용상 불이익을 당할까봐(14.4%)’ 등이 주요한 이유였다.

이들의 걱정은 괜한 게 아니어서 성폭행 피해사실을 알리고 불이익을 당한 경우가 적지 않다. 1652명의 여성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피해사실을 알리고 원치 않은 근무지 이동을 겪은 이들이 10.6%에 달했다. ‘자발적 퇴사(6.7%)’, ‘해고나 근로계약 갱신 거절(2.9%)’ 등의 불이익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인사조치 외에 동료들의 비난과 따돌림(18.8%), 악의적인 소문(12.9%), 불필요한 트집 등 업무상 부당한 대우(10.9%) 등을 당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같은 2차 피해를 유발하는 사람들은 주로 가해자와 동료, 성희롱고충담당자 등이었다. 

2차 피해로 인한 고통이 이처럼 크지만 가해자들을 제재할 근거는 미흡하다. ‘남녀고용평등법’ 등은 피해자 혹은 피해를 주장하는 직원을 해고하거나 불리한 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2차 피해의 개념이 모호해 은폐되거나 부당한 처우가 있다 해도 제재를 하기 힘들다.

힘겹게 가해자를 기소해 재판을 해도 피해자의 고통은 계속된다. 개인정보가 새어나가 신원이 드러나면서 합의 요구를 받거나 협박에 시달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강제추행 피해자 김모(여)씨는 지난해 가해자의 부인에게 시달렸다. 그는 김씨에게 ‘애아빠를 위해 아가씨가 합의해 달라’며 지속적으로 연락했다. 김씨의 개인정보는 가해자의 변호인 측에서 재판기록을 복사하는 과정에서 알아내 가해자 측에게 몰래 알린 것이었다. 그러나 현행 법률에는 직장 관계자나 피고인의 변호인 등에 의한 피해자 개인정보 유출은 처벌을 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대한법률구조공단 신진희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인터넷에 호소하는 것은 ‘익명성’이 보장된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이로 인해 원치 않는 ‘신상털기’나 사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며 “자신을 감추고 싶은 피해자가 가해자나 회사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이들을 보호할 만한 법적 장치가 정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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