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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문서로 본 한국 재건사] “쌀 부족” 韓 지원 요청에… 유엔군 “수확량 잘못 계산” 거부

입력 : 2017-11-06 19:33:27 수정 : 2017-11-06 22:3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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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한국전 당시 ‘곡물 지원 갈등’ / 전란으로 전국토 황폐화… 경제 마비 / “가뭄으로 남한 쌀 수확량 급감할듯” / 백두진 재무장관, 유엔군에 지원 서한 / 핸런 제독 “판단 아직 이르다” 떨떠름 / 수치 조목조목 반박… 현황 훤히 꿰뚫어 / “군사협력 별개로 경제지원 갈등 존재" 한국전쟁 당시 식량 지원을 둘러싸고 유엔과 한국 정부 사이에 갈등이 빚어졌다는 사실이 유엔 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1952년 9월 27일 유엔군사령부(UNC)의 핸런(B. Hall Hanlon) 해군 제독(소장)이 우리 정부 백두진 재무장관에게 보낸 A4 용지 2장 분량의 서한에서 드러났다. 이 무렵 한반도는 이미 2년간의 전란으로 전 국토가 황폐화되고 국가경제는 마비된 상태였다.

서한에는 백 재무장관이 먼저 1952년 9월 23일 유엔군에 서신을 보내 그해 남한의 쌀 수확량이 가뭄으로 인해 급감할 것으로 예상하고, 1952년 11월 1일부터 1953년 10월 31일까지 1년간 유엔의 곡물 지원을 제안한 것으로 명시돼 있다.

우리 정부는 그해 가용한 곡물 총량이 934만5656석(국제 원조량인 267만3120석 포함)인데, 이는 국민을 먹여 살리는 데 필요한 소요량보다 623만1656석이 부족하다고 내다봤다. 따라서 이러한 요청은 우리 정부가 전쟁통에 굶주림에 허덕이는 국민을 살리기 위해 유엔으로부터 한 톨의 쌀이라도 더 지원받으려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참고로 당시 쌀 1석은 144㎏으로 계산됐다.

1952년 9월 27일 유엔군사령부(UNC)의 핸런 해군 제독이 유엔의 쌀 지원과 관련해 우리 정부 백두진 재무장관에게 보낸 서한.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제공
핸런 제독이 보낸 서신은 이에 대한 답신이다. 그런데 문제는 핸런 제독이 한국 정부의 판단을 부정하고 지원 요청을 못마땅히 여겼다는 점이다. 그는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측면에서 한국 정부의 곡물 수확량 예상은 너무 비관적인 것”이라면서 “이러한 전망이 공개되면 국민이 불필요하게 경각심을 갖게 해 의혹과 사재기를 야기하고 시장가격을 폭등시킬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핸런 제독이 우리 정부의 지원 요청을 반박한 근거는 이랬다. “공식 기록을 보면 한국전쟁 발발 이전 한국의 쌀 수확량은 관개(灌漑·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댐)된 논에서 27%, 통제된 방식의 관개된 논에서 42%, 부분적으로 관개된 논에서 24%, 그리고 관개되지 않은 논에서 7%가 생산됐다. 이 가운데 가뭄에 직접 영향을 받는 논은 관개되지 않은 논이며, 그 비율은 크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가뭄으로 인해 일부 논에서는 경작을 하지 않았다. 최근 이뤄진 남한 측의 공식 조사에 따르면 관개된 논의 5%, 통제된 방식의 관개된 논의 4%, 부분적으로 관개된 논의 25%, 그리고 관개되지 않은 논의 52%가 모내기를 하지 않았고, 따라서 수확량 감소는 13% 정도로 당초 예상을 밑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작년(1951년) 대비 20%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던 것과 비교할 때 오히려 양호한 수준이며, 금년의 작황은 작년보다 좋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쟁 중임에도 유엔군은 한국 내 쌀 수확량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유엔군의 활동범위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이뤄졌음을 암시한다고도 볼 수 있다.

결론 부분에서 핸런 제독은 △아직은 수확량을 판단하기가 너무 이르다 △개략적인 수치로 볼 때 금년도 작황은 가뭄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나을 것 △UNC는 이재민과 헐벗은 주민들에게 언제든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수 있을 것 △설사 식량부족 사태가 발생하더라도 몇개월간 공급할 식량이 확보돼 사태를 진정시킬 수 있으므로 현재로서는 공황에 빠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표현은 정중해 보이지만 객관적인 증거를 내밀며 우리 정부의 요구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이다. 우리 정부로서는 난감했을 수 있겠다고 여겨진다.

아쉽게도 서한에는 유엔 지원을 놓고 우리 정부와 유엔군 간에 어떤 막후 협상이 이뤄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언급되지 않았다. 다만 유엔군이 수확량 통계를 조작하면 시장에서 사재기 등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의 지원 요청을 거부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6·25전쟁 당시 유엔이 우리에게 구세주였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렇다고 맹목적인 지원 내지 도움을 주지는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숙명여대 글로벌거버넌스연구소 최동주 소장은 “6·25전쟁 당시 군사적·안보적 협력과는 별개로 경제적 지원에 있어 유엔과 우리 정부 사이에 갈등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면서 “전쟁의 숨은 또 다른 얼굴로 오늘날에도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창희 국방대 교수는 “6·25전쟁 기간 중 국가경제 및 곡물의 수확과 분배에 대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핸런 제독의 서한은 한국전쟁 당시 쌀 수확량이 어느 정도였으며, 부족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잣대라는 측면에서도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취재지원=박창희 국방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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