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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름답지만 엇갈린 사랑들…연극 ‘라빠르트망’

입력 : 2017-10-24 01:57:15 수정 : 2017-10-24 01: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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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극에 빠져드는 조건은 비슷하다. 인물들이 매력 있고, 사랑 이야기에 공감 가고 여운까지 남을 때 가상의 멜로는 현실의 관객을 뒤흔든다. 연극 ‘라빠르트망’은 이런 멜로의 성공 조건을 모두 갖춘 아름다운 무대였다. 여기에 연출을 맡은 고선웅의 소소한 B급 웃음과 노장 사상에 영향 받은 특유의 철학은 덤.

연극은 1997년 프랑스 영화 ‘라빠르망’을 무대로 옮겼다. 다만 영화가 현재 시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것과 달리 연극은 알리스·막스·리자가 처음 얽히는 과거에서부터 극을 풀어간다. 

초반부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발레리나 김주원이다. ‘라빠르트망은 고선웅 연출에 김주원·배우 오지호의 첫 연극 도전으로 일찌감치 주목 받았다. 여기에는 ‘무용만 해온 김주원이 연기를 잘 할까’ 하는 궁금증도 포함됐었다. 김주원은 이런 물음표를 말끔히 날린다. 기대 이상의 연기에 국내 최고 발레리나로서 다져온 아름다운 선과 춤이 더해지니 관객도 첫 눈에 반할만한 리자 캐릭터가 탄생했다. 눈길을 붙들어놓는 리자의 매력은 리자와 막스의 사랑이 엇갈릴 때마다 안타까움을 배가시킨다.

알리스를 맡은 김소진은 극 전체를 이끌어가는 일등 공신이다. 두꺼운 안경을 쓴 외톨이로 시작해 악녀와 안쓰러운 여성을 오가는 후반부의 알리스, 극 중 극인 ‘한 여름 밤의 꿈’ 캐릭터까지 폭넓은 연기를 보여준다. 안정적인 발성과 무대에의 몰입, 에너지가 단연 돋보인다.

오지호 역시 첫 연극 도전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극 중 막스는 ‘세 개의 반지가 다 좋다’고 하는 바람에 사실상 여섯 남녀의 비극을 불러온 인물이지만, 오지호가 그려낸 막스는 ‘나쁜 남자’의 면모보다 갈등하는 남성의 내면이 더 부각된다.

고 연출은 ‘사랑의 풍경화’를 그리듯, 이들의 사랑이 곧 인연의 얽힘이자 보편적 사랑의 하나임을 강조한다. 세 사람의 감정선이 얽힐 때마다 이들을 사랑하는 다른 남녀가 지켜보거나,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발랄하게 무대를 가로지른다. ‘모든 사랑은 반복된다’는 운명론적 대사를 극과 동떨어진 노인의 입을 통해 두 번이나 반복하기도 한다.

소품과 무대가 자아내는 깔끔한 선과 발랄한 색감은 연극에 생동감과 사랑스러움을 부여한다. 영상 활용도 눈에 띈다. 회전하는 무대와 빨간 문, 노란 의자, 침대 등의 소품 만으로 현재·과거, 파리 시내와 공항을 오가는 복잡한 동선을 효과적으로 구현했다. 다만 빠른 호흡임에도, 막스와 리자의 엇갈림이 반복되는 대목부터 다소 극이 길게 느껴지는 것은 흠이다. 11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사진=LG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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