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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봉산 자락의 석유비축기지 등 / 발상의 전환 통해 도시 새명물로 / 낡은 시설 철거만 할것이 아니라 / 현대적 감각 입힌 재활용도 좋아 엊그제 서울 마포구 매봉산 자락에 위치한 문화비축기지의 개장식이 열렸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비축기지를 찾은 어린이들은 모래놀이터에서 흙장난을 하며 뛰어노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연인들은 각종 공연과 전시물을 보면서 깊어가는 가을정취를 만끽했다. 이곳이 원래부터 시민들의 자유로운 휴식공간은 아니었다. ‘고쳐서 다시 쓰자’는 서울시의 ‘도시재생’ 개념이 도입되면서 산업화시대 유산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1973년 중동전쟁으로 인한 석유파동을 겪자 시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매봉산 자락 14만㎡에 높이 15, 지름 15∼38짜리 유류탱크 5개를 건설해 석유비축기지를 만들었다. 기지에는 서울시민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석유 등 6907만ℓ의 기름을 저장했다. 1978년 기지가 완공되면서 1급 보안시설로 지정돼 일반인 출입이 금지됐다. 2000년 11월 기지는 2002년 한·일월드컵 축구대회를 앞두고 인근에 상암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면서 안전을 우려해 폐쇄됐다. 이후 대형버스 임시주차장으로 이용됐을 뿐 방치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서울시는 2014년 석유비축기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한다고 발표한 뒤 3년여의 동안 공사 끝에 문화비축기지로 새롭게 만들었다. 석유 대신 문화를 채워 넣자는 의미의 문화비축기지라는 이름을 붙이고 시민에게 공개했다. 기지 한가운데 문화마당을 만들고 기존 석유탱크 5개와 새롭게 만든 탱크 1개가 둘러싼 형태의 명소가 탄생한 것이다. 가스저장고를 공동주택으로 만든 오스트리아 빈의 가소메터 시티 같은 시설이 서울에 생겨났다. 일년 내내 다채로운 공연과 전시행사가 열리는 문화공간이 도심 한복판에 생긴 것이다.

용도폐기된 시설물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 또 있다. 2012년 서울 종로구 청운동 인왕산자락에 문을 연 윤동주문학관이 그곳이다. 인근에 위치한 청운동아파트가 철거되면서 사용이 중지된 수도 가압장을 철거하지 않고 원형을 살리면서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곳에는 윤동주 시인의 학창시절 사진, 친필원고 복사본 등이 전시된 1전시실과 영상자료와 시 ‘자화상’을 볼 수 있는 2·3전시실로 꾸며졌다. 모두 가압장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리모델링해 시민들을 위한 학습 및 문화 공간으로 조성했다. 문학관 내부는 넓지 않지만 내실 있게 만들어 시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데다 시낭송 토크콘서트 등이 개최되면서 도시재생의 효과를 톡톡히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신했다.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한 지리적 입지 때문에 누구나 쉽게 방문해 일제강점기 때 한글로 조국 잃은 아픔을 표현한 젊은 시인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다.

박연직 사회2부 선임기자
지난 5월 개장한 ‘서울로 7017’도 대표적인 도시재생 모델이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노후화로 인해 철거될 위기에 놓였지만 서울시가 보행도로로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전혀 다른 시설물이 됐다. 시는 규모 6.5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내진 1등급을 확보한 뒤 보행로로 만들었다. 보행로에 있는 콘크리트 화분 645개에 꽃과 나무 2만4085그루를 심었다. 현재는 야외 공중수목원을 방불케 할 정도로 다양한 식물들이 시민을 맞고 있다. 외국인들한테도 단골 방문코스로 자리 잡았다. 방문객들은 국보 제1호인 숭례문과 서울역, 인왕산, 남산, 차량이 다니는 도로를 보며 여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다. 서울 중심에 폐도로를 이용한 보행로라는 이색공간이 들어서자 개장 136일 만에 방문객 500만명을 돌파했다. 도시재생의 효과를 체감할 정도로 성공한 시설물이 됐다.

위에 열거한 사례들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얼마든지 도시의 새로운 명물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낡고 오래됐다고 무조건 부수고 헐어버릴 것이 아니라 도시재생이라는 아이디어에 스토리텔링을 활용하면 큰돈 들이지 않고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이라는 방식이 아니라 근현대 건축물이나 산업유산에 현대적 감각을 입히는 온고지신의 도시재생이 필요하다. 전국 곳곳의 오래된 시설물이 재활용돼 지역명물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신축이 능사는 아니다.

박연직 사회2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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