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수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1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 앉아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국감은 김 권한대행 체제의 인정 여부를 놓고 여야 의원들 간 거센 설전 끝에 1시간30여분 만에 끝났다. 이제원 기자 |
자유한국당 소속인 권성동 법사위원장은 이날 모두발언에서 “김 권한대행 체제가 적절한가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있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감 진행 순서를 설명한 뒤 김 권한대행의 인사말을 듣기 위해 자리로 불러들였다.
김 권한대행이 국감장에서 인사말을 하려 하자 먼저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신청하면서 ‘말폭탄 주고받기’가 시작됐다. 이 의원은 “김 재판관을 권한대행이라고 지칭하는 것부터 적절하지 않다”며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았는데 권한대행 자격으로 인사말을 하는 게 헌법에 부합하는지 다퉈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권 위원장은 이어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에게 발언 기회를 주려 하자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격렬히 항의했다.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다. 여당 의원들은 “김 권한대행에 반대하는 야권에 연달아 발언 기회를 주는 게 형평에 맞느냐”는 취지로 항의했지만 권 위원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1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및 법원행정처 등 산하기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이 질의를 하고 있다. |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발언권을 얻은 김 의원은 주먹으로 탁자를 수차례 두드리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여당 의원들을 향해 “조용히 하세요! 지금 권한대행은커녕 재판관 자격도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의 업무보고를 받을 수 없어요!”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개헌 논의를 할 때 헌법재판소 자체가 없어져야 한다”는 폭탄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민주당 박범계 의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김 의원이 뭘 믿고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책상을 두드리고 벌떡 일어나 마치 모든 법사위원을 상대로 협박하듯 눈을 부라리고 발언하는 태도에 대해 엄청난 유감을 표한다”고 맞대응했다.
박 의원은 그러면서 “김 의원이 헌재를 없애자는 막말을 한 것은 오로지 503(박근혜 전 대통령 수형번호), 즉 법무부에 가 있는 박 전 대통령을 위한, 그분에 의한, 그분의 발언”이라고 반격했다.
거센 설전이 길어지자 권 위원장은 김 권한대행에게 “여야 간 공방이 오래 지속할 것 같으니 방에 가 계시다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때 들어오시는 게 좋겠다”고 권유했지만 박 의원이 “그냥 계세요”라며 만류하자 국감장 분위기는 불난 집에 기름 부은 격이 됐다.
여야 의원 가릴 것 없이 권 위원장과 상대 당 의원들을 향해 “지금 뭐 하는 거야!” “왜 나만 갖고 그래!” 등 폭언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김 권한대행은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자리에 앉아 ‘말 전쟁’을 지켜봐야 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 권한대행이 13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장에 앉아 의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이날 국감은 김 권한대행 체제의 인정 여부를 놓고 여야 의원들 간 거센 설전 끝에 1시간30여분 만에 끝났다. 이제원 기자 |
불똥은 다시 청와대로 튀었다. 이용주 의원과 정의당 노회찬 의원은 “청와대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표현을 써 마치 청와대가 헌재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처럼 오해를 산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도 “청와대와 민주당이 대통령 지지도 높다고 야당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없다. 집권 여당이 뭐 하는 당인지 모르겠다”고 거들었다.
결국 이날 국감은 김 권한대행이 물러서지 않는 한 국감을 할 수 없다는 야당 의원들과 국감을 그대로 진행하자는 여당 의원들이 팽팽히 맞서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해 1시간30여분 만에 산회했다. 여야는 종합 국감을 하기 전에 다시 기일을 정하기로 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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