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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아도… 우리 모두는 불완전 그 자체로 아름답다”

입력 : 2017-10-10 21:14:18 수정 : 2017-10-10 2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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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패션위크 참가 이청청 디자이너 / ‘이상봉 아들’ 꼬리표, 축복이자 부담… 홀로서기 도전 계속 / 뉴욕패션위크서 각종 언론 소개되며 좋은 성과 내 / ‘맨발의 디바’ 이은미, 새 컬렉션 모델로… 당당한 멋 보여줄 것 ‘맨발의 디바’ 이은미가 패션쇼 런웨이에 오른다. 이은미는 20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 선다. 50대 가수이자 ‘모델 몸매’가 아닌 그를 조명 아래 세우는 이는 여성복 라이(LIE)의 디자이너 이청청. 이 디자이너는 “이은미 선생님의 개성 강하고 당당하며 에너지 넘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흔히 말하는 20대의 아름다움이 아닌 한국의 다른 세대의 멋을 보여줄 수 없을까 고민했어요. 이은미 선생님을 떠올린 이유는 늘 당당하고 자신감 있어서예요. 머리 모양도 항상 파격적이죠. 표준적인 미와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이 디자이너가 이은미를 통해 표현하려는 건 ‘완벽한 불완전함’(Perfectly Imperfect)이다. 2018년 봄·여름용(SS)으로 그가 준비한 옷에 담은 주제다. 

라이(LIE)의 이청청 디자이너는 20일 서울패션위크에서 ‘불완전한 완벽함’을 주제로 2018 봄·여름 옷을 선보인다. 그는 최근 유럽에서 이는 ‘마른모델’ 규제에 대해 “한국 모델들도 다이어트에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안 되는 걸 바꿔보려 하기보다 고유의 매력을 살리려 노력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상윤 기자
‘18S/S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이 디자이너를 포함 한국 여성·남성복 디자이너들의 개성 넘치는 옷을 감상할 수 있다. 행사는 16∼21일 DDP에서 열린다. 패션위크를 앞두고 서울 강남구 라이 쇼룸에서 이 디자이너를 미리 만났다.

그는 완성된 봄·여름 옷들을 전 세계에 홍보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인터뷰 후 프랑스 파리 트레이드 쇼에 참가한 뒤 중국 상하이 행사를 치르고 서울패션위크를 위해 귀국하는 일정이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 그에게 가장 큰 뉴스는 세계 4대 패션 축제인 미국 뉴욕패션위크 참가였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최하는 ‘컨셉코리아’에 지원해 발탁됐다. “항상 꿈에 그린 무대라 굉장히 감격스러웠다”고 한다.

“결과가 정말 좋아서 다음 시즌이 부담스러울 정도예요. 일단 엘르 UK부터 프랑스 마담피가로, 포브스 등 언론에 많이 소개됐어요. 뉴욕패션위크의 베스트 메이크업 중 하나로 꼽혔고요. 신발 같은 경우 엘르UK가 뉴욕과 런던 쇼에서 뽑은 50개 신발에 선정됐어요. 모델부터 머리, 화장까지 완벽히 맞아떨어져 성공적이었죠.”

라이(LIE)의 2018 봄·여름 옷.
그는 ‘완벽한 불완전함’이라는 주제를 그래픽으로 만들었다. ‘불완전(Imperfect)’이라는 영어 단어를 분해해 ‘나는 완벽하다(Im Perfect)’로 보이게 했다. 이 그래픽을 눈썹 아래에 붙였다. 입술도 위에는 옅게, 아래는 짙게 칠했다.

모델에게 미스코리아처럼 띠를 두르고 이 위에 ‘Perfectly Imperfect’를 새겨넣었다. 모델도 백인, 흑인, 동양인, 남미계까지 다양하게 세웠다. 표준적 미를 거부하고 개성을 찾자고 얘기하기 위해서다.

그는 “사회에서 추구하는 완벽함이 아니라 이렇게도 아름다울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기에, 각자 가진 불완전함 자체가 완벽한 아름다움임을 부각시키려 했다”고 말했다.

그가 뉴욕쇼에 지원한 이유는 때가 됐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2012년 라이를 만들고 2013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판매에 나섰다.

5년차인 올해 라이는 해외 50여개 매장에 들어가 있다. 뉴욕에서는 이상봉 디자이너의 매장 안에 소규모 매장을 들이는 ‘숍인숍’ 형태로 2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상봉 디자이너는 그의 아버지다. 처음 등장했을 때 그에게는 ‘이상봉의 아들’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축복이자 부담인 꼬리표였다. 초등학교 때부터 패션쇼를 보며 꿈을 키운 건 축복, 능력보다 ‘아버지를 등에 업은 거 아니냐’는 시선은 부담이다.

이런 시선을 의식한 그는 일부러 영국 런던에서 먼저 남성복을 시작했다. 자력으로 런던 컬렉션에 네 번 참가했다. 그는 “런던에서 고생해서 패션쇼를 했고, 혼자 해냈다는 자신감을 얻은 다음에 서울에서 라이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런던에서 평범하게 살았어요. 돈 아껴가며 친구와 싼 스튜디오 얻어서 밥솥에 밥 해먹고, 작은 화장실에서 씻고…. 맥도널드에서 15분을 서 있었어요. 햄버거에 치즈를 얹을지 고민하느라. 1000원 차이였거든요. 접시닦이 아르바이트하느라 주부 습진도 걸리고. 이런 시간이 없었으면 아버지의 그늘에서 못 벗어났을 것 같아요. 지금은 ‘이청청 디자이너야. 이상봉씨 아들인데 아빠보다 잘나가’ 얘기해주는 분도 계세요.”

이제 홀로서기했다고 여기는지 묻자 그는 “이상봉 디자이너의 아들이란 건 계속 가져가야 할 이름이고 그만큼 자랑스럽다”며 “동시에 조심스럽고 무서운 부분이 있지만, 제가 당당하면 된다고 생각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평소 아버지보다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많이 쓴다. 함께 일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입에 붙은 표현이다. 단 둘이 있을 때조차 선생님이라 하다 보니 요즘에는 오히려 의식해서 ‘아버님’이라 부르려 한다. 그는 “제가 오너 디자이너로 경영해 보니 외로운 자리 같다”며 “선생님이 외로울 것 같아서 아들 된 도리를 잘해야겠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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