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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자판 크고 귀찮아서…모바일 메신저 속 '한글 파괴'

입력 : 2017-10-08 18:04:32 수정 : 2017-10-08 20:4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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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침 빼고 띄어쓰기 생략 / ‘신조어·비속어·줄임말’ 일상화/“맞춤법 틀려도 의사소통 가능”/ 잘못된 언어 습관에도 무감각/ 책보다 인터넷 접한 청소년들/ 기초적인 표현조차 이해 못해
“지금 소주 3잔째, 맥심원 달리는 중”

직장인 이모(31)씨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이 같은 표현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커피 브랜드 이름 같기도 한 ‘맥심원’이 무슨 뜻인지를 알 수 없었다. 맞춤법이 틀린 다양한 사례 중 하나로 소개된 ‘맥심원’은 ‘최고·최대치’ 등을 의미하는 ‘맥시멈’(maximum)의 오기였다.

잘못된 표현은 수두룩했다. ‘왜승모’(외숙모), ‘성숙이’(성수기) ‘수박 겁탈기’(수박 겉 핥기), ‘간음하다’(가늠하다) 등을 보고는 어처구니없어 하던 이씨는 자신도 얼마 전 동료에게 보낸 휴대전화 메시지에 ‘어의가 없다’(어이가 없다)고 쓴 실수가 떠올라 얼굴이 붉어졌다.

인터넷 확산 이후 나타난 ‘한글 파괴’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모바일 메신저 등의 보편화는 이 같은 현상을 보다 가속화하고 있다. 무분별한 비속어, 줄임말은 물론 입력이 편하다는 이유로 겹받침 생략, 제멋대로의 띄어쓰기 등은 일상화된 수준이다. 8일 대학작문학회 발행의 ‘대학작문’에 실린 논문 ‘대학생들의 카카오톡 언어가 글쓰기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모바일 공간에서 오가는 사적인 대화가 음운적(잘못된 띄어쓰기, 맞춤법), 형태적(줄임말), 어휘적(비속어, 신조어) 측면에서 일상적 글쓰기와 대화를 심각하게 파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 1학년 200명의 카카오톡 언어습관 특징 600개를 조사한 결과 띄어쓰기 오류(153개)와 맞춤법 오류(152개)가 가장 많았다. 이런 습관은 직접 필기를 할 때도 반복됐다. ‘전화를하러가는’, ‘지하철타러가는길이’, ‘가득한곳이지만’, ‘점심먹고 알바가야돼’ 등 띄어쓰기를 하지 않거나 ‘가고이써(가고있어)’, ‘귀차나(귀찮아)’ 등 소리나는 대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돼’와 ‘되’를 잘못쓰거나 ‘ㄻ’, ‘ㄶ’ 등의 겹받침 중 하나를 생략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조사에 참여한 대학생 200명 중 51명은 맞춤법 무시의 이유로 ‘경제성’을 꼽았다. 실시간으로 빠르게 대화하면서 복잡한 받침을 쓸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옳은 표기인지 헷갈려 틀리는 경우(38명)도 상당했다.

이 연구를 진행한 강남대 간호배 교수(국어국문학과)는 “입말을 카카오톡에서 글말로 옮기는 과정에서 커서를 움직여야 하는 번거로움과 맞춤법이 틀려도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다는 생각에 젊은 층에서 잘못된 언어습관이 무감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글 사랑해” 제571돌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을 찾은 시민들이 동상 앞 초대형 게시판에 꽃을 달아 ‘한글 사랑해’라는 문구를 완성하고 있다.
이재문 기자

청소년들은 기초적인 표현조차 잘못 표기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서울의 한 여고에서 근무하는 교사 박모(29·여)씨는 최근 학생들이 제출한 수행평가 과제를 검토하던 중 큰 충격을 받았다. 조선 말기 세금을 걷는다는 명목으로 백성들을 착취했던 ‘삼정 문란’을 묻는 질문에 많은 학생들이 ‘물란’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어린 학생들이 책이나 교과서가 아니라 인터넷에서 글을 많이 보면서 잘못된 표기법을 접한 결과”라며 “올바른 지식을 습득해야 할 시기에 자칫 사실을 왜곡해 받아들이거나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김민순 기자 soo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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