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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에 희망을!] "나는 캥거루족"…빠듯한 청춘의 합리적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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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9-27 19:18:37 수정 : 2017-09-27 21: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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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절반 이상 “나는 캥거루족”/매월 평균 27만원 생활비 지원 받아/직장인 84%도 “부모에 경제적 의존”/청년실업 9.4% 18년 만에 최악/취업해도 대출·월세내면 생활 막막/천정부지 주거비도 독립 못하는 이유
김모(35)씨는 10여년째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다. 경찰 공무원이 되겠다는 생각에 다니던 대학을 일찌감치 그만두고 공시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 김씨의 노량진 학원비와 월세는 이제까지 부모가 해결해줬다. 나이가 너무 들었으니 주변에선 그만 두라고 하지만 그는 계속 노량진에 남아 있다. 김씨는 “이 생활을 그만둬야 한다는 건 알지만 새로운 걸 하려 해도 사회에서 나를 받아 주지 않는다는 걸 안다”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뿐”이라고 털어놨다.

다 커서도 부모 곁을 떠나지 못하는 청춘을 일컫는 ‘캥거루족’. 인터넷 검색을 통해 말의 용례를 찾아보면 IMF 외환위기에 들어선 1997년 즈음 신문 등 언론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기사에서는 “졸업 시즌이 됐는데도 대학을 떠나지 않는 한심한 학생들”이란 어조가 일부 엿보인다. 당시엔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후인 2000년대 초반부터 언론 논조가 점점 심각해진다. “극심한 취업난에 어쩔 수 없이 부모 집에 눌려사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면서 캥거루족을 지칭하는 연령대 역시 기존의 대학생에서 20대 후반∼30대 초·중반으로 확대된다. 일부 대학생의 한심한 세태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사회구조적 요인에 따른 광범위한 사회 현상이었던 것이다. ‘캥거루족’은 이제 다차원적인 해법이 필요한 우리 사회의 고질적 사회문제가 됐다.

◆청년 2명 중 1명 “나는 캥거루족”

20∼30대 청년의 절반가량은 자신을 ‘캥거루족’이라고 생각한다는 설문 결과가 여럿 있다. 올해 4월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20~30대 1724명에게 물었더니 절반 이상(50.2%)이 “나는 캥거루족”이라고 답변했다. 10명 중 9명(90.6%)은 “주거를 포함해 경제적 의존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고정수입이 있는 직장인 중에서도 84.3%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다”고 했다. 청년들이 매월 평균적으로 부모님께 지원받은 금액은 27만원으로 추산됐다.

지난해 11월 한국노동연구원의 ‘청년층 경제활동상태 선택 요인’ 보고서에서도 청년 5687명(취업자 4290명, 미취업자 1397명)을 조사한 결과 취업자의 53.2%가 “부모가 생활비를 부담한다”고 답했다. 본인이 직접 생활비를 부담한다고 답한 이들은 26.7%에 불과했다.

청년층에서 ‘캥거루족’이란 자각은 어쩌면 해가 갈수록 더 심화하는 현상일 수 있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성인남녀 1061명을 대상으로 캥거루족 체감 정도를 조사했더니 “스스로 캥거루족이라 생각합니까?”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6명(56.1%)이 “그렇다”고 답했다. 전년도 조사에선 동일한 질문에 37.5%만 스스로 캥거루족이라고 답했다.
◆일자리와 주거, 캥거루족의 이유

청년들이 캥거루족이 되는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청년층도 먹고살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이 돈을 벌 수가 없어서다.

통계청의 올해 8월 고용동향을 보면 15∼29세 실업률은 9.4%로, 8월 기준으론 1999년 이후 18년 만에 최악이다. 취업준비생 등을 포함한 청년층 체감실업률은 22.5%에 달했다. 통계 수치상으론 4명 중 1명이 실업자 신세라는 얘기다. 취업 과정에서 청년층이 시험 스트레스로 겪는 고통, 인턴과 공모전 등 취업을 겨냥해 학창시절에 투입하는 인생 역량을 고려하면 실제로 본인들이 느끼거나 부담해야 하는 짐은 말로 할 수 없다고 한다. 몇 년 전 가까스로 은행권에 취업한 김모씨는 “낙방 통지를 받을 때마다 내 인생이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며 “취업을 하고도 학자금 대출금과 월세,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남는 게 없다”고 토로했다.

청년층의 또 다른 부담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어오르는 집값이다. 서울 대학가 인근의 싸구려 원룸이라고 해도 월세가 50∼70만원에 달하고 좀 살만 하다 싶은 오피스텔에서 살려면 보증금이 1000만∼5000만원가량 든다. 여기다 가스비, 전기료 등 관리비를 내고 나면 취업에 성공한 직장인이라도 한 달을 버티기가 빠듯한 액수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하면 청년층이 캥거루족이 되는 건 본인들 입장에선 경제적으로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 있다. 집주인에게 무의미하게 나가는 월세를 아낄 수 있고 식비 등 부대비용도 따로 들지 않아서다. 직장인 이모(36)씨는 “직장을 잡고도 몇 년 동안 부모 집에 신세를 졌다”며 “월세가 안 나가는 만큼 저축을 많이 해 일찌감치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고 웃었다.

◆부모세대도 힘들어

부모세대의 삶도 만만치 않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 60세 이상(고령층) 취업자는 424만7000명이다. 15∼29세(청년층) 403만명보다 21만7000명 많은 숫자다. 2분기 고령층 취업자 수로 보면 역대 가장 높은 수치이고, 전체 취업자 중 차지하는 비율도 15.9%로 가장 높은 수치다. 고용률도 41.2%를 기록해 최고치다. 단순히 고령층 인구 증가에 따른 취업자 수 증가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부모세대는 늙어서도 자식을 부양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하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지난해 발표한 ‘우리나라 노인의 취업실태 및 기업의 노인인력 수요에 관한 연구’를 보면 2015년 60세 이상 노인 근로자 중 31.8가 경비·청소·가사도우미 등의 단순노무직에 종사하고 있다. 부모세대는 양질의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육체노동에 내몰리고, 자식세대를 부양하느라 노후자금을 마련이 어려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대한민국에선 부모 캥거루와 자식 캥거루 모두 힘들다는 것이다.

◆전 세계적 현상 확산

‘캥거루족’으로 속앓이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선진국에서도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미국의 부동산 조사업체 ‘트룰리아’는 인구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5년 기준으로 18∼34세 인구의 39.5%가 부모나 친척과 함께 살고 있다고 밝혔다. 특이한 건 미국에서도 이같이 부모·친척의 집에 얹혀사는 18∼34세 청년의 비율은 2005년 이후 지속해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부모·친척과 함께 사는 성인인구 비율은 31∼33%대를 유지했지만 2005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미국의 분석 역시 우리나라와 비슷한 편이다. 하버드 주거학센터 데이터에 따르면 25∼34세 미국 성인 중 연소득 2만5000달러가 안 되는 인구의 40%만이 가정을 꾸린 것으로 조사됐다. 이 비율은 소득 2만5000∼5만달러 사이는 50%, 5만달러 이상은 58%로 높아진다. 이는 임차료 상승과 주택담보대출 조건 강화 등 주거비나 경제 여건과 캥거루족의 양산 간에 상관관계가 작지 않음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분석된다.

프랑스에서는 ‘탕기(Tanguy) 세대’란 말이 캥거루족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부모집에서 얹혀사는 캥거루족 아들을 쫓아내려는 부모와 나가지 않으려는 아들의 한바탕 소동을 그린 영화 ‘탕기’에서 따온 말이다. 프랑스에서는 주거를 둘러싼 부모자식 세대의 다툼이 진짜 소송으로 번지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독일에서는 둥지에 머물며 어미새에 의존하는 조류를 뜻하는 ‘네스트호커(Nesthocker)’, 일본에서는 기생독신이란 뜻의 ‘패러사이트(Parasite) 싱글’ 등의 명칭으로 캥거루족을 지칭한다. 캐나다의 ‘부메랑 키즈’, 이탈리아의 ‘밤보치오니’(Bamboccioni·큰 아기) 등도 비슷한 뜻이다.

캥거루족이 세계적으로 양산되는 원인으론 나라를 막론하고 엇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건 청년 취업난과 비싼 주거비 때문이라는 거다. 과거 1970∼1990년대의 급성장 시대에 태어나 부모세대보다 질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사회에 진출할 즈음에선 경제위기와 경기침체로 취업난을 겪으며 이전 세대보다 훨씬 못한 소득을 받는 탓이다.

박현준 기자 hjunpar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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