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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 지구의 미래] 지진 감지는 신의 영역?…조기 경보로 골든타임 확보해야

입력 : 2017-09-21 09:00:00 수정 : 2017-09-20 23:0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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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 제일 먼저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 도입한 멕시코의 교훈
멕시코에서 규모 7.1의 강진이 발생한 19일(현지시간) 구조대가 멕시코시티의 붕괴된 건물 잔해에서 생존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멕시코시티=AFP연합뉴스
“침대에 누워 불을 끄고 막 잠을 청하려던 참이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아파트 옆 초등학교에서 경보음이 들려왔죠. ‘지진 경보(Alerta Sismica), 지진 경보!’ 하고 말이죠. 소리를 듣고 바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긴 했는데, 막상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더군요.”

멕시코시티에 사는 리지 웨이드(31·여) 기자는 세계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멕시코에서 규모 8.1의 지진이 일어난 지난 7일 밤(현지시간)을 이같이 떠올렸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인 그는 멕시코시티에 머물며 미 과학저널 ‘사이언스’지의 기자(contribution correspondent)이자 ‘와이어드’, ‘슬레이트’ 등 여러 잡지의 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웨이드 기자는 알람 소리에 잠시 머뭇거리다 애완견을 안고 식탁 밑으로 들어갔다.

“예전 캘리포니아에 살 때 지진이 나면 일단 식탁이나 책상 밑으로 들어가라고 교육을 받았어요. 제 뒤를 따라 남편도 식탁 밑으로 들어왔죠. 아파트 복도에서는 주민들이 건물 밖으로 대피하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렇지만 저는 3층 저희 집에서 1분 이내 공터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안 들더군요. 그래서 그냥 개를 품에 안고 식탁 밑에 머물렀어요.”

대피한 상태에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전날 경보시스템 유지보수 작업 도중에 실수로 알람이 울리기도 해서 이번에도 그런 경우인지, 아니면 진짜 대지진인지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 땅이 흔들리기까지는 1분 남짓이 걸렸고요. 이렇게 60여 초라는 시간은 지진이 났을 때 여러 생각을 하며 대비하기에 충분한 시간인 셈이죠. 곧 이어 지진이 시작됐는데 정말 강했어요. 우리집 전기가 끊어지지 않고,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게 다행스럽게 여겨질 만큼요.”

이날 밤 11시50분에 시작된 지진은 자정이 돼서야 진정됐다고 한다. 19일 오후 멕시코시티 인근에서 규모 7.1의 지진이 발생한 직후 다시 웨이드 기자에게 안부와 현지 상황을 묻는 메일을 보냈다. 답신은 18시간이 지난 뒤에야 왔는데 “이번에는 전력과 인터넷이 모두 끊겼다”고 전했다.

◆세계에서 지진 조기경보를 제일 먼저 도입한 멕시코

지진파는 ‘빠르고 순한(피해가 거의 없는) P파’와 ‘느리고 독한 S파’로 크게 나뉜다. 지진 조기경보는 P파를 감지 한 뒤 S파가 오기 전에 주변에 “지진(S파)이 온다”고 알리는 것이다. S파가 느리다고는 해도 1초에 3∼5㎞를 달리기 때문에 지진 조기경보는 ‘초 단위’ 싸움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9월12일 경주에서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을 때 9분이나 지나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되면서 우리나라 조기경보 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났다.
지난해 9월12일 발생한 규모 5.8의 지진으로 기와가 떨어지는 등 피해를 봤던 경북 경주시의 한 주택가. 당시 국민안전처는 지진 발생 9분 뒤에야 긴급재난문자를 보내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멕시코는 세계에서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을 가장 먼저 도입한 나라다. 현재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일본의 조기경보 시스템(2007년부터 운영)보다도 16년이나 앞서 시작됐다. 1985년 발생한 규모 8.0의 멕시코시티 대지진이 계기가 됐다.

1985년 지진으로 내진설계가 부실했던 건물들이 무너져 내려 도시는 초토화됐고, 적게는 5000명에서 많게는 3만명으로 추정되는 시민이 목숨을 잃었다.
1985년 발생한 멕시코시티 대지진.

멕시코시티는 곧바로 조기경보 시스템 개발에 착수했고, 6년 뒤인 1991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태평양과 맞닿은 게레로 해변을 따라 12개뿐이었던 지진 센서는 현재 97개로 늘어났고, 28개가 추가 설치될 예정이다. 경보 운영 지역도 멕시코시티에서 아카풀코, 칠판싱고, 톨루카, 오악사카, 모렐리아로 확대됐다.

경보는 규모 6.0 이상일 때 예상 피해규모를 토대로 발령되는데 지금까지 67차례에 걸쳐 경보(public alert)가 나갔고, 그 아래 단계인 예방경고(preventive alert)는 94차례 발령됐다.

◆독특한 지형과 정책

그런데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조기경보 시스템은 수십 초 내에 지진을 분석해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기술과 비용이 많이 든다. 따라서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의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멕시코 못잖은 지진 다발 지역인 미 캘리포니아주가 제도 도입을 놓고 수십년째 논쟁을 벌이는 것도 정치적 결단이 뒤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딱히 선진적이라 하기 힘든 멕시코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조기경보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멕시코시티에 살고 있는 리지 웨이드 사이언스지 기자.
브리 주커 촬영, 웨이드 제공

웨이드 기자는 멕시코시티의 지리적 위치를 이유로 꼽았다. “멕시코 강진은 대부분 코코스 판과 북아메리카 판이 만나는 태평양 해안을 따라 일어납니다. 그런데 멕시코시티는 해안으로부터 꽤 멀리(약 350㎞) 떨어져 있습니다. 동시에 멕시코시티의 ‘독특한 지형’ 때문에 먼 곳에서 지진이 나더라도 큰 피해가 발생하기 쉽고요. 진원에서 멀고, 지진 피해가 심하다는 점 때문에 조기경보가 빨리 도입될 수 있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조기경보 사업의 비용 대비 효과가 높다는 뜻이다.

웨이드 기자의 말처럼 멕시코시티는 지진 피해가 다른 곳보다 유독 심한 편이다. 과거 호수바닥이었던 퇴적분지에 형성됐기 때문이다. 지진파는 퇴적층처럼 무른 땅에서 천천히 움직이며 피해를 키운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는 “지진파가 빠르면 넓은 지역이 에너지를 나눠갖게 되지만, 느린 속도로 움직이면 같은 양의 에너지가 좁은 지역에 쌓이기 때문에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더구나 분지여서 지진파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공명하며 흔들림을 최대 50배까지 키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도 지진파를 증폭시킬 수 있는 퇴적분지에 형성된 도시가 여럿 있다. 지난해 경주 지진 때도 강원도와 충북, 전북 일부 지역에서 멈춰있는 차가 뚜렷하게 흔들리는 수준의 진도 Ⅳ(4)가 기록되기도 했다. 진원에서 멀다고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운영과 교육 함께 가야

일본 도쿄대학 생산기술연구소에 따르면 지진이 온다는 사실을 5초 전에만 알아도 책상 아래로 피할 수 있다. 대피시간이 20초로 늘어나면 침착하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가 된다. 조기경보가 없을 때 100명이 숨졌다면, 5초의 대피시간이 있을 때는 20명, 대피시간 10초 땐 10명, 20초 땐 5명으로 희생자를 줄일 수 있다.

일본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발생 약 7초 만에 경보를 냈다. 2∼3개 관측소에서 강진이 감지되면 바로 경보를 내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진 관측소 3곳에서 흔들림이 감지되면 지진이라고 판단하지만, 여기서 15초를 더 기다린다. 오경보를 막기 위해 15초 동안 지진 규모와 피해 정도를 반복 계산하기 위해서다.

신동훈 전남대 교수(지구환경과학)는 “일본은 지진 관측 후 바로 경보를 내다보니 오경보율이 20% 정도 되지만, 제도 홍보가 잘 돼 있어 경보가 잘못 나가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측면이 많다”며 “이에 비해 우리나라는 오경보율을 낮추기 위해 15초를 일부러 지연시키는데, 이를 단축시키려면 분석기술 향상과 함께 오경보를 얼마나 수용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기상청은 내년까지 15초의 대기 시간을 7초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2011년 일본 도호쿠(東北) 지방 부근 해저에서 일어난 대규모 강진으로 센다이 시내 건물과 도로에 쓰나미가 덮치고 있다.

멕시코의 지진 대책은 반면교사로 삼을 부분도 있다. 세계 최초로 조기경보를 도입했지만, 여전히 대도시 위주로 운영돼 소규모 마을은 취약지로 남아있다. 이런 곳은 건물 내진 기준도 잘 지켜지지 않아 지난 7일 지진에서도 피해가 심했다.

멕시코 조기경보를 운영하는 멕시코지진기록센터(CIRES)는 19일 멕시코시티에 지진 발생 20초 전, 푸에블라는 12초 전, 칠판싱고는 15초 전 경보를 울렸다고 했지만 웨이드 기자는 “이번엔 알람을 듣지 못했다”고 전해 도시 전역에 경보가 전달되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진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조기경보는 최선의 방법이지만, 제도 도입 자체뿐 아니라 운영 방법, 건축 기준 강화, 대피교육 등도 함께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과학 발전했지만 지진 예측은 아직 ‘신의 영역’

우리나라와 일본, 멕시코 등이 ‘초 단위’ 지진 조기경보를 하는 이유는 결국 지진을 사전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과학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지진 예측은 여전히 ‘신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신도 혀를 내두를 만큼 예상이 적중한 사례가 딱 한 차례 있었다. 1975년 중국 하이청(海城)에서다.

홍태경 연세대 교수(지구시스템과학)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하이청시 당국은 약한 강도의 지진 횟수가 늘자 관료와 학자들을 모아 논의를 벌인다. 이 자리에서 학자들은 “조만간 큰 지진이 날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당국은 1975년 2월4일 주민 소개령을 내렸는데 바로 그날 저녁 7시36분 규모 7.5의 지진이 일어났다.

두고두고 높이 평가할 만한 예측력이지만 빛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듬해 하이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탕산(唐山)에서 규모 7.6의 지진이 일어나 24만∼70만명으로 추정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탕산 지진을 예측하지 못했고 하이청 지진 역시 어떤 근거로 예측을 했는지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다. 탕산 대지진은 20세기 이후 최대 인명피해를 남긴 지진으로 기록됐다.

미국에서도 지진 예측 시도가 있었다. 1985년 미 지질조사국(USGS)의 지진 전문가였던 W H 바쿤은 미 서부 파크필드라는 지역에 약 20년 주기로 규모 6.0 정도의 지진이 일어나는 점에 주목해 다음 지진은 1993년 이전에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의 눈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사이언스지에까지 실렸지만 실제 파크필드 지진은 예측 시점을 훌쩍 넘겨 2004년 일어났다.

홍 교수는 “수억년을 놓고 봤을 때 지진은 주기가 있고 이렇게 긴 세월 속에서 수십년 오차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몇십년의 시간 동안 수십년 오차는 결국 ‘틀렸다’고밖에 이야기할 수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지진 예측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록 지진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조기경보를 잘 활용해 열차를 세워 탈선을 막고 원전 가동을 중단하거나 병원 비상전력을 가동하는 것으로도 피해를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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