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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플러스] 같은 조건이면 졸업예정자…두 번 우는 '흙수저' 취준생

입력 : 2017-09-19 19:38:22 수정 : 2017-09-19 21: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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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격증·어학 등 스펙 쌓기 올인 취준생과 괴리/기업, 졸업평점·전공 등 우선 고려/ 3년 지나면 서류 통과 10%도 안 돼/ 같은 조건 졸업예정자 49배 유리/ 채용 시즌 맞춰 졸업 유예 ‘다반사’/ 학비 마련·학업 병행 청춘 ‘한숨만’/"이런 풍토 때문에 공무원만 선호"
“고시생, 흙수저는 웁니다”

서울에 사는 김모(29)씨는 군 제대 후 약 5년간 행정고시를 준비하다 올해를 끝으로 그만뒀다. 학부를 졸업한 뒤에도 행정대학원에 적을 둔 채 열심히 고시에 매달렸지만, 결과는 번번이 낙방이었다. 올해 하반기 대기업 입사로 목표를 바꾼 김씨는 지난 여름부터 취업 스터디와 어학 점수를 따며 노력했다. 그러나 대기업 인사담당자 근무하고 있는 선배의 말을 듣고 본격적인 취업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도 낙담했다. 김씨는 “선배가 말하기를 요즘 대기업들이 가장 중시하는 스펙 중 하나가 대학교 학부 ‘졸업 시점’이라고 하더라. 근데 나는 고시를 위해 도피성 대학원까지 진학했다. 나처럼 고시를 오래 준비한 이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채용 풍토 아닌가”라며 한 숨을 쉬었다.

대학생 송모(27)씨는 지난 1학기를 끝으로 졸업에 필요한 학점을 모두 채웠다. 지난 8월 ‘코스모스 졸업’이 가능했지만, 송씨는 졸업을 미루기로 했다. 이유는 졸업생 신분보다는 졸업예정자인 게 취업 시장에서 더 유리할 것 같아서다. 송씨는 “학점을 높이기 위해 재수강을 했기 때문에 9학기 만에 졸업학점을 채웠다”면서 “이번 2학기에는 C+로 남아있는 2과목 재수강과 1학점짜리 운동 수업을 하나 들을 생각이다. 다행히 초과학기 때 9학점 이내로 들을 경우 등록금이 100만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100만원 넘는 돈이 아깝기는 하지만, 졸업예정자 신분이 취업에만 유리하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고 말했다.

9월초부터 대기업들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시작하면서 취업준비생들의 마음도 바빠지고 있다. 부족한 스펙을 채우고 자기소개서를 한창 쓰고 있을 취업준비생들에게 대기업들의 채용 풍토는 촉각을 곤두세운다. 최근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질행한 설문에 따르면 취업준비생들이 준비 중인 스펙(복수응답)은 희망 직무 관련 자격증(41%), 전공 관련 자격증(36.4%), 아르바이트 경력(31.1%), 공인 영어점수(28.1%) 등이었다. 지난 상반기 취업에 실패한 취준생들의 90.1%는 “현재 스펙이 부족하다”고 답했고, 40.9%는 스펙이 부족해 입사 시험에서 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담당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는 취준생들이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스펙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국직업능력평가원이 500대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신입사원 선발 시 중시하는 항목을 조사한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최종학교 졸업시점(100점 만점 중 19.6점)이었다. 설령 명문대를 졸업했거나 학점이 아무리 우수해도 졸업한 지 3년이 지나면 취업 확률이 바닥권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조사에 따르면 졸업 3년이 지난 취업 지원자가 서류전형을 통과할 확률은 10%에도 못 미쳤다. 똑같은 스펙이라 하더라도 졸업 예정자가 졸업 후 3년이 지난 구직자보다 서류전형을 통과할 확률은 무려 49배나 높았다.

졸업 시점 다음으로 졸업평점(16.2점)과 전공(14.7점), 출신학교(14.5점)가 그 뒤를 이었다. 취준생들이 열심히 쌓고 있는 스펙인 어학능력(10.3점)과 전공·직무 관련 자격증(9.5점), 해외취업·어학연수(6.0점)은 그리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않았다. 한 대기업 인사 담당자는 “학부 졸업 3년 이내와 3.0 이상의 졸업 평점, 서울 소재 대학 혹은 지방 국립대라는 스펙은 갖춰야 서류전형을 통과할 가능성이 높다”고 충고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대학생들은 졸업시점을 채용 시즌과 맞추기 위해 졸업을 미루기 일쑤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상반기에 미취업한 대학 졸업예정자 443명을 상대로 설문한 결과 45.1%가 졸업을 유예하겠다고 답했다. 이유 역시 ‘재학생 신분이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61.5%), ‘자격증, 외국어 점수 등 부족한 스펙을 쌓기 위해’ 등 취업 관련한 응답이 주를 이뤘다.

취준생들은 이러한 채용 풍토에 불만이 높다. 취준생 이모(28)씨는 “부모님께 손을 벌려 어학 연수를 다녀오고 자격증이나 어학점수 등의 스펙을 쌓으나 청춘을 바치는 게 우리 취준생들이다. 형편이 여의치 않은 취준생들은 스펙 쌓기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최종학교 졸업시점이 더 중요하다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취준생 조모(27)씨도 “안 그래도 흙수저들이 자기 힘만으로 졸업하기는 하늘의 별따기 같은데, 칼자루를 쥔 기업들이 이런 채용 풍토를 가지고 있으니 청년들이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공무원 시험을 보려는 것 아닌가. 나 역시 이번 공채 시즌에 취업하지 못하면 9급 공무원을 준비해볼까 생각중이다”라고 답했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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