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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란 가면 쓴 ‘창조과학’ 허울 벗기다

입력 : 2017-09-16 03:00:00 수정 : 2017-09-15 21: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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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에는 고안자가 있다는 ‘지적 설계론’의 허구 파헤쳐 / 美 일부 주에선 교과과정 편입도 / 진화론자들 검증통해 반론 제기 / “신을 숨긴 변형된 창조론” 지적
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김명주 옮김/바다출판사/7500원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리처드 도킨스 외 지음/김명주 옮김/바다출판사/7500원


지난 11일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청문회에서 ‘지구의 나이’를 두고 때아닌 설전이 오갔다. 박 후보자는 지구의 나이가 6000년이라고 주장하는 창조과학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면서도 “신앙적으로는 (창조론을) 믿고 있다”고 답했다. 창조과학은 진화론 등 근대과학의 성과를 부정하고, 종교와 과학의 경계를 허물려는 기독교 근본주의 세력의 움직임에서 출발한 것이다. 과학계에서는 지구의 나이를 46억년 안팎으로 추정하고 있다.

미국 사회에서는 ‘창조’와 ‘진화’에 대한 인식 차이가 이념과 성향을 가르는 중대 지표로 통한다. 그로 인한 갈등은 대중적이고 감정적이며 복합적이다. 2005년 미국 캔자스주에서는 ‘지적설계론’(Intelligence Design)을 공립학교 교과과정으로 승인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미국 개신교계의 지지를 받은 일부 학자들은 창조론을 지지하기 위해 ‘지적설계론’을 적극 개진하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의 국회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지구의 나이’를 두고 창조과학 논쟁이 일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리처드 도킨스, 스티븐 핑커, 대니얼 대닛 등 진화론자 16명이 쓴 책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는 지적설계론에 대한 반론을 제기한다. 저자들은 지적설계론이 과학이론의 외양을 갖춘 듯하지만, 실상은 창조론에서 신을 숨긴 변형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지적설계론은 윌리엄 페일리의 시계공 이론에 기반을 둔다. 페일리는 “우리가 실제 발견하는 바로 그 목적으로 시계의 구조를 이해해 그것의 용도를 설계한 고안자들이 어떤 시기, 어떤 장소에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했다. 여기서 고안자는 신을 뜻한다. 이에 도킨스는 “아무것도 없는 데서 번쩍 솟아난 가상적인 ‘설계자들’은 자기 자신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어떤 것도 설명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이 같은 논쟁은 결과적으로 창조·진화 논쟁과 맥을 같이 한다.

진화론을 부정하는 지적설계론은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을 근거로 내세운다. 생물의 복잡성을 신의 설계가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킨스는 “인간의 뇌는 알아챌 수 없을 만큼씩 개선되는 중간단계들을 통해 진화했다는 압도적인 증거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적설계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대응에도 모순이 존재한다. 오늘날 미국은 첨단 정보기술을 이끌고, 우주개발과 무기산업을 주도하는 과학기술 강국이다. 그러나 미국은 전체 국민의 90%가 유신론자일 정도로 종교적 색채가 짙은 나라다. 이런 미국이 현대 문명의 선두를 지키는 것은 종교와 과학의 화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신을 믿는 미국인들의 절반은 창조론을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나머지 절반은 ‘유신론적 진화론’의 관점에 있다. 지구와 생명의 역사에 관한 현대 과학이론을 대부분 수용하지만, 그 출발과 전개 과정이 신의 섭리를 따른다고 믿는 것이다. 로마 가톨릭과 주류 개신교도 대체로 이런 유신론적 진화론을 옹호한다.

저자들도 과학이 완벽한 진리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과학은 자연적 메커니즘으로 세상을 설명하기 위한 방법론이자 하나의 제도라는 것이다. “과학은 매우 두터운 신망을 갖고 있고 영향력이 큰 제도인데,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중략) 비판자들의 비판에 대응을 하든지 아니면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거나 수정해야 하는 과학이라는 학문은 희망적 사고에 대한 최고의 해독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지적하는 지적설계론의 문제는 과학이론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이 아닌, 과학이 아니면서 과학을 가장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과학과 종교의 불화가 생겨난 것이다. 책의 핵심이자 결론은 편집자인 존 브록만의 말에서 잘 나타난다. “지적설계 운동은 세계를 선도하는 미국 과학을 위기에 몰아넣고, 그럼으로써 과학발전과 이에 따른 기술발전에 의해 추동되는 미국 경제에 엄청난 위협을 가하고 있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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