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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새삼 영화라는 이름의 한계에 대하여

입력 : 2017-09-02 14:00:00 수정 : 2017-09-01 21: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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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네마프) 포스터(왼쪽)와 상영작

새삼 ‘영화(映畫)’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영화는 더 이상 글자 그대로처럼 ‘비춰진 그림’만은 아니다. 영화는 여전히 스크린이나 액정에 비춰진 움직이는 그림이기는 하나, 재미있는 스토리이든 미처 몰랐던 사실이든 또는 특정 어떤 느낌이든 다양한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담아낸다.

‘이런 것도 영화인가?’ 싶은 영화들도 있다. 지난 8월 25일에 폐막한 ‘제17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에서 소개된 다양한 영화들만 봐도 그렇다. 예를 들어, 대안영화, 에세이영화, 몸짓영화, 심상영화 등등의 낯선 이름으로 불리는 영화들도 상영되었고, 오디오비주얼퍼포먼스라고 불리는 라이브 연주와 함께하는 영화 상영 공연도 진행되었다. (개막 전에 소개하지 못해 아쉽다.)

‘이런 것도 영화인가?’ 싶은 영화들이 요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소위 아방가르드영화나 실험영화, 전위영화 등으로 불리던 영화들이 등장한 시기들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1910년대까지 가게 된다. 어느새 100년의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1910년대는 영화 역사적으로 볼 때, 이제 막 장편극영화가 대세가 된 시기였다. 1분이 채 안 되던 1890년대 후반 초창기 영화들은 약 20여 년 동안 2시간 안팎까지 길어지고, 나름 짜임새 있는 스토리의 극영화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1910년대 후반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영화가 마치 소설이나 연극처럼 스토리나 장면들을 표현하는 것은 영화 고유의 특성을 버린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영화의 고유한 예술적 특성이 시각적인 특성이라고 강조하며, 소위 절대영화라는 완전하게 순수한 시각예술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작품 의도에 따라 초현실주의영화, 입체파영화, 다다이즘영화 등으로 구분되기도 하는 영화들도 제작되었다.

1940년대에는 이런 새로운 영화들의 제작이 미국에서까지 활발해졌는데, 새로 개발된 16미리 카메라 등을 이용해 좀 더 개인적인 차원의 영화들이 제작되기도 했다. 이제부터는 장르를 구분하는 것 자체가 더 어려워진다.

이후에도 다양한 시도들이 지속되고, 영화 개념은 확대된다. 영화가 꼭 촬영이라는 과정을 거쳐야하냐며, 생필름을 유독성 화학약품에 담구는 시도도 있었고, 필름에 꽃잎이나 나방 날개 등을 붙이는 시도도 있었다. 또한 영화가 꼭 스크린 하나에서 상영이 되어야하냐며, 스크린 여러 개에 여러 영화를 동시에 상영하기도 했다. 일부러 편집을 안 하기도 하고, 더 많이 짧게 빠르게 하기도 했다.

우리가 영화관에서 주로 보게 되는 나름 양식화된 장편극영화나 다큐멘터리영화와는 다르게 다양한 실험을 해오고 있는 이러한 영화들은 대중 상영 즉 개봉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렇다고 그들만의 시도나 축제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다양한 시도는 새로운 촬영기법이나 편집기법, 화면 구도 등으로 대세 주류 상업영화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영화가 처음 등장했던 약 120여 년 전을 기준으로 본다면, 요즘 영화는 그때 그 시절 영화와는 매우 다르다. 앞으로 또 다른 120여 년이 흐른 후에는 얼마나 더 달라질까? 당장 10여 년 전과 비교해 봐도 그사이 영화의 주 저장매체였던 필름은 거의 사라졌다. 또 어떤 것들이 사라질까?

새삼 영화의 변화 역사가 흥미롭다. ‘비춰진 그림’ 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이미 그 이름의 한계를 뛰어 넘어버렸으니 말이다. 앞으로도 계속되는 영화의 예측 불허 변화무쌍한 변신을 기대해본다.

서일대학교 연극영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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