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치생명 건 과감한 개혁 ‘유럽의 병자’ EU 리더로 이끌다

입력 : 2017-09-02 03:00:00 수정 : 2017-09-01 22:12:51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통독 이후 살인적인 실업률… 50년간 손대지 못한 사회보장제도 대수술… 지지층선 ‘배신자’ 낙인까지
정치적으로 큰 대가 감수하고 국가 미래 위해 과감한 선택… 한국의 정치계에 큰 교훈
독일연방 제14대 총리를 지낸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큰 정치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야간고교를 졸업했고 ‘알바’로 대학을 마친 청년이 마침내 총리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지지해 준 노동조합이나 지지층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장래를 위해 대개혁을 성공시킨 대인배였다. 통일의 후유증을 앓고 있던 독일을 오늘날 유럽 최대 채권국으로 변모시킨 인물로 단연 슈뢰더 총리를 들고 있다.

2006년 출간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빛바래지 않은 자서전이다. 독일이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어떻게 유럽을 호령하는 부강한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는 대단히 ‘영리한 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정파와 정당을 넘어 국가, 국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실행한 리더였다. 권력자들이 초기엔 다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지도자를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슈뢰더는 해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젠다 2010’이다. 슈뢰더 자신의 지지층을 거스르는 사회복지 수술 및 경제구조 개편이 핵심이었다. 그는 인구 변화와 세계화라는 메가트렌드에 대응하는 ‘국가 아키텍처’로서 미래를 준비했다.

당연히 사민당의 핵심 지지층인 노조원과 연금 수령자들이 공분했다. 그들은 “슈뢰더는 기민당 명예당원이다. 우리 연금에서 더러운 손을 치워라”라며 그에게 온갖 협박과 비난을 쏟아냈다. ‘어떤 불황이 닥쳐도 연금엔 손대지 않는다’는 게 사민당 원칙이었으나 슈뢰더는 연금 개혁 없이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 이익과 지지층 이익의 충돌, 정치적 사망과 눈앞의 표의 충돌에서 그는 전자를 택했다.


슈뢰더 집권 2기 첫해인 2002년 독일은 통일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500만명이 넘는 14%의 높은 실업률에다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0.1%)였다. 슈뢰더가 극비 준비해 발표한 ‘독일 경제재생 계획 10개항’은 충격적이었다. 핵심은 노동시장 유연성의 도입과 연금, 의료보험의 개혁이었다. 개혁안은 간신히 의회를 통과했지만 슈뢰더는 언론으로부터 정치적 자살이라는 평까지 들었다. 그는 개혁을 서두르면 독일 경제가 2~3년 안에 되살아나 다음 총선에서 사민당의 재집권이 가능하다고 선전했다. 훗날 이에 대해 그는 “개혁을 너무 서둘렀다. 경제 회복에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결국 슈뢰더의 개혁은 성공했다. 독일 경제는 재도약 발판을 만들었고, 과실은 후임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돌아갔다. 그 덕에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독일 경제는 부활했으며, 오늘날 유럽을 호령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아마도 이 점이 슈뢰더가 지금도 찬사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메르켈은 2005년 총리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어젠다 2010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게 해준 전임 슈뢰더 총리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파, 정당의 이익보다 국가, 국민의 이익을 먼저 챙겼지만, 슈뢰더에게는 가혹한 정치적 대가가 뒤따랐다. 그의 개혁정책으로 사민당은 분당사태를 맞았다. 당내 좌파인 오스카 라퐁텐이 이끄는 세력이 박차고 나가 ‘좌파당’을 창당했다. 당시 슈뢰더에게는 뼈아픈 사건이었다.

슈뢰더는 1944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벡스텐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집안형편 때문에 야간 고교를 다니며 공장에서 일했다. 그의 삶의 여정은 사민당에 딱 맞을 뿐만 아니라 뼛속까지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는 미국 외교의 치마폭에 안주하지도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일으킬 때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 평화를 대신할 순 없다”면서 ‘No’라고 비판했다. 그는 탈핵을 주도하면서 독일을 재생에너지 신기술의 선도국가로 만들었다. 슈뢰더는 1998년 아시아에 IMF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동아시아 및 한국식 경제개발 모델’의 폐기를 조언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개인과 독과점 기업이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는 재벌모델을 비판한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국민의 탄식 속에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국가 대개혁을 단행해야 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이는 촛불 명예혁명의 정신이기도 하다. 슈뢰더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