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으로 큰 대가 감수하고 국가 미래 위해 과감한 선택… 한국의 정치계에 큰 교훈

2006년 출간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빛바래지 않은 자서전이다. 독일이 전범국가의 이미지를 벗고 어떻게 유럽을 호령하는 부강한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었는지 과정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그는 대단히 ‘영리한 개혁의 리더십’을 발휘했다. 정파와 정당을 넘어 국가, 국민의 미래를 먼저 생각하고 실행한 리더였다. 권력자들이 초기엔 다들 그렇지만 실제로 그런 지도자를 보기 힘든 게 현실이다. 하지만 슈뢰더는 해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어젠다 2010’이다. 슈뢰더 자신의 지지층을 거스르는 사회복지 수술 및 경제구조 개편이 핵심이었다. 그는 인구 변화와 세계화라는 메가트렌드에 대응하는 ‘국가 아키텍처’로서 미래를 준비했다.
당연히 사민당의 핵심 지지층인 노조원과 연금 수령자들이 공분했다. 그들은 “슈뢰더는 기민당 명예당원이다. 우리 연금에서 더러운 손을 치워라”라며 그에게 온갖 협박과 비난을 쏟아냈다. ‘어떤 불황이 닥쳐도 연금엔 손대지 않는다’는 게 사민당 원칙이었으나 슈뢰더는 연금 개혁 없이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했다. 국가 이익과 지지층 이익의 충돌, 정치적 사망과 눈앞의 표의 충돌에서 그는 전자를 택했다.

결국 슈뢰더의 개혁은 성공했다. 독일 경제는 재도약 발판을 만들었고, 과실은 후임자 앙겔라 메르켈 총리에게 돌아갔다. 그 덕에 수많은 일자리가 창출되고 독일 경제는 부활했으며, 오늘날 유럽을 호령하는 경제대국이 되었다. 아마도 이 점이 슈뢰더가 지금도 찬사를 받는 이유일 것이다. 메르켈은 2005년 총리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어젠다 2010으로 새 시대의 문을 열게 해준 전임 슈뢰더 총리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자신의 정파, 정당의 이익보다 국가, 국민의 이익을 먼저 챙겼지만, 슈뢰더에게는 가혹한 정치적 대가가 뒤따랐다. 그의 개혁정책으로 사민당은 분당사태를 맞았다. 당내 좌파인 오스카 라퐁텐이 이끄는 세력이 박차고 나가 ‘좌파당’을 창당했다. 당시 슈뢰더에게는 뼈아픈 사건이었다.
슈뢰더는 1944년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벡스텐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집안형편 때문에 야간 고교를 다니며 공장에서 일했다. 그의 삶의 여정은 사민당에 딱 맞을 뿐만 아니라 뼛속까지 사회민주주의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그는 미국 외교의 치마폭에 안주하지도 않았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을 일으킬 때 “어떤 경우에도 전쟁이 평화를 대신할 순 없다”면서 ‘No’라고 비판했다. 그는 탈핵을 주도하면서 독일을 재생에너지 신기술의 선도국가로 만들었다. 슈뢰더는 1998년 아시아에 IMF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동아시아 및 한국식 경제개발 모델’의 폐기를 조언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개인과 독과점 기업이 엄청난 자본을 축적하는 재벌모델을 비판한 것이다. “이게 나라냐”라는 국민의 탄식 속에 출범한 문재인정부는 국가 대개혁을 단행해야 하는 분기점에 서 있다. 이는 촛불 명예혁명의 정신이기도 하다. 슈뢰더의 리더십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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