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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병… 김춘수… 구상… 이 거리를 배회하며 詩를 노래 했을까

입력 : 2017-08-31 10:00:00 수정 : 2017-08-31 11:3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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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화했던 수출도시… 예술인들 아지트 곳곳에 / 2010년 창원과 통합 후 정체성 잃어가는 도시는 창동예술촌으로 되살아났다 / ‘마산 3당’ 아귀찜·통술집거리…
새록새록 추억이 골목마다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이곳을 찾던 많은 이들이 이미 거의 다 갔지.”

검붉게 녹슨 압정으로 벽에 사진들이 덕지덕지 고정돼 있다. 사진 자체도 흑백이거나 색이 바랬는데, 그 위로 음식물이 튀거나 녹이 번져 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보던 조남융(81)씨는 허름한 가게에 있는 오디오를 켠다. 오래된 식탁의자와 정리되지 않은 식기들이 놓여 있는 동네 선술집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차이콥스키의 ‘비창’이다.

마산 창동의 선술집 만초에 걸려있는 예술가들의 사진. 클래식 음악을 트는 만초는 옛 마산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클래식 음악을 트는 만초는 옛 마산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고전 음악의 집’,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란 가게 창의 문구에 옛 기억이 그대로 서려 있다.
‘만초(蔓草)’. 이 가게의 상호다. 하지만 큰 의미가 없다. 조씨가 1971년 문을 연 ‘음악의 집’이 시작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으니 대학생과 예술인들이 찾아와 맥주, 양주를 즐겼다. 이후 경남 마산 오동동 코아양과 맞은편으로 옮긴 후 시인 구상, 가곡 ‘뱃노래’의 조두남, 화가 최운, 시인이자 연극인인 정진업 등이 찾는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70년대 후반 가게를 닫은 후 80년대 후반 지금 ‘만초’ 간판이 있는 곳에 다시 문을 열었다. ‘만초’는 이전 주인이 쓰던 간판으로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뿐이다. 조씨는 지금도 베토벤, 드보르자크 등이 작곡한 음악을 튼다. 이 노래를 즐겨 듣던 이들은 대부분 사진 속에서만 환하게 웃고 있지만, 노래는 당시 그대로다. ‘고전 음악의 집’, ‘술과 소리가 있소이다. 그냥 갈랑겨.’란 가게 창의 문구에 옛 기억이 그대로 서려 있다.
창동상상길엔 마산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화가인 문신의 작품 개미조형물이 서 있다.


마산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화가인 문신의 자화상.
경남 마산은 사라졌다. 교과서에서는 수출자유지역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 경남 최고의 도시로 소개됐지만, 옛일이다. 마산은 2010년 창원과 통합된 후 추억의 도시가 돼버렸다. 경남 창원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가 지금의 마산이다. 지명은 사라졌지만, 공간은 그대로다.

‘만초’ 등이 있는 옛 마산의 중심지 창동은 도시 쇠퇴와 맞물려 공동화를 겪었다. 조선시대 형성된 어촌 마을은 항구가 커지며 물자를 보관하던 창고가 많아져 동네 이름이 창동이 됐다. 바다가 매립돼 지금은 바다와 거리가 있지만, 어시장이 앞에 있어 과거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마산의 중심지였던 창동엔 옛 추억이 남아있다. 도심 재생 프로젝트로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는 창동 골목.
2012년부터 시작된 도심 재생 프로젝트인 창동예술촌 사업으로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다. 그 중심이 창동상상길이다. 상상길 건너편 빵집 코아양과를 시작으로 과거의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번화한 상상길 곳곳에 골목들이 거미줄처럼 퍼져 있다. 마산예술흔적골목과 에꼴드창동골목, 문신예술골목 등으로 나눠져 있는데 특징을 구분하긴 힘들다.

골목길 벽엔 김춘수 시인, 현대미술 1세대 최운, 천상병 시인 등 해방 후 마산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보통 빨간 개미조형물이 서 있는 골목에서 마산 추억여행은 시작된다. 개미조형물은 마산을 대표하는 조각가이자 화가인 문신의 작품이다. 골목엔 문신을 비롯해 김춘수 시인, 현대미술 1세대 최운, 천상병 시인 등 해방 후 70년대까지 마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사진이 걸려 있다.

3·15 의거를 기념해 시민들이 기증한 다채로운 색의 화분을 볼 수 있다.
골목에 들어서면 옛 흔적과 현대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는 예술촌이 조성돼 있다. 골목에 작은 점포들이 즐비하게 이어져 있는데, 예술가들이 특성에 맞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점포에 들어가 작가들과 얘기를 할 수도 있고,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골목길에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의거를 기념해 시민들이 기증한 315개의 작은 화분들과, 문신의 자화상 등을 만날 수 있다.


창동엔 마산을 대표하는 빵집 코아양과와 고려당이 있다.
예술촌에서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곳은 코아양과와 더불어 마산 빵집을 대표한 고려당이다. 또 고려당은 시민들이 주로 만나던 약속장소 서점 학문당, 금은방 황금당과 함께 ‘마산 3당’으로 불린 곳이다.

부림시장에는 화분받침에 국물 떡볶이 그릇을 담아주는 6.25떡볶이가 유명하다.
예술촌은 부림시장과 이어진다. 한복 전문시장인데, 한때는 1000개가 넘는 점포가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 지금 부림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떡볶이집이다. 화분받침에 국물 떡볶이 그릇을 담아주는 6.25떡볶이가 유명하다. 예전엔 화덕 주변에 옹기종기 앉아 떡볶이를 먹었다. 그릇을 들고 먹기엔 뜨거워 화분받침에 담아 줬다고 한다. 쪼그려 앉아 먹는 모습이 피난민같이 보여 상호가 ‘6.25떡볶이’가 됐다.


창동상상길 건너편 오동동 사거리엔 아귀탕, 아귀찜 등을 파는 아귀찜 골목이 있다.
마산 먹거리로는 아귀를 빼놓을 수 없다. 잡히면 ‘재수 없다’고 버리던 생선 아귀가 요리재료로 변신한 건 1960년쯤으로 추정된다, 상상길 건너편 오동동에서 식당 할머니가 아귀에 된장, 고추장, 콩나물, 미나리, 파 등을 섞어 내놓은 게 시초다. 음식이 맵고 담백하면서 식감은 쫄깃쫄깃해 어부들을 중심으로 알려지게 됐다. 이때부터 오동동 사거리 아귀찜 골목 식당들이 생겼다. 마산 아귀찜은 생아귀보다 찬바람에 한 달가량 말린 건아귀로 만든다. 아귀가 부담스럽다면 인근엔 복요리 거리와 어시장도 있다. 해산물만 먹기 부담스럽다면 통술골목이 기다린다. 통술집 원조거리는 오동동 부근이었지만 지금은 신마산에 통술 거리가 생겨났다. 술을 시키면 푸짐한 안주가 상에 깔리는데, 술을 더 시킬수록 새로운 안주가 나온다. 술을 마시지 않을 땐 안주만 따로 시켜서 먹을 수도 있다.

마산(창원)=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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