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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칼럼] 1898년, 한국 최초 여성단체가 설립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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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27 20:57:20 수정 : 2017-10-11 11: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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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초 여학교 설립 후원 등 / 개화기 여성해방 단초 마련한 / 찬양회가 만들어진 9월1일을 / 한국여성의 날로 제정했으면

1898년 9월 1일은 한국 여성사에서 매우 뜻 깊은 날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단체인 찬양회(贊襄會)가 출범하면서 여권통문(女權通文)을 발표한 날이기 때문이다. 찬양회는 특히 여학교 설립 후원을 목적으로 개화된 여성들이 발족했는데, 찬양이란 ‘도와서 길러준다’는 뜻으로 즉 후원, 양성을 의미한다. 회장에는 이양성당, 부회장에는 김양현당, 총무에는 고정길당 등으로 구성됐으며 조직은 부인회원이 400명이고 집회 때마다 방청인이 100여명이나 모일 정도로 큰 집단을 이루었다. 찬양회는 주로 서울 북촌 출신의 개화된 지식층 여성을 중심으로 서북지방 출신 내지 외국생활을 경험한 여성, 새롭게 선교사가 설립한 학교를 졸업한 여성, 그 외에 기생, 서민층 등 다양한 계층의 여성으로 구성됐다.

 

이렇게 다양한 많은 여성으로 단체를 구성할 수 있었던 배경은 1886년 이 땅에 최초로 스크랜턴 선교사가 세운 이화학당을 비롯해 그 후에도 계속 여학교가 설립되면서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한다’는 일념으로 여성의식이 깨어났기 때문이다. 점차 여성교육기관이 확대되면서 여성해방의 단초가 열렸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이는 첫째, 내외법에 의해서 안에서만 유폐돼 있던 여성에게 밖으로 활동범위를 넓힌 공간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둘째, 교육에서 소외됐던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 무지(無知)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셋째, 직업의 기회를 다양하게 접할 수 있는 역할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여성이 전문직 등 경제활동에 뛰어들 여건이 조성된 것이다. 넷째, 가부장적 굴레에 얽매어 있던 여성에게 주체의식을 심어준 의식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다섯째, 여성의 인간화로부터 남녀평등의 단계까지 접근할 수 있는 불평등한 성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여권통문’에서 주장한 선언은 문명, 개화정치를 수행하는 민족구국대열에 여자도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며,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직업을 가지고 일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교육받음으로써 독립된 인격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 여성에 의한 최초의 여권선언이고 동시에 여성의 교육권 획득을 위한 여권운동의 시발이었다.

 

통문은 단순한 여학교 설립 목적뿐 아니라 서구사회에서 성취된 것과 같은 서양의 천부인권 사상을 배경으로 남녀평등권의 획득을 구상하고 있다. 충군애국(忠君愛國)하는 국민의 한 성원으로서의 여성교육을 위해 국가가 당연히 여학교를 설립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관립 여학교 설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1898년 10월 13일에는 회원 100여명이 덕수궁 대궐문 앞에 나아가 관립여학교 설립청원 상소문을 고종황제에게 직접 올렸다. 고종황제도 학부로 하여금 적절한 조치를 내리겠다고 긍정적인 회답을 했으나 정부 측에서는 한 해가 다 가도록 설립 준비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찬양회는 1899년 2월까지 여학교 설립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이미 여학생을 선발해 놓은 터라 2월 26일 서울 어의동에서 여학생 30명으로 순성여학교를 개교했다. 이것은 한국인에 의해 특히 한국여성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여학교였다. 찬양회는 부회장인 김양현당을 교장으로 임명했고, 찬양회 사무원으로 뽑힌 고정길당을 유일한 전임 교원으로 했다. 또한 우리말과 한문에 능통한 여선교사를 교원으로 해 순성여학교를 운영했다. 결국 연이은 재정곤란과 교장인 김양현당이 1903년 3월 병사하면서 순성여학교는 더 이상 존속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정부의 여성교육에 대한 무관심을 일깨웠고 여학교 설립의 필요성을 사회 전반에 인식시키는 데 공헌했다.

 

이토록 개화기의 여성들은 선각자적 정신으로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고,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획득하는 데 적극적으로 투신했다. 그 영향으로 많은 여성이 전문직으로 진출하고 3·1운동을 비롯해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됐다. 이와 같이 주체적으로 세력을 결성해 여성을 역사의 전면에 서게 한 찬양회의 출범일인 9월 1일을 한국여성의 날로 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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