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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품위는 기본적 인간 특성
진심·배려 등과 같은 의미로 해석
인간 자질이 품위로 격상될 만큼
인간성이 격하돼 있는건 아닌지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품위 있는 그녀’를 보면 강남 부자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특성으로 중요하게 내세우는 기준이 바로 ‘품위’이다. 집이나 자동차, 피부나 몸매에서 더 나아가 고급한 취향을 그들만의 유전자처럼 간주하는 것이다. 속물이나 졸부와의 차별화 전략에 필요한 기준일 수도 있다. 가령 드라마에서는 소위 상류층 여자들이 지켜야 할 품위 있는 어법으로 ‘동사보다는 명사를 이용해 의미 전달하기’나 ‘짧은 대답은 반드시 존댓말로 답하기’, ‘자신의 의견을 피력해야 하는 순간엔 어미를 축약하기’ 등이 등장한다. 갑질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갑질처럼 보이지 않게 갑질을 하는 것이 포인트인 듯하다.

2000년대 초기부터 ‘강남소설’이라는 하위 장르가 한국문학에 등장했다. 분배의 불평등이라는 경제적 요인이 아니라 빈곤에 대한 혐오라는 심리적인 문제 중심으로 강남 내부자의 입장에서 계급 간의 갈등을 새롭게 조명한 한국형 부르주아 소설이 강남소설이다. 대표작으로 정미경의 소설 ‘내 아들의 연인’을 들 수 있다. 상위 1%에 속하는 강남 아줌마가 자신의 아들이 사귀는 고아 출신의 빈곤층 연인에게 느끼는 거부감을 입체적으로 그린 수작이다. 스스로도 가난한 고학생이라는 이유뿐만 아니라 ‘Chopin’을 ‘쇼팽’이 아니라 ‘초핀’으로 잘못 읽는 문화적 문외한이었기에 헤어졌던 과거가 있기도 하다. 이런 ‘내 과거의 연인’처럼 ‘내 아들의 연인’은 “옷 하나 유행 따라 차려 입지 못하는” “뼛속 깊은 데서 나오는 다름”을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이처럼 계급이나 지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문화적 취향을 흔히 ‘아비튀스(habitus)’라고도 하는데, 당연히 이것을 통한 계급 간의 구별 짓기 자체가 허상이나 허구이기 쉽다. 드라마 속에서도 이에 대한 신랄한 풍자가 이루어진다. 부자들이 광분했던 총각김치의 비결이 특급 재료나 전문가의 손맛이 아닌 값싼 조미료였기 때문이다. 조선족 불량배의 “조미료 범벅이 뭐가 맛있습네까?”라는 말 한마디로 부자들의 입맛은 조롱당한다. ‘내가 소비하는 상품이 바로 나다’를 ‘돈으로 살 수 없는 상품이 바로 품위다’라고 반격하는 꼴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단순히 천박한 강남 부자들에 대한 비판에만 골몰한 것은 아니다. ‘품위 있는 그녀’를 통해 과연 품위 있는 인간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간병인으로 위장해서 접근해 재벌가의 안주인까지 된 박복자가 이름을 박지영으로 고상하게 개명해도 가질 수 없었던 진정한 품위는 과연 무엇인가. “재벌 별거 없네”라는 박복자의 자조를 통해 그 답을 유추해볼 수 있다. 돈이라는 인공의 날개로 날아올라 가까스로 진입한 가짜 낙원 속에 사는 재벌들에게는 없지만, 박복자가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이상형이자 재벌가 며느리라는 타이틀을 스스로 거부한 우아진이라는 인물에게는 있는 바로 그 품위 말이다.

우아진으로 대변되는 품위는 사실 드라마 속에서 우아함이나 고상함, 기품이나 위엄 등을 의미하는 원래의 뜻과 다르게 다가온다. 의외로 기본적인 인간의 특성, 즉 진심, 배려, 예의, 공감, 상식 등의 개념과 동의어처럼 해석되기 때문이다. 이런 평범한 인간적 자질이 품위로 격상될 만큼 현재 우리의 인간성 자체가 많이 격하돼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기도 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나 존중받는 눈빛이 너무도 소중하게 다가오니까.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이 품위를 더 소중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품위 있는 그녀’는 그냥 ‘인간적인 그녀’일 뿐이니까. 하기야 인간답게 사는 게 참 어렵기는 하다. 괴물이 들으면 비웃고 동물이 들으면 화낼 정도로. 그래서 품위는 선천적인 유전형질이 아니라 후천적인 획득형질인가 보다. 이익이 아닌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따뜻한 자본주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김미현 이화여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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