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체화정은 정자와 인공연못, 배롱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연못엔 세 개의 섬이 조성돼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삼신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체화정은 조선 효종 때 이민적이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지었다. |
선비 하면 떠오르는 지역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경북 안동이다. 안동에는 수많은 정자, 서원 등이 있다.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솟을대문을 가진 고택이 한 채 정도는 있다. 그만큼 흔한 것이 고택이다.
안동 길안면 묵계리로 향하면 개울을 만난다.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길안천이다. 묵계서원 인근에서 길안천 지류를 따라 오르면 산골짜기에서 아담한 송암폭포를 만난다. 비가 온 뒤면 제법 우렁찬 소리를 내고 낙하한다. 폭포 주위로 어지럽게 뻗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처마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소나무와 폭포,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이 그동안 익숙하게 봐왔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거기에 더해 온통 초록으로 물든 수풀 사이로 배롱꽃이 붉게 피어 단조로운 단색의 그림에 생기를 더한다.
경북 안동 만휴정은 소나무와 폭포,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이 그동안 익숙하게 봐왔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수풀 사이로 배롱꽃이 붉게 피어 단조로운 단색의 그림에 생기를 더한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이 말년에 머문 곳이다. |
자연에 주인은 없겠지만, 이 정자 하나로 이곳만은 주인이 명확할 듯싶다. 아늑하게 자연을 품은 이 정자는 보백당(寶白堂) 김계행이 말년에 머문 만휴정(晩休亭)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누구나 이 풍광은 주인이 될 수 있다. 문은 열려 있다.
만휴정 앞에는 도포자락을 펼쳐 놓은 듯한 너럭바위가 놓여 있다. 이 바위를 타고 내리는 계곡물이 만휴정 앞에서 작은 소를 이룬다. 소 위에 놓인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잠시나마 정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찾는 이 많지 않은 곳이기에 정자에 앉아 오롯이 폭포와 새소리를 벗삼아 녹음을 즐길 수 있다.
만휴정에 걸린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편액이 걸려 있다. ‘우리 가문에 물려줄 보물은 없다.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다’라는 뜻으로 김계행이 후손에 남긴 유훈이다. |
정자엔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우리 가문에 물려줄 보물은 없다.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다’라는 뜻이다. 정자의 주인 김계행이 후손에 남긴 유훈이다. 51세에 뒤늦게 벼슬길에 오른 그는 연산군에게 충언을 올리다 눈 밖에 났고, 17년간의 관직생활을 마쳤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만휴정을 짓고 임종할 때까지 머물렀다. 특히 김계행의 조카이자 세조 때 국사(國師)였던 학조 스님이 그에게 벼슬길에 힘이 되어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김계행이 피가 날 정도로 학조 스님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댔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안동 하회마을의 옥연정사에서 임진왜란 전란사 징비록을 집필했다. |
낙동강과 마주한 하회마을의 옥연정사와 겸암정사는 서애 류성룡 형제가 지은 정자다. 두 곳 모두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위해서 지은 곳으로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류성룡의 옥연정사와 그의 형 류운룡의 겸암정사는 부용대 양편에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서 부용대를 봤을 때 왼편이 옥연정사, 오른편이 겸암정사다. 두 정자를 오가려면 지금은 부용대 정상을 오른 후 반대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들 형제는 부용대 중간에 난 벼랑길을 통해 오갔다고 한다. 지금은 수풀이 우거지고 뱀이 많아 인솔자 없이 가기엔 위험하다.
낙동강 건너편 하회마을에서 부용대를 봤을 때 왼편이 옥연정사, 오른편이 겸암정사다. |
경북 안동 시내에서 풍산읍으로 가는 924번 지방도로에 있는 체화정은 자연과의 조화보다는 인공미가 가미된 정자다. 정자와 연못 앞으로 도로가 나 있어 옛 모습을 잃었지만, 도로 건너편으로 낙동강 지류인 상리천이 흐르고 있다. 도로가 없을 당시 체화정에서 상리천까지 이어진 들판은 충분히 조망이 가능했을 것이다. 상리천이 보이지 않아도 정자와 인공연못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연못엔 세 개의 섬이 조성돼 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한다고 한다. 연못 건너편에서 삼신산에 안긴 정자를 볼 때와 배롱꽃에 둘러싸인 정자를 바로 앞에서 볼 때 분위기는 다르게 다가온다. 체화정 현판 뒤쪽의 ‘담락재(湛樂齊)’란 현판은 단원 김홍도의 글씨다. 체화정은 조선 효종 때 이민적이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경북 안동 체화정은 정자와 인공연못, 배롱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연못엔 세 개의 섬이 조성돼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삼신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체화정은 조선 효종 때 이민적이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지었다. |
안동=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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