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여행] 세월 흘렀어도 청렴한 기백만은 푸르르다

관련이슈 'W+'여행

입력 : 2017-08-18 10:00:00 수정 : 2017-08-17 14:47:27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충언 올리다 연산군 눈 밖에 나 낙향한 보백당 김계행 말년 보낸 ‘만휴정’/서애 류성룡 형제가 정진하며 제자 양성하던 하회마을 ‘옥연정사’ ‘겸암정사’/단원 김홍도의 글씨 ‘담락재(湛樂齊)’ 걸려있는 ‘체화정’
경북 안동 체화정은 정자와 인공연못, 배롱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연못엔 세 개의 섬이 조성돼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삼신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체화정은 조선 효종 때 이민적이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지었다.
여름 더위를 잊기 위해 주위 눈치를 보지 않고 시원한 물에 풍덩 빠진다. 당연한 여름나기 방법이다. 하지만 주위의 시선을 신경써야 한다면 이런 여름나기는 꿈일 뿐이다. 과거 선비들에게 이런 여름나기는 체통에 어긋나는 행위였을 것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보단 덜 시원하더라도 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풍광 좋은 곳에 앉아 여름을 보내는 것이 당시의 피서였다. 그들처럼 여름을 날 필요는 없지만, 당시 선비들이 여름나기를 했던 산천 계곡의 정자를 찾는다면 당시의 ‘여름 낭만’을 느낄 수 있다. 빼어난 경치를 품고 있는 곳에 세운 정자에서 간혹 찾아온 벗과 술잔을 부딪치며 시를 읊는 것이 그네들의 낭만이었을 테다.

선비 하면 떠오르는 지역 중 가장 대표적인 곳이 경북 안동이다. 안동에는 수많은 정자, 서원 등이 있다. 작은 시골마을이지만 솟을대문을 가진 고택이 한 채 정도는 있다. 그만큼 흔한 것이 고택이다.

안동 길안면 묵계리로 향하면 개울을 만난다.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흐르는 길안천이다. 묵계서원 인근에서 길안천 지류를 따라 오르면 산골짜기에서 아담한 송암폭포를 만난다. 비가 온 뒤면 제법 우렁찬 소리를 내고 낙하한다. 폭포 주위로 어지럽게 뻗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처마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낸다. 소나무와 폭포,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이 그동안 익숙하게 봐왔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거기에 더해 온통 초록으로 물든 수풀 사이로 배롱꽃이 붉게 피어 단조로운 단색의 그림에 생기를 더한다.
경북 안동 만휴정은 소나무와 폭포, 정자가 어우러진 모습이 그동안 익숙하게 봐왔던 한 폭의 수묵화처럼 다가온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수풀 사이로 배롱꽃이 붉게 피어 단조로운 단색의 그림에 생기를 더한다.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이 말년에 머문 곳이다.

자연에 주인은 없겠지만, 이 정자 하나로 이곳만은 주인이 명확할 듯싶다. 아늑하게 자연을 품은 이 정자는 보백당(寶白堂) 김계행이 말년에 머문 만휴정(晩休亭)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누구나 이 풍광은 주인이 될 수 있다. 문은 열려 있다.

만휴정 앞에는 도포자락을 펼쳐 놓은 듯한 너럭바위가 놓여 있다. 이 바위를 타고 내리는 계곡물이 만휴정 앞에서 작은 소를 이룬다. 소 위에 놓인 작은 돌다리를 건너면 잠시나마 정자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찾는 이 많지 않은 곳이기에 정자에 앉아 오롯이 폭포와 새소리를 벗삼아 녹음을 즐길 수 있다.
만휴정에 걸린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 편액이 걸려 있다. ‘우리 가문에 물려줄 보물은 없다.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다’라는 뜻으로 김계행이 후손에 남긴 유훈이다.

정자엔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우리 가문에 물려줄 보물은 없다. 보물이 있다면 청백뿐이다’라는 뜻이다. 정자의 주인 김계행이 후손에 남긴 유훈이다. 51세에 뒤늦게 벼슬길에 오른 그는 연산군에게 충언을 올리다 눈 밖에 났고, 17년간의 관직생활을 마쳤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만휴정을 짓고 임종할 때까지 머물렀다. 특히 김계행의 조카이자 세조 때 국사(國師)였던 학조 스님이 그에게 벼슬길에 힘이 되어주겠다는 제안을 하자 김계행이 피가 날 정도로 학조 스님의 종아리에 회초리를 댔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서애 류성룡 선생은 안동 하회마을의 옥연정사에서 임진왜란 전란사 징비록을 집필했다.

낙동강과 마주한 하회마을의 옥연정사와 겸암정사는 서애 류성룡 형제가 지은 정자다. 두 곳 모두 학문 정진과 제자 양성을 위해서 지은 곳으로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류성룡의 옥연정사와 그의 형 류운룡의 겸암정사는 부용대 양편에 자리하고 있다. 낙동강 건너편에서 부용대를 봤을 때 왼편이 옥연정사, 오른편이 겸암정사다. 두 정자를 오가려면 지금은 부용대 정상을 오른 후 반대편으로 넘어가야 한다. 하지만 이들 형제는 부용대 중간에 난 벼랑길을 통해 오갔다고 한다. 지금은 수풀이 우거지고 뱀이 많아 인솔자 없이 가기엔 위험하다.
낙동강 건너편 하회마을에서 부용대를 봤을 때 왼편이 옥연정사, 오른편이 겸암정사다.

경북 안동 시내에서 풍산읍으로 가는 924번 지방도로에 있는 체화정은 자연과의 조화보다는 인공미가 가미된 정자다. 정자와 연못 앞으로 도로가 나 있어 옛 모습을 잃었지만, 도로 건너편으로 낙동강 지류인 상리천이 흐르고 있다. 도로가 없을 당시 체화정에서 상리천까지 이어진 들판은 충분히 조망이 가능했을 것이다. 상리천이 보이지 않아도 정자와 인공연못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연못엔 세 개의 섬이 조성돼 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삼신산(三神山)을 의미한다고 한다. 연못 건너편에서 삼신산에 안긴 정자를 볼 때와 배롱꽃에 둘러싸인 정자를 바로 앞에서 볼 때 분위기는 다르게 다가온다. 체화정 현판 뒤쪽의 ‘담락재(湛樂齊)’란 현판은 단원 김홍도의 글씨다. 체화정은 조선 효종 때 이민적이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경북 안동 체화정은 정자와 인공연못, 배롱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한다. 연못엔 세 개의 섬이 조성돼있다.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삼신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체화정은 조선 효종 때 이민적이 형제간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지었다.

안동=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