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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코리아패싱과 패시지 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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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14 23:18:41 수정 : 2017-08-14 23: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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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아패싱은 남북 분단 상황과 남한 당쟁으로 인한 분열이 원인 / 역사에서 패싱당하지 않으려면 국력을 키우는 방법밖에는 없어 최근 한반도 북핵 사태를 둘러싸고 ‘코리아패싱(Korea passing)’이 심심찮게 거론되고 있다. 국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당사국을 아예 제외시킨다는 것은 일종의 국가 상실이고 치욕이다. 국제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자격 미달이거나 자격을 의심한다는 뜻이 내포돼있다. 그러한 말 자체가 떠돈다는 것이 이만저만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그만큼 독립적인 힘이 없었던가, 그동안 떠들었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확실한 것은 코리아패싱이라는 문제는 우리가 자초했다는 점이다.

코리아패싱이라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역사적 사실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을 일으키면서 조선에 요구한 ‘가도정명(假道征明)’이었다. “명나라를 정복하러 칼 터이니 길을 비켜 달라”는 뜻이다. 조선은 싸울 잽도 되지 않느니 길을 비켜라, 즉 패싱(통과)하겠다는 뜻이다. 임진왜란 때 조선은 한 달도 못돼 한반도 전체를 왜군에 내주다시피 하고 선조는 의주에서 망명을 거론할 정도로 수세에 몰렸고, 명나라에 온갖 아부와 치욕을 떨면서 원군을 요청했다. 당시 명과 왜는 전쟁이 어려워지자 평화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한반도의 남북을 갈라 먹을 안을 내놓은 적도 있다. 아마도 한반도를 주변 강대국이 갈라 먹는 발단이 그 협상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일본은 그 때부터 한국을 우습게 보았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메이지유신으로 제국이 된 일본은 미국과 동아시아 지배권을 다투면서 태프트가쓰라밀약, 즉 미국이 필리핀을 먹는 것을 눈감아 줄 터이니 조선은 일본에 양보해 달라는 내용의 협약을 진행했다. 그 결과 치욕적인 조일 강제병탄(경술국치)이 이뤄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한국을 마치 제후국처럼 대하면서 한반도 지분을 은근히 과시하고, 트럼프도 그것에 동조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제2의 태프트가쓰라밀약이 미·중 간에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미국 내 친중 인사로 분류되는 키신저는 핑퐁외교를 통해 미·중 수교를 이룬 경력자답게 중국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을 북핵 문제 해결안을 트럼프에 건의했다고 한다.

강대국이 보았을 때 한반도는 항상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그런데 한반도가 잠시 강대국의 손에 들어간 적은 있어도 결코 영구적으로 나라를 잃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삼국통일 때부터 당나라는 안동도호부를 통해 한반도 경영을 꿈꾸다가 압록강 이북 요동지역으로 손들고 나갔고, 일본도 한국의 끝없는 저항과 독립운동으로 결국 대동아공영권의 실패를 맛보아야 했다. 역대 중국의 여러 나라들은 한반도를 정복하려다가 나라가 망하는 사태도 맞았다. 수나라의 멸망은 고구려와의 전쟁이 결정적인 도화선이 됐고, 당나라도 안시성 전투에서 패한 당태종이 한반도(고구려) 정복을 포기했기에 당제국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다. 중국 공산당 정권의 수립에도 용맹한 조선독립군이 결정적 기여를 했음은 알려진 사실이다.

반도의 운명은 나라의 힘이 없으면 결국 ‘패싱’당하거나 정복당하는 조건에 있는 것 같다. 일본은 지금도 동아시아사에서 한반도의 문화적 위치를 ‘통과문화(passage culture)’라고 해석하는 학자가 많다. 말하자면 식민사관에 의해서 한반도의 국가 존재를 무시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일본문화의 원류는 한국문화임을 결코 지워버릴 수 없을 것이다. 저들의 신체마저도 한국 이주민의 것이었음이 유전자분석을 통해 밝혀져 있다. 지금 일본인의 유전자가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이라고 한다.

코리아패싱의 문제는 언뜻 보면 강대국인 미국과 중국과 일본에 의해 결정되는 것 같지만 결국 한국인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한국인의 독립의지나 통일의지, 문화적 자존을 지킬 힘의 여부에 달려있다. 지금 한반도 문제의 해결은 어떤 방안이더라도 최종적으로 전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전쟁 억지력에서 우선 크게 시험받는다고 본다. 국민의 민도가 전쟁을 억지하면서 문화 능력을 키울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6·25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반도의 전쟁은 어떤 무기체계더라도 결국 승자도 패자도 없는 소모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다. 결국 전쟁터가 되고마는 한민족에게만 재앙이 된다.

코리아패싱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남북 분단 상황과 남한의 당쟁으로 인한 분열에 그 원인이 있다. 결국 어떤 경우이든 한국인 스스로가 자기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는 데 따르는 문제이다. 우리는 왜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가. 그 원인은 당쟁에 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모든 문제 해결이나 삶의 사태에 당쟁으로 대했다. 조선의 멸망과 일제식민도 당쟁이 그 원인이 됐고, 남북 분단도 실은 독립운동 과정의 당쟁의 결과였다.

지금도 우리는 당쟁하고 있지 않는가 물어볼 일이다. 역사에서 패싱당하지 않으려면 국력을 키우는 방법밖에 없다. 국력을 키우려면 우선 당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도 우리 문제를 남 탓으로 돌리거나 남이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태도는 노예의 태도이다. 니체는 마르크스의 도덕을 ‘노예의 도덕’이라고 했다. 자신의 문제에 주인이 되지 못하고 저주와 원한을 품는 것을 지적한 말이다. 마르크스보다는 니체를 배워야 한다. 우리에게는 니체의 ‘힘에의 의지’가 가장 유효한 처방이다.

박정진 세계일보 평화연구소장·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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