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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백제인들이 열광했던 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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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8-03 21:21:10 수정 : 2017-08-03 21: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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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하며 아름답고 고가의 물품으로 가진 자의 사회적 지위를 견주어 물건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우리는 ‘명품’이라고 일컫는다. 백제인에게도 명품이 있었으니 바로 ‘중국산 자기(磁器)’이다.
중국과 활발하게 교역한 백제인들은 ‘중국산 자기’를 선호했다. 사진은 연꽃잎이 수려하게 새겨진 찻잔인 ‘청자음각연판문완’.
백제는 고대국가를 세우기 이전부터 중국과 활발하게 교역을 했는데, 많은 교역품 중에서 자기에 대한 수요가 높았다. 이국적인 아름다운 문양과 당시 백제에는 없던 유약 바르는 기술로 매끄러운 감촉을 지닌 자기는 백제인들에게 매력적인 물품이었다. 백제 상류층들은 중국의 선진문화에 대한 동경과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세력이라는 자부심이 결부되어 자기의 수요를 독점하다시피 하였다. 자기의 인기는 지방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왕이 지방의 신하에게 회유와 영향력 강화의 목적으로 주는 선물로 자기가 이용되었다. 발굴을 통해 지방의 수장급 무덤에서 출토되는 자기들이 대부분 이렇게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것들이다.

급기야 백제인들의 중국자기에 대한 사랑은 모방을 넘어 백제 고유의 자기 예술로 탄생하게 된다. 흑유를 모방한 흑색마연토기, 삼족기, 고배, 직구단경호 등 백제 토기 대부분이 중국자기에 백제의 예술이 가미되어 재탄생된 대표적인 예이다.

자기 중에서도 백제인들이 가장 갖고 싶어 했을 물건은 아마도 찻잔과 술병이 아니었을까. 특히 찻잔에는 연꽃잎이 수려하게 새겨진 청자음각연판문완(靑磁陰刻蓮板文碗)을, 병은 주둥이를 닭의 머리로 장식하고, 세련된 손잡이와 검은색의 볼륨감이 느껴지는 계수호(鷄首壺)를 선호했을 법하다.

이들 유물은 2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발굴 중인 풍납토성과 88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발굴한 몽촌토성에서 출토된 것으로 백제도공의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출토된 중국제 물품 중에서 80% 이상이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발굴을 통해 세상에 나왔다. 서울 한성백제박물관에서는 중국제 자기와 그것의 모방을 넘어 백제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예술품으로 재탄생한 백제토기를 만날 수 있다.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은 백제가 서울(당시 한성)에 도읍을 정하고 국가를 세운 후 쌓은 성곽으로 지금까지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다. 두 성곽의 발굴조사를 통해 우리는 백제인의 각별한 해외 명품에 대한 선호는 물론 토기를 비롯한 백제 특유의 물질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한지선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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