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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용칼럼] ‘하피첩’에 흐르는 다산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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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23 21:15:11 수정 : 2017-10-11 11:3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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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강진 유배생활 10년 되던 해 / 부인이 전한 다홍치마 다섯 폭에 / 두 아들에 전하고 싶은 당부 적어 / 탁월한 지성, 지금까지도 큰 울림

지난해 양수리 다산 생가에 있는 실학박물관에서 ‘하피첩(霞帔帖)’을 전시해 많은 사람의 감동을 자아냈다. 원래 다산(茶山)의 후손이 소유하고 있었으나 6·25전쟁 때 분실됐다가 2004년 수원의 폐지 줍는 할머니의 손수레에 실려 있던 ‘하피첩’이 방송에 보도된 후 여러 절차를 거쳐 2015년 경매에서 국립민속박물관이 구입해 잘 보관되고 있다.

 

‘하피첩’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으로 유배 간 지 10년 되던 해 그 부인 홍씨가 시집올 때 입었던 다홍치마 다섯 폭을 남편 다산에게 전한 것으로, 오랜 세월 빛이 바래 노을빛 같다고 해서 ‘노을 하(霞)’ 자로 표현한 것이다. 그 치마를 잘라 마름질해 4첩으로 만들어 두 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전하고 싶은 아버지로서의 당부를 적은 것이다. 시집간 딸에게는 하얗게 핀 매화가지 위에 두 마리 새가 한 곳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려주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다산은 서문에 이 서첩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밝혔다. “병든 처가 낡은 치마를 보내/ 천리 밖에 그리워하는 마음을 부쳤는데/오랜 세월에 홍색이 이미 바랜 것 보니/서글피 노쇠하였다는 생각이 드네/잘라서 작은 서첩을 만들어/ 그나마 아들들을 타이르는 글귀를 쓰니/ 어머니, 아버지를 생각하여/ 평생 가슴속에 새기기를 기대하노라.”

 

바로 어머니의 치마를 바탕으로 아버지가 평생 교훈이 될 글을 써주면서 자식에게 바른길을 가라는 부모의 간절한 마음의 합창이다. ‘하피첩’에는 폐족의 자손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며, 몸가짐은 어떻게 가져야 하고, 친척끼리는 어떻게 지내야 하고, 어떤 친구를 사귀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타이르고 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을 향한 애절한 마음에서 어떤 처지에 있든 희망과 품격을 잃지 말라는 다산의 지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 가서 처음 기거했던 집이 주막인데, 그 한 귀퉁이를 서재로 빌려 쓰면서도 사의재(四宜齋)라고 현판을 붙여 고난 시절에도 항상 스스로 품격을 흐트러트리지 않았다. ‘사의’란 선비가 마땅히 갖춰야 할 네 가지 사모언행(思貌言行)을 뜻한다. 즉 생각을 바르게 하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말은 신중히 하고, 행동은 반듯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하피첩’의 내용을 보면 1첩에는 부모의 향기로운 은택을 음미하기를 바랐다. 홀로 두고 온 아내에 대한 당부도 있지 않았다. “떠나올 때 보니 어머니 얼굴이 몹시 안됐더라, 늘 잊지 말고 음식대접과 약 시중 잘해 드리거라”라며 자식에게 효심을 강조했다. 효제(孝悌)가 인(仁)을 실행하는 근본이라 말하며 부모와 형제간 화목하고, 비록 화를 당한 가문의 자손일지라도 분노를 참고 화평하기를 바랐다. 또한 현재는 비록 폐족이지만 아들과 손자 세대에 이르면 과거시험과 경제에 뜻을 둘 수 있으니 문화적 안목을 잃지 않기를 당부했다.

 

제2첩에는 항상 마음의 자세로 근검을 강조했다. “나는 벼슬이 없으니 농장을 너희에게 물려주지 못한다. 내가 너희에게 남기고자 하는 말은 하나는 근면(勤)이요, 다른 하나는 검소(儉)이다. 이 두 가지는 좋은 전답보다도 나아서 한평생 쓰고도 남는다. 근면함으로써 재화를 생산하고, 검소함으로써 가난을 구제하라. 천리는 순환하니, 한번 넘어졌다고 일어나지 않을 것은 없다. 오로지 꾸준히 독서하며 내일을 기약해야 한다”는 다짐이다.

 

제3첩은 주로 학문과 처세술에 관한 내용으로, 재물을 남에게 베풀고 아버지의 글을 연구하고 옛 터전을 굳게 지키라는 손자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다산은 1836년 부인 홍씨와 결혼한 지 60년을 맞는 회혼식을 3일 앞두고 평생을 지켜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시 한 수를 적었다. “육십년 모진 풍파가 그저 눈 깜박할 사이네만(…) 살아 이별하고 죽어 떠나다 보니 이리 늙고 말았지. 슬픔은 짧고 환희는 길었던 건, 다 당신 은덕이네.(…)”

 

다산은 2월 22일 회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75세를 일기로 찬란한 학문과 숭고한 정신유산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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