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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 다크 투어리즘

입력 : 2017-07-16 10:19:04 수정 : 2017-07-16 17:5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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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한국전쟁의 상흔 묻은/ 서대문형무소·순교성지 등 찾아가/ 비관·절망 극복… 삶 다시 돌아보게 돼/“과거 치욕 감당할 공감대 형성된 것”/ 지자체, 인권의 길 등 코스 개발 한창 14일 서울 마포구의 한 공원. 시끌벅적한 번화가인 홍익대 입구·합정동 일대와 가까운 곳이지만 입구에 들어서자 바깥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꽃과 나무가 잘 가꿔진 공원에서는 산책하는 젊은 연인이나 가족단위 관람객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들은 군데군데 멈춰서서 사진을 찍거나 표지판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다른 나들이 장소처럼 들뜨거나 소란스러운 분위기는 없었다. 오히려 차분함과 경건함이 짙게 감돌았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이 천주교인을 박해했을 때 처형이 이뤄졌던 ‘절두산 순교성지’다.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유품과 유해, 고문도구 등을 볼 수 있다. 처형에 사용됐던 바위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묻어 있다.

1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찾은 한 학생이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은 1908년 10월 일제가 개소한 ‘경성감옥’의 현 이름이다. 1945년 8월 광복할 때까지 수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됐다. 해방 이후에도 1987년까지 서울구치소로 이용되면서 민주화운동 관련 인사들이 수감되는 등 한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안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는 1998년 서대문형무소역사관으로 재개관해 자주 독립정신과 자유·평화수호 정신을 기리는 교육의 현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곳은 민소매나 짧은 치마·바지, 슬리퍼를 착용한 사람은 입장이 금지될 정도로 엄숙한 분위기여서 ‘관광’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많은 이들이 찾고 있었다. 여자친구와 함께 온 대학생 김혁진(23)씨는 “경치 좋은 관광지에 놀러가는 것도 좋지만 의미 있는 곳을 찾아보고 싶어 왔다”며 “‘절두산(切頭山)’이란 이름이 무서웠는데, 생각보다 공원이 예뻐서 놀랐다”고 말했다. 이어 “천주교 신도는 아니지만 신념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보니 내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며 “오기를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크투어리즘’이 뜨고 있다. ‘역사교훈여행’이라고도 불리는 다크투어리즘은 잔혹한 참상이 벌어졌던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죽음과 관련된 현장 등을 방문하는 여행을 말한다. ‘보기 좋은 것’을 즐기러 가는 기존 여행 개념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아픈’ 기억이 있는 장소를 찾아 반성과 교훈을 얻는 여행이다. 과거 아프거나 부끄러운 역사는 ‘지워야 할 대상’으로 여겨졌지만, 최근에는 역사를 바로 보자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이런 장소를 널리 알리려는 움직임이 많다. 서울시와 자치구 등 지자체들도 앞다퉈 다크투어리즘 장소 개발에 나서고 있다.

서울 남산 회현자락 중턱에서 발굴·보존 작업이 진행 중인 조선신궁 배전터와 한양성곽의 모습
서울시 제공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 다크투어리즘 인기


서울의 대표적인 다크투어리즘 장소는 서대문형무소와 절두산순교성지, 망우리공원, 독립유공자묘역 등이다. 대부분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비극적인 역사의 상흔이 묻어 있는 곳이다.

중구는 지난해 1월부터 도보 관광코스인 ‘장충단 호국의 길’을 운영 중이다. 장충단은 고종이 을미사변 때 죽은 군인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지만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博文寺)를 이곳에 짓기도 했다. 일본이 우리나라 장병을 위한 추도 공간을 훼손한 것이다. 중구 관계자는 “슬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마음에서 관광코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절두산 순교성지에서 처형에 사용했던 형구틀
절두산순교성지 홈페이지
새로운 코스 개발도 한창이다. 서울시는 구한말부터 해방 전까지 일제가 남산에 남긴 어두운 역사의 흔적을 잇는 ‘국치(國恥)의 길’과 옛 중앙정보부(현 국정원) 건물들을 따라 걷는 ‘인권의 길’을 내년 8월부터 운영한다. 일제강점기와 군부독재 시절의 부끄러운 역사를 관광코스로 만든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치욕스러운 역사를 외면하지 않고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 장소로 삼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중구는 조선시대 공식 처형장이었던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처형당한 전봉준·최시형 등을 기념하기 위한 ‘서소문역사문화공원’을 조성 중이다. 용산구도 용산 주한미군기지에 남아 있는 일본과 미군 관련 유적을 다크투어리즘 관련 상품으로 만들기로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어두운 근현대사는 지우거나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김영삼정부가 조선총독부를 철거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최근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면서 다크투어리즘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서울시립대 신현권 교수(국사학)는 “치욕스러운 역사도 우리 역사로 감당해야 할 때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라며 “어두운 역사의 흔적이라도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것은 보존해 후손을 위한 거울로 삼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 자리 잡은 장충단비. 조선 고종이 1900년 을미사변때 죽은 군인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으로 제사를 올리던 사당과 부속건물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며 파괴되고 비석만 남아 있다
중구 제공
다크투어리즘을 선택하는 이들은 어떤 심리일까? 다크투어리즘 장소에서 만난 이들은 ‘잊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찾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8일 남산 조선신궁 터에서 만난 조재형(53)씨는 “조선신궁이 남산이 겪은 아픔을 가장 잘 나타내는 곳이라는 생각에 가끔 찾는다”고 말했다. 조선신궁은 일제가 한국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남산 중턱에 세운 신사다. 조씨는 “조부모님들이 근처에 살았는데, 조선신궁을 볼 때면 당시 일본 신을 향해 절을 강요받았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며 “항일운동 등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일제강점기 많은 순국선열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서대문형무소를 관람한 김연수(42·여)씨는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박경목 서대문형무소역사관 관장은 다크투어리즘에서 볼 수 있는 ‘극복’의 과정에서 관람자들이 희망을 찾는다고 분석했다. 박 관장은 “다크투어리즘은 비관과 절망 속에서 희망을 찾는 여행”이라며 “식민지와 전쟁, 군부독재를 겪었지만 민주화와 경제발전을 이뤄낸 과정에서 희망을 찾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역사 왜곡 우려… 철저한 고증 필수


전문가들은 다크투어리즘 상품 개발 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크투어리즘이 유행하면서 고증을 충실하게 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코스를 개발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칫하면 잘못된 역사관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대구·경북 지자체들이 추진하는 기념사업 중 일부가 친일 역사관을 담고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는 지난 13일 기자회견을 열고 “몇몇 지자체가 전시행정과 관료주의적 행태로 식민지의 치욕스러운 역사를 다크투어리즘이라는 이름으로 기념사업화하고 있다”며 “일제의 필요에 의해 추진됐던 사업들이 무분별하게 재추진돼 재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오홍석 민문연 지부장은 “왜곡된 역사적 사실이 관광 콘텐츠로 활용되면 되돌리기 어려우므로 철저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역사적 고증에 기초한 사실을 전달하되,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희용 서울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서울은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곳이 많다”며 “문헌 연구뿐 아니라 활발한 발굴작업으로 땅 밑에 가려진 역사적 흔적을 찾아 정확한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호 국사편찬위원회 연구사는 “같은 역사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 영광의 기억 혹은 아픈 상처가 된다”며 “모든 사람에게 하나의 의미만을 전달하기보다는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강원대학교 윤희정 교수(관광경영학)는 치유 기능도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현재의 다크투어리즘은 역사적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대부분”이라며 “단순히 사실을 전달하는 것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사회적 상처를 공유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다크투어리즘’ 세계적 명소는

세계적인 다크투어리즘 명소들은 관광객들이 꼭 찾아야 할 필수 관광코스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적인 곳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정권에 의해 유대인 등 400만 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찾은 사람들은 당시 나치가 유대인 학살과정에서 사용했던 가스실과 고문실은 물론 희생자들의 유품과 머리카락 등을 볼 수 있다. 이 수용소는 ‘나치의 잔혹성을 잊지 말고, 이 같은 비극을 후세에 전하자’는 뜻에서 197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다.
캄보디아 프놈펜의 킬링필드 유적지도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 크메르루즈가 1975∼1979년 자국민 200만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이 희생됐다. 유적지에는 사람들을 처형했던 곳과 학살당한 사람들의 유골 등이 있다.

최근 조성된 장소로는 미국 뉴욕의 ‘9·11메모리얼’이 꼽힌다. 3000여명이 목숨을 잃었던 9·11테러를 잊지 않고자 조성됐다. 2001년 9월11일 항공기를 납치한 이슬람 테러조직 알카에다 조직원의 자살 공격으로 무너졌던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거대한 폭포와 조명을 설치하고, 주변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적힌 비석을 세웠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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