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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선] 누가 집배원을 죽음으로 내몰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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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11 01:34:51 수정 : 2017-07-11 1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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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또 한명의 집배원이 세상을 떠났다. 휴가를 낸 원모 집배원은 담당 구역 주민들을 찾아 일일이 작별인사를 건넨 뒤 자신이 일하던 안양우체국으로 갔다. 그리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다섯 식구의 생계를 책임지던 40대 가장은 20년 넘게 일한 일터에서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그가 소속된 전국우정노조와 동료들에 따르면 그는 지난달 관할지 재개발로 인해 담당구역이 완전히 변경됐다. 하루 1000∼1500통이 넘는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는 구역이 완전히 바뀌었는데 낯선 동네 골목골목, 구석구석을 익히는 데 주어진 시간은 고작 3일. 그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새 구역을 돌아본 후 집으로 돌아와 A4 용지에 배달지를 그려봤다. 눈으로, 머릿속으로 다음날 배달 다닐 동선을 새기고 또 새겼을 것이다. 길을 헤매다 제시간에 고객에게 중요한 등기를 전달하지 못할까봐, 제시간에 일을 마치지 못할까봐 20년차 베테랑임에도 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고 한다. 술로 잠을 청하고 지난 4일 아침 일찍 출근했지만, 술 냄새가 난다며 오토바이 키를 뺏겼다. 그리고 다음날까지 반강제적으로 연차를 내야 했던 그는 동료와 이웃들에게 처지를 비관하는 말을 남기고 그렇게 떠났다. 

김수미 산업부 차장
원씨를 포함해 올해에만 벌써 12명의 집배원이 숨졌다. 한 달에 두 명꼴이다. 자살(5명)과 교통사고(2명)를 제외한 나머지 5명은 심근경색과 뇌출혈 등으로 과로사했다.

쓰러지는 동료들을 보며 ‘다음은 내 차례일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 집배원들은 3000명 이상 인력 충원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 우정사업본부가 내놓은 충원 계획은 상반기 160명, 하반기 100명에 불과하다. 양측이 제시한 필요인력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집배부하량 산출시스템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우본이 개발한 이 시스템은 집배원의 업무를 46개 단위로 쪼갠 후 각 업무별 평균 소요시간을 0.1초 단위로 측정해놨다. 발품을 팔고 빗길, 눈길을 오토바이로 이동하며 가가호호 방문해 하루 수십명의 고객을 만나는 집배원의 일을 초단위로 잰 것이다. ‘배달증 만들기 1.6초’, ‘보통우편 2초’ 등을 준수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지만, 이를 기준으로 우체국별 필요인력을 추산한다. 집배원의 능력을 평가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인도 주행, 신호 무시, 속도 위반을 감행하고 피로와 스트레스에 짓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몇년 전 한 피자업체가 고객 서비스라는 명분으로 ‘30분 배달 보증제’를 내걸었다가 배달 아르바이트생들의 잇따른 사망사고로 폐지한 바 있다. 저임금 노동자의 안전과 생명을 볼모로 한 고객 서비스와 효율 극대화 시스템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말이다.

하지만 우본은 집배부하량시스템의 ‘과학성’에 매료돼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집배원들의 잇따른 과로사에도 우본은 “우편량은 크게 줄었고 우편수지도 적자”라며 “숨진 집배원들이 과로한 것도 사실이고 공무원공단에서 공무중 사망 판정을 받은 것도 맞지만, 과로사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펼친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집배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말인가.

김수미 산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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