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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비올때 떠나면 좋은 여행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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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7-07 10:00:00 수정 : 2017-07-07 15:4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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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작은 하늘…촉촉히 젖은 낭만
여행을 떠날 때 비가 내리면 하늘을 원망하게 된다. 파란 하늘을 즐기려 했던 여행의 기대감은 꺾이고, 괜히 짜증도 난다. 하지만 여행에서 비가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장대비가 내리면 계곡 물소리는 더 장쾌해진다. 추적추적 떨어지는 비에 흙내음은 더 진하게 다가온다. 구름 낀 흐린 하늘과 어우러진 풍경은 수채화보다 수묵화에서 느낄 수 있는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장마가 시작돼 여행에서 비를 만날 가능성이 커졌다. 한국관광공사는 비 올 때 더 근사해지는 여행지를 소개했다.
제천 은은한 안개가 밀려드는 아침 정방사
충북 제천 정방사는 비 내리는 날이면 운치가 더 살아난다. 법당 마루에 앉아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노라면 세상 시름이 말끔히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다. 멀리 보이는 청풍호도 꿈처럼 아련하게 비에 젖는다. 정방사는 금수산 의상대라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 자리한 사찰이다. 속리산 법주사의 말사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산방사라고 소개돼 있다.
제천 정방사에서는 청풍호가 아스라히 내려다 보인다

정방사 가는 길 오른쪽 차창 밖으로는 수려한 청풍호 풍경이 따라온다. 정방사 표지판을 보고 능강계곡으로 오르는 길을 따르면 울창한 소나무 숲길이 펼쳐진다. 이 길을 따라 10여분 가면 절 주차장에 닿는다. 주차 후 5분 정도 올라야 한다. 절 앞에는 사람 한 명이 지나갈 만한 바위 두 개가 마주보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를 두고 한국에서 절로 들어가는 가장 좁은 길이라고 했다. 절은 의상대 아래 마치 제비집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렸다. 청풍루와 유운당, 원통보전, 나한전이 의상대 아래 일렬로 섰다. 요사채 앞에는 작은 마당이 있다. 이 마당에서 바라보면 월악산과 청풍호가 발아래 펼쳐진다.

정방사가 가장 아름다운 때는 해 뜰 무렵이다. 해 뜨기 전 월악산 골짜기와 청풍호에서 피어오른 물안개가 어울려 다니며 선경을 빚어낸다. 원통보전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가면 해수관음보살입상이 청풍호를 바라보고 섰다. 청풍호가 ‘내륙의 바다’라고 불리는 점을 감안하면 해수관음보살입상이 있는 것도 어색하지 않다. 
창덕궁 금천교를 건너는 여학생들

비 오는 날 서울 창덕궁 후원은 차분하게 깊어진 궁궐의 색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비가 오면 줄어드는 발길 덕분에 궁궐의 고즈넉함이 더해지기도 한다. 도심에 자리한 궁궐을 홀로 거니는 것, 상상 이상의 즐거움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은 주변 지형과 어우러진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다.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꺾으면 이내 금천교와 만난다. 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을 흐르는 물에 씻어 바르게 하길 바라는 뜻으로 세웠다. 비 오는 날 창덕궁의 매력은 후원을 거닐면 배가 된다. 조선 왕실의 정원인 창덕궁 후원은 중국의 이허위안, 일본의 가쓰라리큐(桂離宮)와 함께 아시아 3대 정원으로 꼽힌다. 후원이 조성되기 시작한 1406년부터 600년 이상 나무에 전지가위 한 번 대지 않고, 제 속성대로 자라게 두었다. 갈참나무와 때죽나무, 단풍나무, 팥배나무, 소나무, 산벚나무가 일제히 비를 반긴다. 후원에서 제일 먼저 닿는 곳이 부용지다. 부용정이 물 위에 반쯤 뜬 채로 있고, 맞은편에 주합루가 연못을 지키듯 섰다. 존덕정 일원도 감탄을 자아낸다. 존덕정에서 옥류천으로 가는 산마루턱을 열심히 걸으면 소요암을 만난다. 후원의 마지막 영역이자, 가장 깊숙한 곳이다. 소요암 아래 너럭바위에 홈을 파서 물길을 돌려 작은 폭포를 만들었는데, 비가 오면 더 운치 있다.
안동 5분강서원에서 바라본 농암종택과 청량산 줄기

청량산과 낙동강이 어우러진 경북 안동 농암종택은 비가 오는 날 가면 금상첨화다. 구름이 내려앉은 청량산 줄기가 수묵화를 그려내고, 낙동강 물소리는 더욱 세차다. 농암 이현보 선생의 손때가 묻은 긍구당에서 하룻밤 묵어보자. 넓은 마루에 앉아 빗소리, 강물 소리, 새소리에 귀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깨끗해진다. 농암 이현보는 조선 중기 때 문신이자 시조 작가다.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시를 벗 삼아 지낸다. 조선시대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작품으로 전해오는 ‘어부가’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 ‘농암가’ ‘생일가’ 등 시조 8수가 남았다. 긍구당은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농암종택의 별채로, 당호는 ‘조상의 유업을 길이 잇다’라는 뜻이다. 고려 때 농암 선생의 고조부가 지은 소박한 건물이다. 마루에 오르니 낙동강 물소리가 시원하다. 나무에 가려 낙동강은 보이지 않지만, 소리 덕분에 유장하게 흐르는 강줄기가 떠오른다.
운림산방은 흐리고 비오는 날 더욱 운치가 있다

전남 진도 최고봉 첨찰산 자락에 있는 운림산방은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는 곳이다. 조선 후기 남종화의 대가 소치 허련(허유)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1808년 진도 쌍정리에서 태어난 허련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20대 후반에는 해남 대둔사의 초의선사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30대 초반에는 그의 소개로 한양에 가서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되었다. 하지만 당쟁에 휘말린 추사가 유배를 거듭하다 세상을 뜨자, 허련은 고향으로 돌아와 첨찰산 쌍계사 옆에 소박한 집을 짓는다. 소치는 운림산방을 이름처럼 멋지게 꾸몄다. 작은 집 앞에 널찍한 연못(운림지)을 파고 한가운데 둥근 섬을 만들어 배롱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지금도 여름이면 연못 가득한 수련과 함께 붉은 배롱나무꽃이 핀다.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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