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21 사태’(북한 공작원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 인근으로 잠입한 사건) 이후 통제됐던 청와대 앞길이 국민의 품으로 온전히 돌아오는 날 아침은 이렇게 시작됐다. 청와대와 국민의 거리감을 해소하고 정부의 소통의지를 보여주는 조치라는 점에서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개방된 청와대 앞길이 일상화된 ‘집회, 시위의 명소’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청와대 앞길 24시간 전면 개방 첫날인 26일 오후 시민들이 청와대 앞 분수대 광장에서 출발해 청와대 방면까지 산책을 즐기고 있다. |
경기도 양주에서 온 김진자(74·여)씨는 “청와대 앞길이 완전히 시민에게 개방되니 가슴이 벅차고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뿌듯하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서울 강북구의 임모(71·여)씨도 “예전처럼 (검문) 경찰관들이 ‘어디 가느냐’고 묻지 않더라. 많은 것이 변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도 시민들과 기쁨을 나눴다.
김 여사는 ‘열린 청와대 50년 만의 한밤 산책’이란 이름으로 이날 밤 8시부터 45분간 진행된 청와대 앞길 야간 개방 행사에 참여했다.
김 여사는 유홍준 광화문대통령 총괄위원장 안내로 청와대 페이스북 공모에서 선정된 일반 국민 50여명, 임옥상 미술연구소장 등 문화계 인사와 함께 춘추관 앞에서 청와대 분수대까지 이날 야간 통행이 허용된 청와대 앞길을 산책했다. 김 여사는 “오늘 작은 변화이지만 권력이 막아섰던 국민의 길, 광장의 길을 다시 국민께 돌려드리게 돼 매우 기쁘다”며 “여러분께서도 기쁘게 받아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후 KBS 국악관현악단 기념 공연 등을 관람하고 나서 참석자들과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념촬영도 했다.
그러나 개방된 청와대 앞길이 특정한 주의, 주장을 외치는 새로운 집회 장소로 활용돼 평화로운 분위기를 해치는 것은 물론 국가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와대 방면으로 진입하려는 시위대와 이를 막으려는 청와대 직원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남정탁 기자 |
이날 경남 사천에서 올라와 청와대를 관람하러 온 김진수(63)씨는 1인 시위자들을 보며 “‘청와대 신문고’ 사이트 같은 걸 이용할 수도 있는 것 아니냐”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 같은 풍경은 반복될 수 있다. 1인 시위는 청와대 인근의 경우 분수대 광장만 일부 제한될 뿐 규제를 하지 않는 게 원칙이다. 또 광화문광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하고 청와대 방면으로 행진한 뒤 참가자들이 개별적으로 청와대 앞길로 진출할 땐 대처할 방법도 마땅찮다. 당장 이번 주말 민주노총의 총파업 집회가 예정되어 있고 비정규직 교수노조에서 100여명이 참가하는 사전대회가 청와대 인근의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국대 곽대경 교수(경찰행정학)는 “대통령이 집무하는 장소이고 주요 보안시설인데 상시적으로 집회·시위가 열리면 개방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며 “모두가 평화롭고 안정적인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도록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민영·박성준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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