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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기획] 점심 거른 채 더위 속 골목 누벼… 계단 오르내리면 ‘파김치’

입력 : 2017-06-26 19:11:12 수정 : 2017-06-26 21:4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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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차 집배원 이창재씨의 하루 / 배송 구역·종류별로 아침 분류 중요 / 빼먹거나 순서 바뀌면 오후 내 고생 / 종일 2만6996보, 도보로 18㎞ 이동 / “칼퇴근할 수 있는 근무환경 됐으면”

지난 22일 경기 남양주우체국.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이제 출근 준비시간인 오전 7시30분, 87명의 집배원들이 이미 출근해 노란 바구니에 가득 찬 우편물을 담당구역별로 분류하고 있었다.

“아침작업이 중요합니다. 혹시 우편물을 빼먹거나 배달 순서가 바뀌기라도 하면 오후 내내 고생해야 하니까요.”

올해로 15년차인 이창재(45) 집배원이 빠른 손놀림으로 일반우편, 등기, 소포 등을 나누며 말했다. 바구니가 바닥을 드러낸 오전 9시쯤 이 집배원은 구내식당으로 갔다.

“오늘은 물량은 보통우편 1200통, 등기 120통으로 평균수준이네요. 점심 먹을 여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이른 점심을 먹고 배송을 시작해야 해요”

10분 만에 식판을 비우자마자 그는 우편물들을 오토바이에 실었다. 무게는 10㎏. 안전을 위해 이 무게를 초과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상가와 공장, 아파트, 빌라 순서로 갈 계획입니다.”
22일 얼굴이 땀으로 흠뻑 젖은 이창재 집배원이 남양주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배송할 우편을 챙기던 중 인사를 건네는 지역 주민을 바라보며 웃고 있다.
정필재 기자

이 집배원의 오토바이를 취재차량이 뒤따랐지만 그는 금세 시야에서 사라졌다. 목적지에서 만난 이 집배원의 이마와 목덜미에선 땀이 비오듯 흐르고 있었다. 이날 낮 최고기온은 섭씨 31도. 에어컨이 나오는 취재차량에서 나오자마자 등에선 땀이 흘렀다.

이 집배원이 이동하기 위해 오토바이에 타려는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오후에 전달될 우편물을 지금 가져다 달라는 민원이었다.

“거리가 너무 멀면 양해를 구해요. 그러면 ‘그게 뭐 어려운 일이냐’고 화를 내시는 분들도 있죠. 보통 10분거리면 그냥 다녀옵니다. 그만큼 일이 늦게 끝나지만 어쩔 수 없죠.”

상가 배송을 마친 이 집배원은 점심을 거른 채 공장지역으로 이동했다. 코끼리만한 덤프트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이 집배원의 오토바이를 스치듯 지나갔고, 비포장 도로에서 일어난 먼지는 그를 뒤덮었다.
“아찔하고, 무섭기도 하고요. 만약 제가 다치면 동료가 제 우편물을 담당해야 하니 더 조심해야 합니다.”

다행히 이번엔 배달 환경이 좋은 아파트단지 순서다. 경비와 인사를 나눈 이 집배원은 아파트 우편함에 우편물을 넣기 시작했다. 손이 두 개로 보일 만큼 빠른 속도였다. 아침에 우편물을 정리할 때는 순서까지 정리해 놓은 덕분이다.

“아파트단지는 한번에 많은 우편물을 전할수 있어 수월한 편이에요. 빌라는 가구 수도 적고 엘리베이터도 없어 힘들어요.”

드디어 빌라 지역 순서. 이 집배원은 5층 건물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등기를 전달했다.

그가 배송을 끝내고 우체국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6시. 오전에 우체국을 나섰던 집배원들이 땀과 먼지범벅이 된 채 속속 모였다. 스마트폰 만보기로 확인해 보니 2만6996보가 찍혔다. 도보로만 18.897㎞를 이동한 셈이다. 구내식당에서 허기를 달랜 이 집배원은 다시 사무실로 갔다. 아침에 비웠던 노란 바구니에 우편물이 수북했다. 배달 나간 사이 도착한 것들이다.

“지금 정리하지 않으면 내일 더 일찍 나와야 해요. 어떻게 하면 우리도 ‘칼퇴근’이란 걸 할 수 있을까요.”

이 집배원은 이날 12시간 일하고 2시간의 시간외 근무를 인정받았다.

글·사진=정필재 기자 rus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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