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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투데이] 1991년 탁구 첫 단일팀… 2000년 시드니올림픽 동시입장

입력 : 2017-06-25 18:31:41 수정 : 2017-06-25 21:5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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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스포츠 교류 역사 / 1957년 北 먼저 제안 ‘불발’ / 2008년 MB정부 후 ‘단절’

남북 스포츠 교류사는 남북 관계의 부침과 궤를 같이한다.

각종 국제대회에 남북 단일팀 참가 아이디어는 60년 전인 1957년 6월 북한이 처음 제안했다. 북진통일을 주장하는 이승만정부에서는 실현될 수 없었다. 박정희정부에서는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 직후인 9월 서독 뮌헨에서 남북체육교류회담을 위해 양측 대표가 서울과 평양을 상호 방문하기로 합의했으나 실질적인 스포츠 교류는 한참 후에나 진행됐다. 198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에 단일팀 출전을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1990년 중국 베이징 아시안게임 단일팀 구성을 위한 남북체육회담 역시 최종 합의에 실패했다.

본격적인 교류는 북방정책을 추진한 노태우정부 출범 후인 1990년 10월 통일축구대회를 통해서 이뤄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영광을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한 1991년은 남북 체육교류의 한 획을 그은 해이다. 그해 4월 일본 지바(千葉)에서 개막한 제4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단일팀인 코리아팀이 처음으로 구성돼 난적 중국을 꺾고 여자단체전 우승이라는 쾌거를 이뤘다. 같은 해 6월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에도 단일팀이 출전해 8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다시 교착상태에 빠진 체육교류는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인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에서 전기를 맞았다. 1999년 남북 통일농구대회가 열렸고 2000년 호주 시드니 올림픽 때 세계인 앞에서 남북이 사상 처음으로 동시 입장하는 감격의 순간을 연출하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정부 출범 후 남북관계가 냉각되자 남북 선수들은 다시 경기장에서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당시 황병서·최룡해 등 북한 최고위급 인사들이 폐막식 참석차 방남(訪南)해 꽉 막힌 남북관계의 숨통을 틔울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으나 대결 국면 자체를 전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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