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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대법원장 인준 부결에 3당합당 추진한 노태우, 문재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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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6-17 18:35:02 수정 : 2017-06-17 18:3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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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수 헌재소장 임명동의안 부결되면 여권 중심 ‘정계개편’ 추진 가속화할 수도 ‘정계개편’.

지난해 4월13일 20대 총선에서 나타난 여소야대 결과를 지켜본 사람들 뇌리에 일제히 떠오른 단어다. 당시만 해도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원내 과반 확보에 실패한 것은 물론 의석수에서도 더불어민주당에 뒤져 2당으로 추락했다. 민주당 역시 원내 1당으로 올라서긴 했으나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하진 못했다. 제3당 국민의당이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성공하며 3당체제가 형성됐다. 정부와 여당으로선 정계개편을 통해 국회에 확고한 과반수 지지세력을 형성하고픈 유혹을 느낄 법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서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을 발표하고 있다.
그로부터 1년2개월이 지난 지금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다. 새누리당은 야당으로 입장이 바뀌었고 그나마 한국당과 바른정당 둘로 쪼개졌다. 3당체제가 4당체제로 오히려 분화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으로 민주당은 여당이 되었지만 여소야대 상황은 여전하다. 덕분에 문 대통령은 국민들 사이에 8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누리면서도 국회에선 야당들의 협공에 밀려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여소야대와 4당체제.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9년 전인 1988년에 그랬다. 노태우정부가 출범한 그해 국회는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의 4당체제가 들어섰다. 민정당은 혼자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수 여당이었고 평민·민주·공화 세 야당은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는 거대 야당이었다. 자연히 민정당 일각에선 “이래가지고는 임기 내에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정계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7일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 대통령이자 민정당 총재였던 노태우가 정계개편 추진 의지를 굳힌 계기가 있다. 청와대가 지명한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 부결이 그것이다.

1988년 야당들의 반대로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이 부결된 소속을 1면 톱기사로 전한 조간신문.
1988년 7월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은 전운이 감돌았다. 새 정부가 대법원장 후보자로 내정한 정기승 당시 대법관의 임명동의안 표결이 예정돼 있었다. 김대중(DJ) 총재의 평민당과 김영삼(YS) 총재의 민주당은 나란히 ‘불가’ 입장을 당론으로 정했다. 여소야대 아래에서 민정당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임명동의안을 통과시킬 수 없었다. 그나마 김종필(JP)의 공화당이 여당 지원을 약속해 거기에 모든 기대를 걸었다.

투표 결과는 뜻밖이었다. 야당들이 반대 대신 기권표를 던짐에 따라 총 295표 중 기권이 134표에 달한 가운데 찬성 141표, 반대 6표, 무효 14표로 찬성표가 과반(148표)에 이르지 못해 부결되고 말았다. 여당 의원 일부가 기표 과정에서 실수를 저질러 무효표가 많이 나온 것이 승패를 갈랐다.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청와대가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평소 조용하고 우유부단한 성품 탓에 ‘물태우’라는 별명을 얻은 노태우가 그때만큼은 아주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청와대는 결국 정년(70세)이 2년밖에 안 남았지만 야권이 지지하는 이일규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 1월 노태우(가운데)와 김영삼(왼쪽), 김종필(오른쪽) 3인이 청와대에 모여 3당 합당과 민주자유당 창당을 통한 정계개편을 선언하고 있다.
이 사건은 노태우가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노태우의 측근들이 일제히 나서 DJ, YS, JP 측과 동시다발로 물밑접촉을 가졌다. 지리한 협상 끝에 1990년 1월 DJ만 빼고 YS와 JP를 끌어들인 3당 합당으로 정계개편을 성사시켰다.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의 출현으로 여소야대 정국은 눈 녹듯 사라지고 노태우는 정국을 주도할 큰 힘을 얻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진작 끝났지만 임명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야권의 보수 성향 의원 상당수가 김 후보자에 부정적인데다 야당 지도부도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 다른 인사청문 대상자 거취와 연계하려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는 야당들의 반발로 국회 임명동의안 표결이 지연되고 있으며 부결 가능성도 거론된다.
여야가 정면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 김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경우 부결이란 최악의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 이후 무려 29년 만의 일로 문재인정부 입장에선 그야말로 ‘참사’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와 민주당 내부에서 정계개편 논의가 가속화할 공산이 크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국민의당이 우선적 협상 대상이고 그 다음 순서는 바른정당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1990년 당시의 3당 합당 협상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현재 청와대는 물론 여야 지도부 모두 정계개편 가능성에 단호히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헌재소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부결되면 29년 전에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부결이 그랬듯 여권 내부에서 정계개편 추진 움직임이 가속화할 것이란 점을 명약관화하다는 게 법조계와 정치권의 일반적 관측이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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