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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길 먼 공익제보] 배신자 낙인→파면·해고→건강 상실… ‘짧은 고발 긴 고통’

입력 : 2017-06-12 20:57:21 수정 : 2017-06-12 22: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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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제보 그 후: 조직의 보복 / 감봉·지방전출 등 징계 ‘가혹한 현실’ / 使 ‘기밀유출 고발’ 새 탄압수단으로 / 전문가 “관련법 따라 기밀유출 아냐” / 제보 이후 1년까지 우울증 경험 70% / 가족 위협 사례도 있어 극도 불안감 /“제보 말고 가만히 계시라 조언할 것”
“망설임 없이 가만히 계시라고,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이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실 필요는 전혀 없다고 조언할 것입니다.”

취재팀과 만난 한 공익제보자는 양심과 어긋나는 조직 내 비리를 상담하기 위해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아놓은 돈이 많은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많은 경우, 공익제보 이후는 상처뿐이다. 제보자는 어느새 ‘배신자’, ‘의리 없는 놈’으로 몰린다. 가혹한 조직의 보복도 뒤따른다. 해고당한 뒤 소송에 걸린 제보자들은 신념만 가지고 싸우기에는 너무나 냉혹한 현실과 마주한다. 고발은 짧고 고통은 길다.

◆공익제보 후 파면·해임 가장  많아

1998년 조항민 철도청 검수원은 동료직원 4명과 함께 열차 하자보수의 문제점과 새로 구입한 차량에서 탈선사고의 원인이 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는 사실을 공익제보했다. 하지만 제보 이후 감봉 및 지방 전출 징계를 받은 뒤 정신적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외국 무기부품 구매과정 예산 낭비 의혹을 언론에 공익제보한 박대기 국방부 구매담당관은 내부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후 한 해에만 보직이 세 번 변경되는 보복성 인사를 당했다. 언론 제보 이후 퇴직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스트레스로 인한 질병으로 사망했다.

조직이 공익제보자에게 고통을 가하는 보복의 종류는 다양하다. 세계일보가 1990년 이후 이뤄진 공익제보 102건의 제보자 134명을 추적한 결과, 공익제보자 중 60.4%(81명)가 파면·해임 등 중징계를 겪었고 26.9%(36명)가 민형사상 소송을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 내 따돌림을 당하거나 상사로부터 심적 압박을 받았다는 사람도 22.4%(30명)에 이른다. 14.2%(19명)는 부서 조정·발령을, 8.2%(11명)는 경징계를 경험하기도 했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134명 중 48명(35.8%)은 두 가지 이상의 보복을 당했다는 것이다.

2014년 28사단 윤 일병 폭행사망 사건을 제보한 김재량 상병의 경우가 그렇다. 김 상병은 제보 이후 전출된 부대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관심병사’가 됐다. 우울증 진단을 받았고 잠이 안 와 수면제를 먹었으며, 자살 충동까지 일었다고 한다.

최근 발생하는 새로운 탄압 형태는 ‘기밀유출 고발’이다. 2015년 현대자동차 완성차 제작 결함을 제보했던 김광호씨는 2016년 내부문건 유출과 회사 명예훼손 등으로 해고당했고, 영업기밀 유출과 사내 보안규정 위반 혐의 등으로 고소당했다. 이은미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팀장은 “공익신고자보호법에 감면규정을 둬서 기밀유출로 보지 않는다는 분명한 법조항이 있다”면서도 “(‘기밀유출 고발’을)사측이 제보자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쓴다”고 지적했다. 

◆경제적·정신적 스트레스가 건강악화 불러


“‘공익신고→파면·해고→경제적 어려움→가족 갈등→정신적 스트레스 증가→건강악화’가 하나의 공식처럼 보이고 있다.”

호루라기재단은 2013년 발간한 ‘내부공익신고자 인권실태 조사 보고서’에서 공익제보자 42명의 사례를 분석한 결과를 이렇게 밝혔다. 일종의 ‘고통 공식’이다.

제보 이후 보복으로 발생한 스트레스와 열악한 환경은 제보자를 결국 극단으로 이끌기도 했다. 청소노동자 조모씨는 자신을 고용한 청소업체가 버스전용차로 정류소 청소업무 시 안전규정을 위반했다는 민원을 서울시에 제기한 후 대기발령을 받아 건강검진에서 제외됐다. 이후 뒤늦게 급성골수성백혈병을 발견했고 투병 중 사망했다. 조씨와 함께 제보에 참여했던 최모씨는 2014년 말 살고 있던 고시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됐다.

실제로 제보 이후 다수의 공익제보자들은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한다. 호루라기재단이 진행한 ‘내부공익신고자 심층 인터뷰’에 따르면 응답자 70%가 공익제보 직후 1년까지 우울증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응답자 59%가 공익제보 직후 1년까지 자살충동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고통은 비단 제보자 혼자만의 일은 아니었다. 부인이 일하는 직장에 전화를 걸어 괴롭히는 등 가족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한 제보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족들 몰래 나와 한적한 시골로 몸을 숨겨야 했으며, 애인과 결별하고 아내와 이혼하기도 했다.

◆공익제보자 46.3% 여전히 불안정


공익제보자들은 여전히 불안하다. 세계일보가 공익제보자 134명의 현재 상태를 ‘매우 안정’, ‘안정’, ‘보통’, ‘불안정’, ‘매우 불안정’ 등 5단계 ‘고통지수’로 구분한 결과, ‘불안정’이 39.6%로 가장 많았다. ‘매우 불안정’, ‘불안정’을 더한 ‘불안정 상태’는 46.3%에 이른다.

특히 공익신고가 이뤄진 제보기관을 기준으로 제보자들의 현황을 살펴본 결과, ‘상급 및 감독기관’에 신고한 공익제보의 70.9%가 ‘불안정 상태’로 가장 심각한 수준이었다. ‘권익위원회’(54.5%)가 다음이었고, ‘언론 및 미디어’, ‘사내 및 내부게시판’, ‘시민·종교단체, 노조, 상담소’는 30%대로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2012년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사실을 폭로한 장진수 전 주무관은 사찰을 주도한 이들 대신 증거인멸의 책임을 지는 상황에 처했다. 장 전 주무관은 결국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 파면당했고 이후 생계가 어려워져 지금은 아내와 함께 동네 집 앞에서 작은 국숫집을 하고 있다. 그는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고통에 대해 호소했다.

“내부제보자들 모임에 나가서 대화를 하다보니 본인만 희생당하는 그런 케이스가 대다수라는 것을 알았죠. 저도 재심이든 뭐든 하고 싶어도 혼자 뭘 하겠습니까, 직장을 구해서 생계를 이어나가야 하는데. 차라리 잊고, 새출발하는 게 편하지 이런 마음이 안 들겠습니까. 저도 그런 심정이에요.”

특별기획취재팀=김용출·백소용·이우중·임국정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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