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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열사는… 직선제 개헌 이끌어 낸 ‘6월 항쟁’ 기폭제

입력 : 2017-06-01 18:07:04 수정 : 2017-06-01 19:3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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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맞서 시위중 쓰러져 / 2017년 30주기… 다양한 추모행사 연세대 학생이던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을 머리에 맞고 쓰러진 사건은 한국 민주주의의 전환점인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됐다. 3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그를 기억하는 이유다.

1일 이한열기념사업회에 따르면 1966년 8월29일 전남 화순에서 태어난 이한열 열사는 1986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같은 해 여름 선배, 동기들과 광주 망월동 묘지 등을 찾아가는 국토 순례 대행진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눈을 뜨고 정의를 위한 싸움에 온몸을 던졌다.

“사회의 외곽 지대에서, 무풍지대에서 스스로 망각한 채 살아왔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이 세상이 나를 배반하고 나를 죽이려 해도 나는 결코 이 세상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는 말과 함께.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이한열 열사의 생전 모습. 1987년에 찍은 사진이다. 
이한열기념사업회 제공
1987년 6월9일 민정당이 노태우 대통령 후보를 지명하는 전당대회 전날 연세대에서 열린 시위에도 앞장선 그는 결국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그 장면은 온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고 이튿날 전국 곳곳에서 대학생과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직선제로 민주 쟁취’,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등을 외쳤다. 시위는 20일 가까이 이어졌고 전두환 군사정권이 직선제 개헌을 수용한 6·29 선언을 이끌어냈다.

이 열사는 사경을 헤매다 한 달을 못 넘기고 7월5일 숨을 거뒀다. 나흘 뒤 서울시청 앞에서 민주국민장으로 진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100만 인파가 모여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이한열기념사업회는 올해 이 열사 30주기를 맞아 다양한 행사를 연다. ‘2017이 1987에게’를 주제로 오는 7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과 이한열기념관에서 특별기획전을 연다.

9일 서울광장에서는 1987년 당시의 장례 행렬 재연을 비롯한 ‘이한열 문화제’를 진행한다. 연세민주동문회와 함께 연세대에 이 열사를 기념하는 ‘6·9 기념제’를 학교 공식 행사로 진행해 달라고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도 받고 있다.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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