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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없는 ‘소몰이식’ 무허가 축사 양성화… 농민 원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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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6 11:30:33 수정 : 2017-04-26 11:4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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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촌이 미래다-그린 라이프] 무허가 축사 적법화 사업의 ‘그늘’
우리나라 경제 성장이 본격화하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고기 반찬’은 식탁에서 흔히 볼 수 없는 ‘귀한 것’이었다. 관련 통계를 살펴보면 1970년 기준 우리나라 1인당 연간 평균 육류(소·돼지·닭고기) 소비량은 5.2㎏에 불과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서구식 음식문화가 들어오며 1980년에는 11.3㎏으로 두배 이상 늘었다. 이어 1990년 19.9㎏→2000년 31.9㎏→2010년 38.8㎏→2015년 47.6㎏으로 45년 전보다 9배 이상 뛰어올랐다. 음식점 육류 1인분 200g을 기준으로 잡으면 1인당 연간 238인분을 먹고 있는 셈이다.


이에 맞물려 국내 축산업도 비약적으로 성장해 왔다. 25일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농축산업 생산액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1990년 3조9229억원이었던 축산업 생산액은 2016년 18조3000억원으로 전체 농업 생산액 43조억원의 42.5%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농촌 인구의 감소와 고령화, 육류수입 증가 등에도 축산업의 규모화·전업화 등이 진행되면서 확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무허가 농가 적법화 컨설팅을 위해 농가를 찾은 한 농협 관계자가 축사를 살펴보고 있다.
농협중앙회 제공
◆전국 축사 절반은 무허가

축산업에 시련의 바람이 불고 있다. 2014년 3월24일 가축분뇨의 관리 및 이용에 관한 법률(가축분뇨법)이 개정·공포되면서다. 정부는 가축분뇨가 수질오염과 악취 등을 유발한다며 일정한 기준에 따라 분뇨 관리시설에 개선명령을 할 수 있는 내용을 개정안에 담았다. 명령에 이행하지 않으면 사용중지와 폐쇄명령까지 내릴 수 있는 조항이 신설됐다.

문제는 분뇨 관리시설 개선 기준이 축사의 면적에 따라 적용되면서 건축법 기준이 불거진 것이다. 상당수의 축사가 건축물대장에 다른 용도로 지정된 퇴비사, 창고 등을 활용해 조금씩 축사 면적을 늘리거나 축사와 축사, 퇴비사의 지붕을 연결하는 증·개축을 해왔기 때문이다. 건축물대장이 아예 없거나 가축사육 제한지역(주거밀집지역, 상수원보호구역) 등에서 가축을 키우는 경우도 적잖다.

국내 축사의 절반 이상은 이런 형태를 띠고 있다. 지난해 10월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자체별 소·돼지·닭·오리 축사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11만5212곳 중 52.2%인 6만190곳이 무허가 축사였다. 가축분뇨법은 공포된 뒤 1년 뒤인 2015년 3월25일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3년간 유예해 내년 3월25일부터 적용된다. 무허가 축사들은 이때까지 적법화 절차를 마쳐야 한다.

◆무허가 축사 적법화 ‘산 넘어 산’

무허가 축사의 적법화는 말처럼 쉽지 않다. 적법화 절차는 측량→자진신고→이행강제금 부과→건축설계(용역)→건축허가(지자체 각 부서승인)→ 축산업 허가등록·허가 순으로 진행되는데 신축 절차와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 이런 절차에는 측량비, 설계비, 감리비, 용역비, 인허가수수료, 이행강제금 등 신축 수준의 비용이 동반된다. 설계의 경우 3.3㎡당 3만∼4만원의 비용이 들어 웬만한 규모만 되어도 수천만원의 비용을 부담할 수밖에 없다. 측량비용과 이행강제금, 인허가수수료 등까지 감안하면 농가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무허가 축사를 적법화하는 데는 건축법과 가축분뇨법, 축산법 등 여러 법률 규정을 충족해야 하기 때문에 5~6개월이 걸린다. 시행 후 3년의 유예기간이 있었지만 약 16개월은 조류인플루엔자(AI), 구제역과 같은 가축질병이 발생해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했다. 가축질병이 발생하면 이동중지 명령이 내려지기 때문에 각종 행정절차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의 느긋한 대응도 시간을 잡아먹었다. 2015년 3월 적법화 유예기간이 시작되면서 농민들은 어떤 것부터 시작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지만 농식품부, 환경부, 국토부 등 관계부처들은 8개월 뒤에야 무허가 축사 적법화 실시 매뉴얼을 내놓았다. 지난해 11월 발표한 무허가 축사 실태조사 결과도 정부의 늑장대응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적법화 절차 진행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도 있다. 그린벨트, 군사보호지역, 상수원보호구역 등과 같이 입지제한을 규제하고 있는 지역의 축사는 측량, 설계와 같은 적법화 절차를 밟을 수 없다. 사실상 구제방안이나 정부의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경기 남양주에서 한우농장을 운영하는 A씨는 “30여년 전 시가 (그린벨트에서 축산업을 할 수 있도록) 허가를 해줘 지금까지 생업을 유지했는데 이제 와서 무허가 축사라고 하니 기가 막힌다”며 “농가의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악법”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시화와 산업화과정에서 계획관리지역으로 편입돼 있거나 관광도시와 특별시·자치시 등은 건폐율 완화와 같은 행정조례가 개정되지 않아 문제가 되고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보전관리, 생산관리, 농림 및 자연환경보전지역은 60% 이하의 범위에서 건폐율을 완화하도록 하고 있으나 이들 지역의 건폐율은 20∼40% 정도에 불과해 사실상 축사 운영이 불가능하다.

◆“적법화 3년 이상 연장해야” 목소리 커져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허가 축사 적법화는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무허가 축사 6만190곳 중 3.2%인 1947곳만 적법화가 완료됐다. 현재 5819곳(9.7%)이 추가로 적법화를 추진 중인 것으로 농식품부는 파악하고 있다. 이대로 법이 시행된다면 상당수의 축산농가가 폐업 등의 절차를 밟게 될 것으로 보인다. 적법화 관련 대상 농가가 소규모 한우농가에 집중돼 자칫 국내 축산업 붕괴까지도 우려된다.

국회의원들의 연구모임인 ‘농업과 행복한 미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AI와 구제역 등으로 홍역을 겪은 농가들이 이번에는 무허가 축사 폐쇄법으로 더욱 어려운 위기에 놓였다”며 “상당수 축산농가가 행정절차와 비용부담으로 유예기간 도래 후 축산 포기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축산업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행정규제 유예기간을 3년 추가로 연장하는 개정안 발의를 준비 중이다”고 밝혔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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