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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법조타운] ‘단명’ 포드 美대통령의 최대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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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24 01:19:46 수정 : 2017-04-24 01: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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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여 임기… 스티븐스 대법관 발탁 / 중도·시민 권익 옹호 판결로 존경 / 새 정부, 헌재·대법원장 후임 과제 / 대선 후보들 ‘사법기관 비전’ 밝혀야 미국 제38대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재임기간이 1974년 8월부터 1977년 1월까지 2년5개월로 다른 대통령보다 훨씬 짧다. 전임자 리처드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하야한 뒤 부통령이던 그가 대통령직을 넘겨받아 잔여 임기만 채운 탓이다.

미국 연방대법관은 종신직이라 사망이나 은퇴 등으로 결원이 생겨야만 후임자 임명이 가능하다. 그래서 임기 중 대법관 인사권을 한 번도 행사하지 못한 채 백악관을 비운 대통령이 허다하다. 포드의 후임자인 지미 카터가 대표적이다. 포드는 비록 잠깐 대통령직에 머물렀지만 그래도 대법관 한 명을 임명하고 떠났다. 1975년 12월부터 2010년 6월까지 무려 34년6개월 동안 대법원을 지킨 존 폴 스티븐스가 주인공이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스티븐스는 좌우 대립이 격렬한 대법원에서 오랫동안 중도를 걸었다. 그러다 말년에는 진보 쪽으로 기울어 다수보다 소수, 정부보다 시민의 권익을 옹호하는 판결로 대중의 존경을 받았다. 미국인들이 ‘짧은 임기의 포드가 남긴 유일한 업적이 바로 스티븐스 대법관 발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잘 뽑은 대법관 한 사람이 대통령 대여섯 명보다 미국 사회의 갈등 해소와 통합에 더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그래서인지 대법관 인선에 대한 미국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은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 대선 당시 TV토론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와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받은 핵심 질문도 ‘대법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이냐’였다. 트럼프는 “헌법을 존중하고 미국 헌법의 가치를 구현하는 대법관을 임명하고 싶다”며 “특히 (국민의 총기 소지권을 규정한) 수정헌법 2조를 잘 이해하고 그 권리를 보호하는 대법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클린턴은 “대법원이 기업보다 서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서민의 삶, 서민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에 대한 현실적 감각을 갖춘 이를 임명하고 싶다”고 답했다.

한국은 어떤가. 오는 5월9일 탄생할 새 대통령은 당장 3개월가량 공석인 헌법재판소장부터 임명해야 한다. 헌법과 법률의 중대한 위반을 저지른 현직 대통령에게 헌정 사상 처음 파면을 선고한 헌재의 권위와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대통령 탄핵심판 착수 전까지 헌재가 심혈을 기울인 작업은 종교나 신념을 이유로 군대에 가지 않으려는 남성들의 형사처벌이 위헌인지 여부를 가리는 일이었다. 헌재가 제 구실을 다할 수 있게 헌재소장에 최적임자를 뽑아야 한다.

새 대통령은 또 집무실에 앉자마자 양승태 대법원장으로부터 대법관 후보 2명의 임명제청안을 받게 될 것이다. 지난 2월 퇴임한 이상훈 전 대법관, 그리고 오는 6월 물러날 박병대 대법관의 후임자들이다. 헌재소장뿐만 아니라 대법원도 벌써 2개월 넘게 대법관 한 자리가 비어 있다. 대법관 제청권은 대법원장한테 있지만 대통령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당연직 위원인 법무장관을 통해 얼마든지 의견을 낼 수 있다. 법률가로서 역량을 갖춘 겸손하고 청렴한 대법관이 요구된다.

오는 9월 임기가 끝나는 양 대법원장의 후임자 선정은 새 대통령의 최대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조인들은 “대통령보다 긴 6년 임기의 대법원장이 누가 되느냐에 사법부는 물론 우리 법조계 전체의 앞날이 달려 있다”고 단언한다. 대통령이 파면에 이르는 과정에서 선명해진 시대정신은 ‘법 앞의 평등’과 ‘국민주권 실현’이다. 사법부가 바로 서야 이룰 수 있는 것들이다. 신임 대법원장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국을 돌며 표심 잡기에 안간힘을 쓰는 유력 대선 후보들은 막상 당선되면 누굴 헌재소장에 앉힐지 결심이 섰을까. 꼭 이런 사람을 대법원장, 대법관에 기용해야 한다는 나름의 소신을 갖고 있기는 한 걸까. 박근혜정부의 몰락은 ‘참사’로 불러 마땅한 인사 실패에서 비롯했다. 대통령이 국민과 공조직은 외면한 채 비선 측근하고만 소통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똑똑히 보여줬다. 헌재와 법원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해진 지금 대선 후보들이 사법기관 구성에 관한 비전을 국민 앞에 소상히 밝히길 기대한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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