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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도 사법고시도 재수로 합격… 영원한 ‘노무현의 남자’

입력 : 2017-04-03 22:17:46 수정 : 2017-04-03 22: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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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본 문재인
대선 ‘재수생’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3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2012년 ‘노무현의 비서실장’, ‘노무현의 친구’라는 타이틀이 더 친숙했던 그는 2017년 ‘노무현’이라는 세 글자를 떼고 ‘문재인’이라는 석 자를 분명히 하며 민주당 후보로 다시 대통령에 도전한다. 대학과 사법고시에 재수로 합격한 그는 스스로를 ‘재수에 강하다’고 소개한다. 주요 키워드로 문 후보의 걸어온 길을 되짚어본다.

◆가난= 문 후보는 1952년 경남 거제에서 태어났다. 함경남도 흥남이 고향인 그의 부모는 1950년 ‘흥남철수’ 때 피란 와서 그를 낳았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의 연탄 리어카를 끌다 길가에 처박히기도 하고, 영도 신선동 성당에서 나눠주는 구호식량을 받기 위해 긴 줄을 서기도 했다. 그는 가난한 형편에도 부산의 명문 경남중·고를 거쳐 경희대 법대에 전액장학생으로 입학한다. 문 후보는 자서전에서 “가난이 준 선물”이라며 “자립심과 독립심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썼다.

◆원칙=문 후보의 좌우명은 ‘어려울수록 원칙으로 돌아가라’다. 문 후보를 설명하는 데 빠지지 않는 수식어도 ‘원칙주의자’다. 문 후보는 자서전에 사법시험 최종 합격을 앞두고 안기부 요원과의 3차 면접에서 ‘지금도 데모할 때와 생각이 변함없느냐’는 질문에 “변함없다”고 대답했던 상황을 회고하며 “자존심을 굽히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고 적었다.

원칙을 앞세우는 만큼 ‘고집스럽다’는 비판도 따라다닌다. 문 후보의 ‘원칙주의’는 2015년 당대표 시절 비주류 진영과의 갈등을 겪으면서 극대화됐다는 평가다. 문 후보가 당 혁신작업을 이끌면서 비주류 진영을 사실상 ‘반혁신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결국 분당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전 대표의 청와대 민정수석 활동 당시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운명=문 후보는 1982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첫 만남을 ‘운명’으로 기억한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부산으로 향한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 ‘노무현·문재인 합동법률사무소’를 열고 부산지역 시국사건들을 도맡다시피 하며 동지 관계로 발전했다. 2002년 노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부산선대위원장을 맡았고, 노 전 대통령 당선 후에는 청와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 탄핵심판 때는 대리인단 간사 변호인을, 노 전 대통령 서거 때는 ‘국민장 장의위’ 상임집행위원장으로 상주 역할을 했다. 문 후보는 ‘운명’이라는 제목의 자서전 마지막 문장에 “당신은 이제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썼다. 문 후보의 운명은 2012년 대선 출마로 이어졌다.

◆권력의지=문 후보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패인 중 하나로 ‘권력의지’ 부족이 꼽혔다. 의지가 아닌 운명에 끌려 대선에 출마했다는 지적 속에 ‘정치적 공백기’를 가졌다. 문 후보는 2014년 12월 당대표직에 출마하며 ‘승부수’를 던진다. 그는 당대표 출마 연설문에서 “당대표가 안 돼도, 당대표가 돼 당을 살리지 못해도, 총선 승리를 못해도 어떻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겠느냐. 사즉생, 죽기를 각오하고 나섰다”고 했다. 당 대표 시절 비주류 진영의 공세를 꿋꿋이 버텨낸 문 후보는 지난해 20대 총선을 앞두고 인재 영입과 10만 온라인당원을 모으며 당내 기반을 다졌다. 문 후보가 당대표 시절을 거치며 권력의지를 확고히 해왔다는 게 측근들의 평가다.

박영준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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