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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분석] "진보·보수·중도 모두를 거부 한다"…표류하는 '이념 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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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4-02 15:38:54 수정 : 2017-04-02 15: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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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화된 시대에 ‘진보’ ‘보수’ 대립구도는 시대 착오적” / “정치지도자는 종교지도자처럼 절대적인 공약 내세우는 것 삼가야” /“장년 세대는 대북안보 이슈를 중심으로 진보보수 나누고 2030은 분배 이슈가 가장 중요해.......진보보수를 두고도 동상이몽”
“파편화, 다원화된 시대에 ‘진보’ ‘보수’ 대립구도는 시대 착오적”

“다양성이 표출되고 인정되는 다원화된 시대, 유권자들 이슈별로 진보 보수를 넘나드는 것은 당연한 현상"

“정치지도자는 종교지도자처럼 절대적인 공약 내세우는 것 삼가야”

“장년 세대는 대북안보 이슈를, 2030은 분배 이슈를 이념정향의 가장 결정적 요인으로 간주...진보보수를 두고도 동상이몽"

#.1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고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선호하는 회사원 김모(31)씨. 사회안전망 확충에 찬성하지만 보편적 복지확대에는 극렬히 반대하고 대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재벌의 회사 이익 편취를 막는 게 시급한 경제문제라 생각하지만 막상 법인세 인상에는 반대한다. 또 교육양극화 해소가 절실하다고 믿지만 고교평준화는 되레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해 반대한다. 다시 돌아온 대선의 계절 ‘범보수 연대’, ‘범진보 연대’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에서 김씨가 자신의 소신만 얘기했다하면 지인들은 이도 저도 아닌 ‘회색분자’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가장 중시하는 각 대선주자들이 제시한 비슷비슷한 경제공약들을 살피다 보면 혼란은 더욱 커진다.

#.2 회계 법인에서 잘나가는 파트너로 성장해 억대연봉을 받고 있는 최모(48·여)씨. ‘국가경제’ 차원에서는 정부가 의당 소득 재분배에 가장 힘써야 한다고 믿고 있고 법인세 확대에도 적극 찬성하며 기존 보수집권정당에는 환멸까지 느낀다. 하지만 막상 부동산 보유세, 소득세 최고세율 인상 등을 비롯해 잘나가는 전문직 최씨의 ‘개인경제’를 위협하는 소위 말하는 진보정당에는 어쩐지 표를 던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직장동료는 물론 지인들 사이에서 진보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막상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정책은 소위 말하는 ‘보수’ 정책이다. 보수 브랜드 정당에 대한 투표도 고려중이다. 최씨를 보수 또는 진보 한쪽으로 구분하는 게 가능한 일일까.

각 당의 경선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기 시작하면서 19대 대선의 대진표 윤곽과 함께 범진보 대 범보수의 후보 단일화 논의가 또 다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조기대선을 앞둔 시민들 사이에서는 스스로를 ‘진보’와 ‘보수’ 어느 쪽으로도 규정짓기 싫어하는데다 ‘중도’로 분류되기조차 원치 않는 ‘이념 회피층’이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년세대’와 ‘장년세대’가 진보와 보수의 표상을 전혀 다르게 인식하고 있는데다 반공주의 쇠퇴, 이슈 다면화 등 사회경제적 환경 변화로 인해 이미 다차원적인(multi-dimensional) 이념공간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정치권이 내세우는 정치구호와 시민들이 중시하는 것 사이에 정치적인 괴리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장미대선을 한 달여 남겨 둔 2일 최근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이념정향을 분석한 10여개의 대표 학술논문과 국책·민간 연구소를 기자가 분석해 본 결과, 이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이 진보와 보수 균열의 다층화에 관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한국 사회 이념갈등의 세대 간 특성 비교’에 관한 이민규 경상대학 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냉전 이데올로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장년세대는 자신을 진보 혹은 보수라 결정하는 데 있어 여전히 대북안보정책에 대한 관점을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반면 2030세대는 ‘분배와 성장 이슈’에 대한 태도를 가장 결정적인 변수로 여기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에 따르면 2030세대는 그 전 세대에 비해 진보와 보수 집단 간 이념적 배타성 자체가 적었다.

다시 말해 주요 대선 주자들이 ‘진보’와 ‘보수’ 대표 후보를 브랜드로 내세우는 동안 막상 젊은 층과 장년층은 이를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분배와 성장이슈’와 관련해서는 진보와 보수 브랜드를 내세우는 후보들 간 차별화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예컨대 범진보 대세 후보로 꼽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법인세 명목세율 인상에 대해서 막상 일보 물러난 태도를 취한 반면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는 법인세 최고세율 인상을 지지하고 있다. 출자총액제도 등 재벌개혁과 관련한 정책은 박근혜·최순실 사태 이후 사실상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외한 모든 후보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중점 정책이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석지현(31·여)씨는 “대선주자들이 파격적인 복지 정책을 내세우면서 막상 재원은 어떤 방식으로 마련할 것인지, 세수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구체적인 알맹이들은 전혀 제시하고 있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선택에 갈피를 못 잡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보 보수 대립구도를 내세우는 정치권에 대해 피로감이 커지는 현상과 관련해 임성호 경희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금은 과거의 냉전, 산업시대가 아니다. 사회가 급속히 파편화되고 있고 사회정책 환경 역시 급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정치권의 진보 보수를 둘러싼 이분법적인 네이밍과 정치 대결 구도 확립 역시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고 지적하며 “정치 지도자들은 이념적인 일관성을 내세우기보다 생활정치 맥락에서 각 정책 공약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따져 현실 가능한 것을 친절하게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제시했다. 아울러 “정치지도자가 마치 종교 지도자처럼 당선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절대적이고 파격적인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며 내세우기보다 큰 철학을 바탕으로 당선이 된 다음에 반대쪽과도 소통하면서 구체적인 것을 집행하는 것이 무책임한 언사로 인한 정치혐오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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