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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37〉 조선시대의 렌털 비즈니스

입력 : 2017-03-24 20:48:24 수정 : 2017-03-24 20: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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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례 물품부터 책·말까지 대여… 현대사회 ‘공유 경제’ 원형 정수기, 안마의자, 가전제품, 스키 장비. 이런 물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구입하지 않고 빌려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 바로 ‘렌털’ 산업의 대표 품목들이다. ‘하’, ‘호’, ‘허’ 등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는 렌터카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인의 생활에서 렌털 없이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시장이 확대되고 고객의 요구가 다양하고 세분화됨에 따라 렌털 업계는 변화를 겪었다. 산업의 발달 때문이기도 하고, 문화나 유행의 흐름 때문이기도 하다. 두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하나는 최근 들어서 IPTV나 스마트폰 등을 통해 원하는 프로그램을 기간별로 구입하여 시청하게 된 현상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비디오테이프나 DVD를 대여점에서 빌려 보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었다. 깜박 잊고 반납이 늦어지면 연체료를 물어야 했고, 내가 원하는 걸 다른 사람이 먼저 빌려 가면 며칠 동안 기다려야 했다. 

신부의 좌우에 수모(手母) 두 명이 서서 돕고 있는데, 이들이 신부의 화장 및 각종 장신구 대여까지 담당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다른 하나는 옷을 빌려 입는 경우가 다양해졌다는 사실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빌려 입는 것은 익히 알고 있는 상식이었지만, 경복궁 앞을 비롯한 고궁 안팎에서 내·외국인 할 것 없이 한복을 빌려 입고 다니는 모습은 새롭게 등장한 풍경이 되었다. 이렇게 렌털 비즈니스는 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그 모습을 바꾸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200년 전이나 300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의 일상 속에는 ‘렌털’이라는 개념이 있었을까. 아무래도 그렇게 오래전이라면 공장 생산이 시작되지 않았던 시대였으니까 렌털을 할 만한 물건도 없었으리라 생각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역사의 면면을 하나하나 들춰보고 있노라면, 렌털의 역사가 그렇게 짧지만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영조 29년(1753년)에 기록된 ‘시폐’(市弊) 등의 자료를 통해 고증 가능한 몇 가지 사례로 ‘렌털의 한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조선 후기 서울에는 여러 가지 옷을 파는 가게인 의전(衣廛)이 있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대개 가정에서 옷감을 만들거나 원단을 구입하여 옷을 직접 지어 입었기 때문에 새 옷을 사서 입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의전이 주로 판매한 옷은 헌 옷이었다. 요즘의 구제옷 가게나 빈티지 숍과는 달리 헌 옷만 팔아서는 생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의전에서는 결혼식 때 신랑이 입는 예복을 대여하는 사업을 부업으로 병행하였다. 단령(團領) 또는 신랑 길복(新郞吉服)을 말하며, 관디(冠帶)라고도 했다. 신랑 예복은 결혼식 때 잠시 사용하는 것이지만 그 값이 저렴하지는 않았으므로, 굳이 구입하거나 직접 만들기보다는 빌려서 입는 쪽으로 문화가 정착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의전에서 옷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다들 새 옷을 원했다. 이는 아마도 평생에 한 번뿐인 예식에서 남이 입던 옷을 다시 입기는 싫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결혼식을 치르려면 신랑보다는 신부의 치장을 위해 여러 가지 물품이 더 많이 필요했고, 그 종류도 수식(首飾), 어여머리(簂髻), 비녀(釵鈿), 보요(步搖), 귀걸이(耳璫), 반지(戒指), 보패(寶佩), 금수(錦繡), 장복(章服) 등으로 무척 다양했다.

이런 물건들을 직접 마련하기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신부를 단장하거나 관련된 일을 도와주던 장파(粧婆)에게서 렌털하여 사용했다고 한다. ‘장파’를 글자대로 풀어보면 “화장하는 할머니”에 해당하며, 속칭 수모(手母)라고도 불렀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신부의 ‘도우미’가 메이크업 및 치장을 전담함과 동시에 액세서리 대여까지 겸하고 있었던 셈이다.

결혼식처럼 큰 잔치를 벌이는 날에는 수많은 손님을 치러야 했고, 손님마다 각각 상을 따로 차려 접대를 하는 것이 풍습이었다. 요즘 넓은 뷔페식당에 수백 명의 하객이 앉아서 동시에 식사를 하는 것처럼, 예전에는 마당에 자리를 깔고 작은 상을 수십·수백 개 늘어놓아야 했다.

그런데 그 많은 상과 그릇을 집집마다 상시적으로 구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한 필요에 의해 서울에서 운영되었던 가게가 바로 세물전(貰物廛)과 세기전(貰器廛)이었다.

세물전은 여러 가지 도구나 그릇을 혼인이나 장례 때에 빌려주는 곳이었는데, 한 건당 렌털 가격이 10전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세물전 주인이 경조사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모르는 것이 없는 사람을 일컬어 “세물전 영감”이라고 부르는 속담이 생겨났을 정도였다.

세기전도 마찬가지로 잔치에 쓰는 소반이나 그릇을 빌려주는 곳이었으며, 내세기전(內貰器廛)과 외세기전(外貰器廛)이 있었는데, 자기(磁器)나 홍칠반(紅柒盤)을 주로 빌려 주었다고 한다. 그릇을 많이 비치하고 있다 보니, 여러 상사(上司)나 아문에서 위력을 동원하여 값도 치르지 않고 우선 가져다 쓰는 폐해도 있었고, 나중에 값을 치를 때에도 차일피일 미루거나 제값을 치르지 않는 문제가 많았다고 한다.

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시골과 달리 서울에서는 수많은 손님을 맞으며 결혼식을 치를 만큼의 집이나 마당이 없었고 있다 해도 그다지 넓지 않았다. 그래서 혼례를 치를 때에 신부 집으로 쓰는 금교세가(金轎貰家)라는 곳이 여러 곳에 있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예식장 또는 웨딩홀인 격이며, 예전에 종친이나 공주·옹주 등이 살았던 옛집, 즉 궁가(宮家)를 활용하여 세를 주는 방식으로 운영하였다. ‘금교세가’를 가마(金轎)를 빌려준 곳이라고 설명하는 경우도 있는데, 가마의 임대는 조선 초기부터 확인되고 있다.

특히 공주나 옹주가 타는 가마를 ‘덩(德應)’ 또는 ‘교(轎)’라고 하였고, 사용하지 않을 때에 민간의 혼례에 쓸 수 있게끔 대여하여 종친부(宗親府)의 수입을 보충하였다.

아무래도 혼례나 잔치와 관련된 렌털의 관행이 흔했지만, 그밖에 혼례와 관계없이 널리 알려진 대표적 렌털 비즈니스로서 세책집(儈家)을 들 수 있다. 조선 후기에 소설이 널리 보급되면서, 손으로 베껴 적은 필사본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업자가 등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떤 여자들은 책에 빠져 비녀나 팔찌 등의 패물을 팔거나 빚을 내기까지 하고서 책을 빌려 읽고 그러다 보니 음식 만들기나 베 짜기를 모르게 될 정도였다고 하니, 새로운 문화에 꽤나 열광한 사람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얼마 전까지 동네마다 들어서 있었던 도서대여점에서 만화책이나 소설책을 빌려 읽던 것까지 생각해 보면, 300년 이상 이어져 온 역사가 있었다고 해야겠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소개해 두고 싶은 사례는 돈을 주고 말을 빌리는 세마(貰馬)에 관한 것이다. 말을 빌리는 목적은 승용인 경우도 있었고, 운반용인 경우도 있었으니, 현대의 렌터카나 콜밴 또는 화물 용달 정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겠다.

예컨대 왕실 문헌을 보면, 말을 빌려 싣고 날랐던 화물은 쌀, 쪽[藍], 땔나무, 기왓장 등으로 다양했고, 궁녀들이 궐내외로 드나들 때에도 말을 빌려 이용하고 대가를 지급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다양한 목적으로 말을 빌릴 수 있었던 것은 세마계(貰馬契)와 같은 전문적 조직이 렌터가 업체처럼 말을 외양하며 관리하는 제도가 정착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목돈을 들여 구입하지 않고서도 필요한 제품을 일시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렌털의 현장을 조선시대 역사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전문 렌털 업체가 아닌 관공서에서 빌려 쓰는 관행도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었다는 점을 추가로 감안하면, 조선시대 사람들도 현대인과 마찬가지로 렌털 없이는 살아갈 수 없었던 셈이라고 해야 할 정도이다.

최근에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현대인의 노력 중 하나로서 종종 거론되곤 하는 ‘협력 소비’나 한 번 생산된 제품을 여럿이 공유해 쓰는 협업 소비로 경제는 물론 환경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공유 경제’의 원형을 어쩌면 한국의 전통에서도 일부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조영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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