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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文靑 꿈꾼 거장의 인생 편력 오롯이

입력 : 2017-03-24 03:00:00 수정 : 2017-03-23 21:3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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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 서정주 산문 전집’ 4권 출간 한국 ‘시인부락’의 족장으로 군림했던 미당 서정주(1915~2000)의 산문 전집 전 4권이 출간됐다. 2015년 미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미당 서정주 전집’(은행나무)을 발간하기 시작한 이래 시, 자서전이 먼저 출간됐고 이번에 산문 전집(8~11권)을 선보인 것이다. 1935년부터 60여 년간 발표한 미당의 산문 자료 전체를 수집하여 총 247편의 산문을 4권으로 분류해 펴냈다. 자료 차원을 넘어서서 사적인 편력부터 일기를 포함해 문학 정신까지 미당 특유의 입담에 실려 흥미롭게 읽힌다.

“세상살이가 영 할 수 없이 딱해 못 견디겠거든 자연을 바짝 가까이해라. 신라 화랑들이 할 수 없을 때 마지막 힘을 얻은 곳도 바로 여기고, 사실은 중국이 오래 대국 노릇을 해 온 것도 노자를 비롯해서 인도에서 꾸어 온 석가모니를 통해서까지 이 자연과의 융화를 통한 설득력을 성취한 때문으로 안다. 자연과 딱 합해져서 풍운이요, 뇌성이요, 벼락이라면 이보다 더 수승한 힘이 어디 있겠느냐.”


탁월한 언어 운용으로 한국 시의 새로운 지평을 연 미당 서정주. 그는 생전에 발표한 산문에서 “나는 어떤 평가들이 말하는 그런 샤머니스트는 아니고, 말하자면 한 ‘신라주의자’에 불과하다”고 시의 뿌리를 밝혔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미당은 자식들이나 제자들이나 가까운 후배들에게 때때로 이렇게 말했노라고 8권의 표제로 삼은 ‘떠돌이의 글’에서 피력한다. 그는 “떠돌이, 떠돌이, 떠돌이… 아무리 아니려고 발버둥을 쳐도 결국은 할 수 없이 또 흐를 뿐인 숙명적인 떠돌이, 겨우 돌아갈 곳은 이미 집도 절도 없는 할머니 고향 언저리 바닷가 노송뿐인 이 할 수 없는 철저한 떠돌이”가 바로 자신이라고 고백하거니와 그 떠돌이의 숙명적인 마지막 정처 또한 자연인 것이다. ‘떠돌이의 글’에는 스무 살 청년이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인생 편력이 담겼다.

일제강점기 말기에 친일 시를 쓰고 5공화국 초기 쿠데타로 집권한 군인 출신 대통령을 찬양하는 시를 써서 비판을 받아온 미당이 중앙고보 시절 사회주의 서적 독서회 멤버로도 활동했다는 사실은 이채롭다. 그는 1930년 ‘광주학생사건’ 1회 기념일 시위에 주동자의 하나로 선두에 섰다가 체포돼 서대문감옥 미결감 독방에 1838호 수인번호를 달고 수감됐던 일화도 소개한다. 미우라라는 이름의 젊은 일본인 검사가 “너, 어머니가 보고 싶겠지?”라고 여성적인 목소리로 물었는데 “어머니란 한마디에 마음이 복받쳐 올라 나도 몰래 그만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썼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앞선 유약한 심정을 “주모자답지 못해서 그 뒤 가끔 미안했다”면서 솔직하게 고백하고 있거니와 그가 향후 역사의 변곡점들에서 보인 처신도 이와 유사한 맥락에서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9권 ‘안 잊히는 사람들’에는 일기와 편지, 주변 인물들과의 일화를 수록해 한국 현대문학의 내밀한 풍경들을 살려냈다. 미당이 도와주었던 김소월의 아들 김정호 이야기 같은 읽을 거리가 풍부하다. 1934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소월의 셋째 아들 정호는 1951년 중공군과 함께 38선을 넘어온 병사 중 하나였다가 포로로 잡혔다. 이후 반공포로 석방으로 남한 땅에서 살게 됐는데 아버지 소월의 시집 인세로는 연명하기 어려워 열차 안을 누비는 ‘강생회원’으로 살았고, 이마저 힘들어지자 미당이 힘을 써서 국회의사당 수위 자리를 얻어준 이야기가 펼쳐진다. 아버지 소월과 아들 정호의 기질을 비교하면서 소월 시의 비밀을 들추는 맥락으로, 한국 시사의 한 대목을 기록하는 자료로 손색이 없다.

10권 ‘풍류의 시간’에는 신라 정신과 불교 사상, 한국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산문을 실었다. 11권 ‘나의 시’에는 미당 시의 정신적 뿌리와 단행본으로는 접할 수 없었던 다수의 자작시 해설, 후배들에게 주는 글 등을 수록했다. 미당은 타계 3년 전 발표한 산문 ‘나의 시 60년’에서 ‘문학을 공부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썼다. “재능만으로 시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사실 나같이 재능도 없고 미련한 사람도 없습니다. 나에겐 다만 시에 대한 간절함이 있고, 표현상의 새 매력을 탐구하고 또 탐구하는 열성이 있었을 뿐입니다. … 아직도 나는 철이 덜 든 소년이고 여전히 소같이 우둔합니다. 60년 넘게 시를 써 왔는데도 시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는 한정 없기만 합니다. 나는 영원한 문학청년입니다.” 미당 서정주 전집 간행위원회(이남호 이경철 윤재웅 전옥란 최현식)는 “미당 문학 가운데에서 물론 미당 시가 으뜸이지만, 다른 글들도 소중하게 대접받아야 할 충분한 까닭이 있다”면서 “‘미당 서정주 전집’은 있는 글을 다 모은 것이기도 하지만 모두 소중해서 다 모은 것이기도 하다”고 발간사에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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