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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파워게임에 사드보복에 격랑 속으로 빠져든 동북아 / 큰 물결에도 초연함 잃지 않는 ‘관해청도’ 참뜻 되새겨야할 때 요즘 즐겨보는 중국 드라마의 한 사무실 벽에 ‘관해청도’(觀海聽濤)라는 액자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 중국에서 많은 분이 좋아하던 계공(啓功) 선생의 글씨체와 비슷하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 긋는 획이 비슷한 느낌에다 글자체에 힘도 있어 보이는 그런 글씨인데 그렇다고 아주 일류 서예가가 쓴 것 같지는 않았다

이 액자가 눈에 들어온 것은 어디서 본 듯한 글귀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관해청도’, 그렇다. 벌써 한참 전인 2009년 11월 18일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를 새롭게 풀어가자며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측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액자의 글씨였던 것이다. 취임한 그해에 중국을 찾은 오바마 대통령을 중국 측은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그 일환으로 중국의 군사박물관 등 몇 개 기관이 중국의 장군 100명에게 금색으로 만든 호랑이 모양의 일종의 부적인 금옥호부(金玉虎符)를 수여하는 의식을 거행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에게도 한 개를 더 만들어 증정했고, 이어 군인이면서 유명한 서예가인 위안웨이(袁偉) 장군이 쓴 ‘관해청도’를 액자에 넣어 증정한 것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이 글귀는 언뜻 보면 ‘바다를 바라보고 파도소리를 듣는다’라는 아주 평범한 말이다. 큰 바다는 잔잔하다. 그 바다를 보다 보면 작은 파도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안 들리는 파도소리를 억지로 들을 이유는 없다. 그런 만큼 넓은 바다를 대하듯 일상의 작은 일에 쉽게 기뻐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담담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세상 일을 해나가라는 뜻도 된다. 말하자면 제갈량이 자기 아들에게 써 준 영정치원(寧靜致遠·고요한 마음을 가져야 멀리 뜻을 이룰 수 있다)과 같은 뜻이라고 볼 수도 있다. 다만 한문이라는 것이 해석이 다양할 수 있으니 ‘바다를 봐야 파도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일종의 조건문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당시 취임 후 곧바로 중국 방문을 택한 오바마 대통령에게 무엇을 선물할까 고민한 중국 당국이 이 행사에서 자연스럽게 서예작품을 선물로 주는 것으로 미국 대사관 측과 협의를 했고, 서예가인 위안 장군은 ‘등고망원’(登高望遠), ‘관해청도’, ‘진애화평’(珍愛和平) 등 세 가지 글귀를 써놓고 새벽까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다가 당시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국내외의 복잡한 정세 속에서 위기가 오더라도 초연하고 평온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에서 두 번째 글인 관해청도로 하기로 하고 붉은 종이에 위에서 밑으로 써내려간 이 글귀를 표구해 미국 대사관으로 보냈다고 중국 언론은 보도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 방문 전부터 ‘강력한 중국, 번영하는 중국’은 국제 사회 힘의 원천이 될 수 있으며,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새로운 대중국 구상을 내놓았다. 과거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보여준 일방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상호 협력을 강조하면서 아시아를 중시하겠다는 이 같은 선언에 중국도 이를 과거와는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오바마 대통령이 베이징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공식 만찬을 갖기 전 중국에 사는 그의 이복동생 마크 은데산조와 5분간 만나 얘기를 나눈 것도 중국 측의 배려에 힘입은 것이다.

그런데 이 글귀에 묘한 뜻이 들어가 있는 것을 미국 사람들은 모르고 있었다. 이 글귀 속의 바다(海)는 중국 지도부가 있는 중난하이(中南海)를 뜻하며, 파도(濤)는 당시 중국 국가주석인 후진타오(胡錦濤)의 마지막 이름 도(濤)를 뜻한다고 중국 일부 언론이 주장한 것이다. 즉 이 말은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의 최고 권부를 찾아와 후진타오 주석의 말을 들어라’는 뜻이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넓은 태평양을 무대로 해서 큰 그림을 그리자는 뜻이지만 실제로는 중국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말이 떠돌자 위안 장군은 ‘중국은 큰 물결이 일고, 바람이 휘몰아치더라도 초연함을 잃지 않고 역사를 이어왔으니, 지금 지구촌에 경제위기가 닥치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도 이 글귀처럼 넓고 깊은 마음을 가져달라는 뜻’이라고 부연 설명을 하는 것으로 논란의 소지를 봉합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이후 8년이 지난 현재는 미국도 중국도 최고 지도자가 바뀌고, 두 나라 관계는 갑자기 급변했다. 새로 취임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대화와 타협보다는 상대를 압박하는 방법으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더욱 강력해진 지위를 깔고 미국의 요구를 고분고분 따르지만은 않을 태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이 사드를 한국에 설치하려고 하자 중국은 미국 대신 한국에 경제압력을 가해 이 문제를 풀려고 해 한국도 격랑 속으로 함께 들어갔다. 태평양의 파도가 높아지고, 파도소리가 엄청 커진 것이다.

어쩌면 TV드라마에서 다시 본 관해청도라는 짧은 글귀가 지금부터 미국과 중국 두 나라에 같이 필요하고 그 뜻을 다시 살려야 할 때가 아닌가. 아니 오히려 우리와 중국, 우리와 일본, 우리와 북한 사이에 더욱 필요한지 모르겠다. 보다 큰 그림을 보고 냉정하고 담담한 마음으로 현안을 대응해 나가야 태평양 주변의 높은 파도가 잦아들 수 있을 것이다. 서로 잃지 않으려고, 지지 않으려고 하다가는 모두가 잃기만 할 재앙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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