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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어린 학생들 잡고 "대통령 억울"… '불안한 등굣길'

입력 : 2017-03-14 19:30:55 수정 : 2017-03-14 21: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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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단체 극성 시위… 삼릉초 학생들 애꿎은 피해 / 朴 사저 출입 골목이 후문 통학로 / 경찰 통제로 200m 돌아가 정문행 / 일부 지지자 폭언·폭력등 일삼아 / 학교선 등하교 수칙 통신문 발송 / 학부모들 집회 철회 탄원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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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8시30분쯤 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삼릉초등학교 학생들의 등굣길은 여느 날과 달랐다. 학교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저 옆이어서 친박(친박근혜) 지지자들과 맞닥뜨려야 했다. 김모(10·4학년)양은 “친구랑 집에 가는데 어떤 할머니들이 ‘대통령 억울하다’ ‘탄핵 잘못됐다’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며 “대답할 시간도 안 주면서 우릴 붙잡고 이야기하는데 너무 무서웠다”고 토로했다.

등굣길이 길어진 것도 불만이다. 박 전 대통령 사저 입구 골목이 삼릉초의 후문 통학로라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면서 전교생 500여명 중 상당수가 정문으로 200여m를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등교하던 6학년 임모(12)군은 “교장 선생님이 학교 마치고 운동장에서 놀지 말고 후문으로 다니지 말라고 했다”며 “매일 후문으로 다녔는데, 막히니 불편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박 전 대통령 사저 인근에서 연일 집회가 벌어지면서 어린 학생들이 애꿎게 피해를 보고 있다. 친박 지지자들의 극성스런 시위로 사저 인근 주민들이 겪는 불편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이 챙기는 학부모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부근에서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는 동안 하굣길 어린이를 동반한 여성이 그들과 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지나가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날 하굣길에는 아이가 걱정돼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4학년과 2학년 아이를 둔 김모(43·여)씨는 “아이들이 친박 지지자들의 구호를 듣고 배우거나 따라 할까 걱정”이라며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집회를)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을 일삼는 일부 지지자들의 행동은 걱정을 더욱 키우고 있다. 경찰은 이날 사저 부근에서 근무하는 경찰을 때린 혐의로 A(38·여)씨를 연행했다. 학생들의 불편과 학부모들의 걱정이 늘면서 학교는 전날 ‘어린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위한 협조사항 안내’라는 제목의 가정통신문을 발송했다. 학교 관계자는 “어제 5학년 여학생 2명이 (친박 지지자로 보이는) 낯선사람을 따라가 태극기 배지를 받았다고 한다”며 “아이들에게 낯선 사람이 기념품을 주거나 이야기하며 데려가려고 하면 따라가지 않도록 지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인근 도로에서 어린이들이 집회중인 ‘친박’ 단체 회원들 앞을 지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주민들의 불만도 크다.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9)씨는 “시위대가 식당 앞에 몰려있으니 손님들이 무서워서 안 온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식당의 주인은 “장사가 되냐 안 되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며 “(친박 지지자들이) 너무 험한 말을 하니까 무섭다”고 털어놨다.

사저 인근에 마구잡이로 내걸린 현수막도 마뜩잖다. “박근혜 국민 대통령님 환영합니다!” “종북좌파 척결한 우리 국민 대통령 박근혜”와 같은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강남구 관계자는 “철거를 건의하는 주민들의 항의전화가 하루에 40∼50건이나 오고 있다”고 전했다. 

경찰에 제지 당하는 박근혜 지지자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자택 앞에서 경계를 서고 있는 경찰들에 항의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자가 경찰에 제지당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담벼락에 박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응원 메시지를 적고 있다.
14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박근혜 전 대통령 사저 앞에 지지자들과 취재진이 대기하고 있다.
친박 단체는 사저 앞에서 4개월간의 집회를 신청한 상태. 집회를 금지시키면 좋겠지만 당장은 어려운 상황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집회 장소가) 학교 주변지역으로서… 학습권을 현저히 침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시위 금지 또는 제한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삼릉초 근처에 살고 있는 거주자나 학교 관리자(교장)의 요청 없이는 임의로 시위를 제한·금지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삼릉초 학부모들은 15일 “학교 인근 집회 신고를 철회해 달라”는 탄원서를 경찰에 낼 계획이다. 학교 녹색어머니회 봉사자인 김모(40·여)씨는 “내일 학부모총회가 열리는데 단체로 학부모 서명을 받아 구청이나 경찰에 민원을 넣을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김선영·배민영·이창훈 기자 00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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