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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착취재] 경성, 일제가 '한성' 격하하며 붙인 이름

입력 : 2016-12-25 19:11:04 수정 : 2016-12-25 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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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흔적 지우기 일환 외식업계는 물론 최근 대중문화에서도 많이 접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에 쓰인 서울 이름인 ‘경성’은 조선왕조의 도읍을 격하하고 특히 근대화를 추진 중이던 대한제국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일제가 붙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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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편찬원이 펴낸 ‘서울2천년사’에 따르면, 일제는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뒤 한국과 한국인을 상징하는 대한의 이미지를 없애기 위해 노력했다. 그중 하나가 한성부가 갖고 있던 수도로서의 이미지와 권위를 없애는 것이었다. 명칭은 경성부로 바뀌었고, 조직의 위상은 중앙부서에서 경기도가 관할하는 지방행정단위로 격하됐다. 독립국 수도로서의 지위가 상실됐고 경기도 소속 12개 부 중 하나가 됐다. 500여년 유지해온 수도로서의 역사가 끊기고, 구역과 기능도 축소됐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서울에 대한 전용 호칭으로서 경성은 1910년 8월 22∼29일 강제병합조치 후 9월 30일에 ‘조선총독부지방관관제’ 발표에서 한성부를 경성부로 고친 것에서 시작하며, 이후 서울은 ‘경성’, ‘게이조’라고 흔하게 불린다”고 설명했다. 또 “1945년 광복과 함께 경성부는 서울시로 개칭되고 1946년 9월 28일에 경기도에서 분리해 서울특별자유시로 승격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역사적으로 경성이란 호칭이 조선 중기 실록에 서울의 도성 안을 가리키는 뜻으로 조금 등장하지만, 시종 한성이 서울의 한자 표기 공식 명칭이었다”며 “강제병합 후 일제는 동경, 경도에 이은 일제 ‘천황’의 직예지 조선의 수도라는 뜻으로 경성으로 바꿨고, 이는 우리 16세기 기록과는 무관하다”고 설명했다.

 공식명칭 경성이 대부분 사용됐지만, 한국인들은 한성, 한양, 서울 등을 혼용한 흔적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1919년 서울에 세워져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통합되는 임시정부 이름이 ‘한성’임시정부였고, 영화 ‘밀정’에 등장하기도 했던 의열단의 ‘서울 폭탄반입 사건’이 추후 기록된 의열단원 우근 유자명 선생의 1983년 수기에서도 ‘폭탄과 권총은 안전하게 한성까지 도달했다’라며 ‘한성’ 표현을 고집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한편 1920년에는 모더니즘 문화 관련 잡지 ‘서울’이 창간되는가 하면, 당시 대중문화 중심 인물들이 서울의 치안담당자에게 보낸 공개탄원서로 유명한 ‘서울에 딴스홀(댄스홀)을 허하라’에서도 ‘서울’을 썼다.

김예진 기자 y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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