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최근 남아공 집권여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당지도부인 전국위원회(NEC)는 주마 대통령 불신임안을 의회 표결에 부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써 주마 대통령은 올해 들어서만 4번째 하야 위기를 넘겼다.
앞서 세 번은 야당의 추진으로 의회의 불신임안 투표가 이뤄졌지만 집권여당이 반대하면서 부결됐다. 이후 여당 내 퇴진 목소리가 거세지며 당지도부가 불신임안 발의 여부를 놓고 토론하는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또다시 주마 대통령의 편에 서는 것으로 결론났다.
2009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 2014년 재선에 성공한 주마 대통령은 오래전부터 숱한 부패 스캔들에 휘말렸다. 2005년 부통령 시절 무기거래를 허가해주는 대가로 뇌물을 받아 기소됐고, 같은 해 에이즈에 걸린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법정에 섰다. 그는 “에이즈 감염을 막기 위해 샤워를 했다(잘 씻으면 에이즈를 막을 수 있다)”고 말하며 공분을 샀다. 무기거래 관련 뇌물수수 혐의는 검찰이 갑작스럽게 기소를 철회해 논란에서 벗어났고, 에이즈 여성 성폭행 혐의는 무죄를 받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뒤로는 2010년 친구의 딸을 성폭행해 혼외 자녀를 낳은 것으로 도덕적 지탄을 받았다. 6번 결혼한 주마 대통령은 부인들과 내연녀 사이에 20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중 세 번째 부인이었던 케이트 주마는 “주마와의 결혼생활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주마가 내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2000년 자살했다.
주마 대통령은 2014년 자신의 사저를 개보수하는 데 국고 2억1600만남아공랜드(약 166억원)를 쏟아부으며 지난 3월 남아공 헌법재판소로부터 국고 유용 혐의를 인정받았다. 국민 세금으로 개인 사저에 수영장, 가축우리, 원형경기장 등을 지었다.
탄핵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른 건 지난 3월 음세비시 요나스 남아공 재무차관이 “지난해 12월 인도계 재벌인 굽타가가 내게 재무장관직 제안을 해왔다”며 비선 실세의 국정농단을 폭로하면서였다. 야당을 중심으로 지리멸렬하게 퇴진 요구가 이어졌다. 그러던 중 지난달 2일 남아공의 독립 감찰기구인 국민권익보호위원회가 ‘포로로 잡힌 국가’라는 보고서에서 굽타 가문이 주마 대통령과의 친분을 이용해 장관, 공기업 인사를 좌지우지하고 막대한 이익을 챙긴 정황을 폭로하면서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수천명의 시위대가 수도 프리토리아에 모여 주마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비영리단체인 ‘넬슨 만델라 재단(NMF)’도 “정부 주요기관이 (주마 대통령의) 사익을 위해 이용되는 등 남아공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며 “한 개인이 국가를 사유화하면서 남아공의 입헌 민주주의가 개탄스럽게 변질되고 있다”며 대통령 퇴진을 요구했다. 넬슨 만델라 재단은 그간 인권 운동 외에 정치적 문제에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주마 대통령은 젊은 시절 ANC 무장조직에서 활동하다가 체포돼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수감됐던 로벤섬 교도소에 복역했던 흑인 인권 운동가였다. 1942년 줄루족의 본고장인 콰줄루-나탈주에서 태어났고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 공부를 하지 못했다. 무학임에도 ANC를 통해 인권 운동에 뛰어들며 대통령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국민의 지탄을 받는 부패 정치인이 됐고, 넬슨 만델라의 ANC도 주마를 감싸는 기성 정당으로서 국민의 외면을 받았다. 지난 8월 남아공 지방선거에서 ANC는 1994년 넬슨 만델라 집권 이후 최저 득표율을 얻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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