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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운규의 ‘아리랑’에 대한 미국인 영화 전문가의 평론을 담은 1946년 5월20일자 ‘일간 예술통신’.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제공. |
아리랑은 1926년 10월1일 단성사에서 개봉했다. 부산 소재 영화사 조선키네마가 제작하고 나운규가 감독, 주연, 시나리오, 각색까지 맡은 35mm 무성영화다. 이후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던 아베가 일본으로 밀반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각계에서 여러차례 반환을 타진했지만 아베는 실물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거부하다 상속자도 없이 사망, 원본 필름의 소재를 확인할 수 없게 됐다.
이런 가운데 해방 직후 1946년 5월 영화 필름이 국내에 있었다는 것이 확인됐다. 사단법인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차길진 이사장은 17일 “1946년에 발행된 ‘예술통신’이라는 신문에 실렸던, 미국인 영화 전문가의 평론에서 해방 직후에도 국내에 아리랑 필름이 존재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밝혔다.
1946년 5월20일 ‘일간 예술통신’은 ‘태프로씨, 아리랑을 격찬’이라는 기사를 각 신문사로 보냈다. 태프로는 미국 군정청(재조선미육군사령부군정청·1945년 9월~1948년 8월15일)으로 파견되기 전 미국에서 영화를 전공하고 할리우드에서 배우로도 활동한 병사다. 기사에서 그는 “어제 대륙극장(단성사)에서 20년 전 작품이라는 ‘아리랑’을 보았는데 나는 그 영화를 통해 조선 영화인 중에 놀랄만한 수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쨌든 이 영화는 그 때 시절로는 세계적으로 내놓을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서방 전문가가 ‘아리랑’을 평가한 가장 오래된 글로, 태프로는 나운규를 수재로 평가했을 뿐 아니라 조선영화계 전반에 대한 기대감까지 드러냈다.
‘아리랑’ 필름이 일본으로 모두 반출됐다는 기존 주장과 달리, 해방 이후에도 국내에서 상영됐다는 사실도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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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운규. 한겨레아리랑연합회 제공. |
‘아리랑’ 개봉일 90주년을 앞두고 이 사료를 확보한 차길진 이사장은 “아리랑 필름이 국내 또는 북한에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 미국이 보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며 “아리랑 원본 필름 찾기 운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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