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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영현기자의역사항쟁지다시보기] 돌아오지 못하는 애국혼… 편강렬 열사 유해는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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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24 22:19:39      수정 : 2016-06-15 17:52:09
‘내가 죽거든 유골을 만주 땅에 묻어줄 것이요, 조국이 독립되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

열여섯 나이에 구한말 의병 선봉에 섰던 애사(愛史) 편강렬 열사가 만주의 병원에서 숨을 거두면서 남긴 유언의 일부이다.

독립운동사는 편 열사를 ‘일제의 고문과 잦은 투옥으로 병마에 시달려 죽음에 직면하고서도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을 잃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사는 1892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대가 경북 김천에서 이주한 인연으로 경북의 의병 이강년 휘하에서 16세에 선봉장으로 활동한다. 특히 1908년 서울진공작전에서 의병 허위의 휘하에서 동대문밖 30리까지 진출했다. 이후 황해도와 영남 지방에서 신민회, 대한광복회를 통해 국권 회복 운동을 했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황해도에서 군사주비단을 조직, 독립군을 돕다가 옥고를 치렀다. 국내 활동이 여의치 않자 만주로 건너가 1923년 의성단을 조직하고 중국 창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해 60여명을 사살하는 등 무장투쟁을 통한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하지만 1924년 8월 만주지역 독립운동단체의 통합을 위해 하얼빈을 방문하다 일경에 체포돼 신의주감옥으로 이송됐고, 징역 7년형을 선고받았다. 병보석으로 출옥하여 선천 미동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나아지지 않았다.

애사 편강렬 열사가 잠들어 있는 단둥의 진장산 입구. 지금은 대형놀이시설과 공원이 들어서 있어 편 열사의 묘지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1929년 1월 16일 “나라를 찾기 전에는 고국으로 이장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서른일곱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열사의 유해는 단둥 시내 북쪽에 있는 진장산(錦江山)에 묻힌 것으로 기록돼 있다. 진장산은 해발 200m의 낮은 야산에 불과하다. 지금 이곳에는 놀이시설과 공원이 조성돼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변모했다. 한·중 수교로 중국 여행이 자유로워지자 1995년 뜻을 같이한 사람들이 열사의 묘지를 찾아 나섰다. 심지어 최범산 작가는 묘를 찾기 위해 이 지역 지리에 밝은 주민들을 모아 진장산 일대를 수색했다. 하지만 열사의 묘지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열사의 묘지에는 ‘애사 편광렬지묘’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열사가 그토록 바라던 해방조국은 올해로 독립 71주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열사의 유해는 아직도 이역만리 이름 모를 골짜기 어딘가에 묻혀있다. 열사 유해 발굴은 경제성장이라는 우선순위에 밀려 우리의 관심 밖에 머물러 있다. <자료: 작가 최범산 제공>

류영현 기자 yhryu@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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