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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상담·공유·폭로… SNS '익명'에 기댄 대학생들

입력 : 2016-03-11 19:15:13 수정 : 2016-03-12 00: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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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 커뮤니티 ‘대나무숲’에 호소 빗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 본따
주변에 말 못하는 고민 털어놓고
또래의 공감 얻거나 위로 받기도
게시글 상당수 사실 여부 미확인
음해 등 악용 우려 목소리도 높아
‘저와 같은 일을 겪은 여성들이 많을 텐데 (그 일이)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만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최근 페이스북 ‘경희대 대나무숲’ 페이지에 사촌 오빠에게 당한 상습 성추행 피해를 담담하게 고백하는 글이 올라왔다.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된 범행이 성인이 될 때까지 4차례나 반복됐지만 가족에게 알리지 못한 채 참고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용기를 내 익명으로 쓴 한 학우의 글에 수백 명이 ‘좋아요’를 누르며 위로를 건넸다.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서 운영되는 각 대학 ‘대나무숲’에 고민 상담과 정보 공유는 물론 각종 제보, 폭로가 쏟아지고 있다. 대나무숲이 학생들 간 소통의 공간이 되고 있다는 평가 못지않게 잘못된 제보로 인한 유언비어 확산 등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대나무숲은 해당 학교 학생들 위주로 운영되는 ‘익명 커뮤니티’다. 졸업생과 다른 학교 학생들도 글을 읽거나 올릴 순 있지만 주로 해당 학교 학생들의 공간이다. 제보 페이지에 글을 보내면 ‘대숲(대나무숲 준말)지기’로 불리는 10명 안팎의 관리자들이 욕설, 외설 등을 걸러내 게시한다. 제보자의 익명성은 철저히 보장된다.

새 학기가 시작하면서 각 대학 대나무숲엔 새 글이 줄을 잇고 있다. 대인관계와 연애에 대한 고민을 토로하거나 대학 생활 관련 정보를 문의하는 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새내기 이용혁(19)군은 “합격 통보를 받고 곧장 대나무숲을 찾아 ‘좋아요’를 눌렀다”며 “학교 분위기를 엿볼 수 있고 유용한 정보도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이 온라인상에서 위로 받는 모습은 익숙한 풍경이다. ‘단군 이래 가장 능력 있지만 가장 기가 꺾인 세대’, ‘부모보다 못 사는 세대의 첫 출현’이란 평을 받는 이들이 익명에 기대 위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대학생 백수연(24·여)씨는 “주변에 말하기 힘든 고민을 대나무숲에 털어놓고 또래의 공감을 얻거나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며 “대나무숲 활성화는 현실 세계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익명 게시판의 활성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생 김강현(21)씨는 “대나무숲에 올라오는 글 중 상당수는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라며 “특히 페이스북은 가짜 계정이 많아 거짓된 글로 누군가를 음해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기존 대나무숲과 별개로 운영되며 모든 제보가 게시되는 경희대 어둠의 대나무숲에 최근 ‘체육대학 출석 체크’ 문제와 관련한 글이 올라와 논란을 빚었다. 익명의 제보자는 “8일 말로만 듣던 체육대학 신입생 출석 체크를 직접 봤다”며 “선배에게 출석 체크를 받아야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제보했다.

이에 체육대학 학생들은 “교수가 아닌 선배들이 출석 체크를 한 적이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해당 글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 났다. 운영진은 “사실 확인이 안 되는 제보로 피해를 입혀 죄송하다”며 “가짜 계정으로의 제보는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숭실대 박창호 교수(정보사회학)는 “사실 여부와 관계없는 글이 대나무숲을 통해 확대 재생산될 위험이 있지만 익명성이란 대나무숲의 특성 때문에 해결하기 쉽지 않다”며 “총학생회 등 학생들 자체적으로 대나무숲의 글을 검증하는 검증위원회를 꾸리는 등 자정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영·이창수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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